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행위가 실제로는 그 일을 해내지 못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의식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려는 것보다 무의식적으로 그 행위를 하게끔 만드는 것이 실행가능성을 높인다는 이야깁니다.

"그냥"

글쓰기에 적용해보죠. ‘글쓰기를 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해도 글쓰기를 꾸준히 해나가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별 노력 없이도 글쓰기를 위해 앉아있게끔 습관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요. 꾸준히 쓰는 힘은 여기에서 나오는 듯합니다.

매일 한 편씩 글을 쓰는 것과 일주일에 두 번씩 글을 쓰는 것 중에 어떤 쪽이 더 힘들까요. 일주일에 두 편 쓰기가 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두 편을 쓰려면 글을 쓰는 스케줄을 마련하고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하는 반면, 매일 쓰는 일에는 별도의 계획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저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운동을 하러 가는데, 정말 힘들어요. ‘운동을 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기가 어렵기 때문에 운동하러 가기 전부터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물론 꾸역꾸역 하고는 있죠. 하지만 2년이 넘도록 루틴으로 자리 잡진 못해서 여전히 힘이 듭니다. 여러분도 한 번 떠올려보세요. 나에게 습관으로 자리 잡지 못한 일을 할 때 얼마 만큼 버거운지를요.

새해에 글쓰기 습관을 들이고 싶은 구독자 분들께 루틴 만들기를 이야기했는데요. 제 이야기와 더불어 곽재식 작가의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라는 책도 소개해보고 싶어요. 화학자 출신의 곽재식 작가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궁금증 많은 작가로 재미를 주기도 했었죠.

유퀴즈에 나온 곽재식 작가님

그가 말하는 글쓰기 습관 중 유용하다고 생각했던 내용은 글 한 편을 무조건 마무리 지으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정여울 작가가 ‘매일 쓰기’를 이야기했다면(이성작가의 <끝까지 쓰는 용기>에 정여울 작가의 이야기가 나와요), 곽재식 작가는 ‘끝까지 쓰기’를 강조한 건데요. 글 한 편을 마무리 짓는 일을 몇 차례 하다 보면 귀중한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합니다. 글 한 편을 마무리해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어느 정도 분량의 글을 쓰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 글의 앞부분, 중간부분, 끝부분을 쓰는 일 중에서 어느 대목에서 가장 힘겨워하는지, 마감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어떠한지, 글을 쓰는 중에 어떤 일이 생기면 가장 방해받는지,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해서 얼마 정도 지나면 시들해지는지, 어쩌다가 의욕이 사그라지는지, 사그라진 의욕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와 같은 것들을 경험하고 반성하며 돌아볼 수 있다는 겁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저는 글을 쓸 때 A4 용지 기준 1장에 맞춘 경우가 많았었는데요. 책을 내게 되면서 한 꼭지 당 2.5장을 써야 했어요. 1.5~2장까지는 어떻게든 쓰겠는데, 2장이 넘어가면 쓰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꾸역꾸역 썼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이제 2장 정도는 한 호흡에 써내려갈 수 있게 되었어요. 쓰기 전에는 몰랐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무리 짓는 경험을 하다 보니 ‘소제목’을 나눠서 쓰면 보다 편하게 써나갈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요. 글이 완성되는 시간도 중구난방이었는데 편차가 줄었어요. 중간에 방해받지 않고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쓰는 것이 저에게는 효율적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마실 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생수를 쟁여둡니다. 정수기까지 걸어가면서 흐름이 깨지니까요. 이처럼 끝까지 글을 마무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바로 꾸준히 쓰는 힘을 기르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죠. 하지만 글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무조건 마무리를 하라는 것이 곽재식 작가의 조언입니다.

좋은 글감을 찾는 법

한국 SF 작가들 사이에 ‘곽재식 속도’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곽재식 속도’는 6개월에 단편을 네 편 집필하는 곽재식 작가의 글쓰기 속도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해요. 엄청 빨리 쓴다는 얘기죠. 그런데 실은 “곽재식 작가는 실제로는 ‘2 곽재식 속도’로 쓴다”라고도 하니, 창작자들이 참고할 만한 점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에서 좋은 글감 찾는 법을 알려주는데요. 그가 추천한 좋은 글감 찾는 방법은은 ‘메모하고 묵히기’입니다. SNS를 보다가 나도 뭔가 한마디 더 하고 싶어 확 솟구치는 순간에 쓰는 글인데요. 욱해서 나도 뭐라고 말하고 싶을 때, 다들 답답한 소리만 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좀 똘똘한 말을 해주고 싶을 때 그것을 그대로 써서 올리지 말고 묵히라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그 사건에 대한 열기가 가라앉았을 때, 글을 쓰긴 써야 하는데 뭘 쓰면 좋을지 모를 때 묵혀놓은 것을 찾아보라고 조언합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분위기가 진정된 뒤에 살펴보면 의외로 내가 잘못 생각했던 점이나 미처 고려하지 못한 점이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잖아요. 그때 욕하고 싶었던 사람이나 정말 싫었던 그 사건 하나에 대한 글이 아니라, 진지하게 삶과 세상을 돌아보는 글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합니다.

글감 찾기 파트에서 또 흥미로웠던 부분은 ‘판 바꿔치기’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현대에 벌어진 흥미진진한 사건을 조선시대 배경으로 다시 써본다거나, 정치적 암투를 다룬 정치물에서 본 등장인물들을 저녁 계모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꾸며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틀은 그대로 가져가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창조되잖아요. 또 어디선가 읽은 사건이나 상황을 두고 ‘나라면 어떻게 할지’ 상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깊은 산속에 들어간 어떤 사람이 멧돼지를 만나서 겨우겨우 도망쳤다는 기사를 보았다면, 내가 산에서 멧돼지를 만난다면 어떻게 할지 상상해보는 것이죠.

아름답게 글을 꾸미는 법

타인의 창작물을 기반으로 하여 나만의 것으로 재창조하는 방법은 책의 다른 부분에서도 이어지는데요. 너무 자주 사용되는 비유나 수식을 다른 말로 대체해보라는 게 그의 조언입니다. ‘케케묵은’이라는 표현이 너무 진부하다면, ‘곰팡내 나는’ ‘불어터진’, ‘하품 나오는’ 식으로 고쳐보라는 거죠.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유의어로 바꾸기, 표현의 주체와 객체를 바꾸기, 형용사를 동사로 바꾸기, 긴 말을 짧게 바꾸기, 짧은 말을 길게 바꾸기, 어려운 말을 쉽게 바꾸기, 아예 그 표현을 빼고 앞뒤 설명으로 대체하기 등이 있습니다. 언어와 문장이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상상을 할 수 있게 표현하라는 것이지요.

미디어 아티스트 신진식의 <무중력 실험>(1982). 잡지나 프린트 매체에 있는 글을 옮겨 쓴 다음, 전혀 엉뚱한 단어로 바꾸는 작업.

다른 이야기에서 싫었던 점들을 피해나가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재밌었습니다. 더는 보고 싶지 않은 소재, 내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구성, 짜증나는 결말, 딱 보기 싫은 상황, 내가 싫어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런 것을 메모해두었다가 글을 쓸 때 온 힘을 다해 피해가라는 조언이었어요. 곽재식 작가는 음식 맛을 설명할 때 ‘식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고 해요. 식감이란 그저 ‘먹는 느낌’이란 뜻인데, 너무 남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평범하거나 비참하게 살고 있는 주인공이 알고 보니 주인공의 조상이 신성한 사람이라서 주인공이 갑자기 대단한 일을 하게 된다는 스토리도 피하고 싶었다고 하고요.

저는 개인적인 감상에 그치는 글을 별로 안 좋아해서 글을 쓸 때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확장가능한 이야기인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글은 어찌됐든 개인의 경험과 감상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지만, 일기장에 쓰는 글과 공표되는 글은 다르다는 생각에서요. 또 저는 어렵게 쓰는 글을 싫어해서 배경설명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최근 읽은 글 중 싫었던 표현은 “들뢰즈 식으로 말해서”였습니다. 들뢰즈는 프랑스 철학자인데, 대강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지만 너무나도 불명확하다고 느꼈습니다. 곽재식 작가의 말대로 다른 글에서 싫었던 점들을 피해가나는 방법 또한 참고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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