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여울 작가의 책 『끝까지 쓰는 용기』 표지만 본 사람입니다. 그 다음 만난 여울 작가의 책은 깨알 같은 글씨로 쓰인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심리 수업 365』 이었고요. 쓰고자 하는 에너지가 굉장한 사람이네, 하며 책을 들춰봤던 기억이 나요. 이 책을 바탕으로 한 이성작가의 답변을 보며 저도 동일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 써봅니다. 듀오로 활동을 하면서 생긴 저만의 습관은 짝을 맞추어 글을 쓰고 싶어진다는 거죠. 그럼 이성작가의 답변과 더불어 감성작가의 답변은 어떠한지 읽어봐 주세요.

글쓰기에 필요한 재능은 무엇인가요?

‘자기 확신’이라는 말을 해보고 싶어요. 글은 흩어지는 말과 달리 단단하게 묶여서 책으로 저장되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자기 확신’이 없다면 완결된 글쓰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여기서 말하는 글쓰기란 혼자만 보는 일기 말고 ‘발행되는 글’에 해당 됩니다. 글을 써서 무언가를 발행한다는 것은 누가 무엇이라 해도 ‘자기 확신’이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의 생각일 믿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재능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작가에게 질투심을 느낄 때는요?

매일 느끼죠. 가끔 교보문고에 가면 베스트셀러에서 꼭 사고 싶은 책을 놓고 오는 경우도 있는걸요. 안사는 거죠. 배가 아파서. 하하. 농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질투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좋아해요. 질투와 부러움을 마음속에 숨겨놓지 말고 밖으로 꺼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신기하게 유머와 웃음으로 전환이 돼요. 한번 따라해 보세요. 만날 수 없는 상대라면 “와- 부럽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잘할까? 와-나도 한번 저렇게 되어보면 참말로 좋겠다.” 또는 만날 수 있는 상대라면 “와- 부럽다. 밥 좀 사라”라고 하면서 맘속에 있는 새카만 질투를 밖으로 툭 꺼내면 질투가 금세 하늘색으로 바뀐답니다. 하늘색 마음이 들 때 얼른 내 작업을 합니다. 맑고 청량한 마음으로 쓰는 거죠.

그림책이 주는 청량감이 있더라고요. 창작의 세계 <파도가 차르르>


평범한 사람은 끝내 천재 작가가 될 수 없는 걸까요?

천재 작가는 언제부터 스스로가 천재 작가라고 생각했을까요?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후에 천재 작가로 불리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도대체 천재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특히 천재 '작가'의 ‘기준’이란 무엇일까요? 예술은 일반적으로 만들어 놓은 ‘기준’을 뛰어 넘을 때 그 천재성을 인정받기도 하잖아요. 오늘날 천재의 기준에 못 미치는 평범함이야말로 사후 천재로 남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거죠. 우리의 평범함을 이렇게라도 합리화해 봅시다.

할 말이 없는데 무작정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 질문을 좀 여러 번 읽었답니다. 할 말이 없는데...무작정 글을 쓰고 싶다...이 두 문장은 충돌하는 것 같은데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가는 문장인거죠. 이런 상황이 딱 할 말이 없는데 무작정 글은 쓰고 싶은 그런 경우 아니겠습니까? 자, 이 문장에서 ‘무작정’을 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할 말이 없지만 글을 쓰고 싶을 때’로요. 여기서 할 말의 화자와 청자를 자신으로 두고 글을 써 보세요. 오롯이 내가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나의 마음에 대한 글을 시작해보는 겁니다. 예를 들면 세상 사람들과 상관없는 ‘나만의 관심사’ ‘나만의 절대 고독’에 집중해 보는 거죠. 앞서 발행한 <작가는 뭐하고 놀까>(감성작가 편)을 보시면 나만 보이는 ‘귀신스러운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그 글을 한 번 찾아보길 권해드립니다. 감성작가가 어떻게 (무)작정하고 써서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있어요.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글로 밥을 벌어먹기로 결심했다면 규칙적으로 작업을 해야 합니다. ‘나는 글을 쓰며 살아’와 ‘나는 글을 써서 살아’는 큰 차이가 있어요. 앞 문장은 취미로 글을 쓰며 산다는 느낌이고 뒷 문장은 글을 써가면서 살아간다는 뉘앙스 차이가 느껴지나요?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것에는 엄청난 책임이 뒤따르는데요. 쓰기 이외의 일들로 생업을 꾸려가는 사람들만큼,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쓰기에 몰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일반인들이 출근하는 9시부터 6시까지는 꾸준히 글을 쓴다 생각을 해보면 이해하기 쉽죠. 글로 밥 먹고 살려면 쓰기로 야근도 해야 합니다. 오래 오래 많이 많이 써야 밥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글을 쓰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해소하나요?

글을 쓰기 시작한지 5년 정도 된 후부터는 쓰기에 대한 막연한 스트레스는 사라진 것 같아요. 어떤 글을 내가 쓸 수 있는지, 자주 틀리는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또는 잘못 쓰는 부분은 그냥 마음을 좀 내려놓고 도움을 요청하는 등 다양한 쓰기 전법이 생겼으니까요. 하지만 신체적인 통증이 스트레스로 한몫해요. 오랫동안 한 자세로 앉아서 집중해서 쓰다보면 눈이 시리고 어깨가 무척 아픕니다. 허리도 마찬가지고요. 가끔 팔도 심지어 발도 저려요. 아, 두통도 옵니다. 어떻하죠? 전신이 다 아픈 거였군요. 집중해서 쓸 때는 산책을 잊어버릴 때가 많지만. 꼭 산책을 하려 노력해요. 산책이야말로 정서적 환기를 주는 좋은 방법 같습니다. 산책 전의 글과 산책 후의 글은 문장 자체가 달라집니다. 독자도 알아챌 수 있어요. 읽기 호흡이 편안하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문장을 만나면 ‘아, 작가가 산책 하고 왔나?’ 하고 상상하시면 됩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보람될 때는 언제인가요?

제 책과 관련된 드로잉 워크숍을 다니다보면 ‘이 사람들은 내 책을 굳이 읽지 않아도 이미 생활 속에서 예술을 충분히 즐기는 분들인데 또 워크숍까지 왔구나’하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아요. 그런데 아주 가끔 제 책과 전혀 다른 관심사 속에서 살던 사람이 이 책 덕분에 다른 방식으로 보는 방법에 대해 동의를 할 때 보람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타인의 삶에 큰 각도로 개입하는 것은 저 또한 두려워요. 하지만 자그마한 떨림과 진동은 주고 싶어요. 나침반도 끈임 없이 떨리면서 목적지로 향한다고 하더라고요.

생활 속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워크숍

어떻게 어휘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무조건 많이 읽으라는 말은 오답 같아요. 많이 읽되 양서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에 대한 답은 이미 세상에 나와 있어요. 고전 또는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로 명명된 것 들 중 마음에 드는 책을 두고두고 읽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그렇게 양서를 읽다보면 내게 어떤 책 또는 어떤 작가가 맞는지 알게 되는 시점이 오는데요. 그때부터는 폭 넓게 그 작가와 비슷한 또는 그 작가에게 영향을 준 다양한 서적을 넘나들다 보면 어휘력뿐만 아니라 문장력, 사고력, 상상력까지 확장 됩니다. 열화당, 민음사, 한길사,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권해드립니다.

어디서 어떻게 글감을 찾는지요?

저는 생활을 집요하게 기록하는 습관을 갖고 있어요. 기록한지는 20년이 넘은 것 같아요. 어떻게 기록을 하냐면 일단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글감을 찾으려고 찍는 것은 전혀 아니고요. 제 취미이자 즐거움으로 사진을 찍은 후 하루를 넘기기 전 꼭 어딘가에 기록을 해둡니다. 공개 SNS 계정 또는 비공개 SNS 계정을 통해서 기록을 해두고 혼자 자주 열어 보는데 그런 습관이 자연스레 글감 떠올리기에 도움이 되어 있더라고요.

사적인 이야기와 이론적인 이야기의 균형을 잡는 방법이 있을까요?

장르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일부러 균형을 맞추려고 하면 더 어색한 글이 될지 몰라요. 이론적인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면 사실에 근거한 자료를 충분히 숙지한 후 글 호흡에 맞춰 잘 요약을 해야 할 것 같고요. 여기에 사적인 이야기를 덧붙인다면 이론에 대한 풍부한 해석이 머릿속에서 몇 번에 걸쳐 정리가 된 후 글로 작성되면 좋을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이론을 볼 때 다양한 채널로 정보를 수집합니다. 그렇게 정보를 수집하다보면 나만의 의견 같은 것이 생기는데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나의 생각은 다시 기타의 정보로 사실을 확인하면서 내 생각에 대한 결론을 정비합니다. 그런 다음 이론에 맞게 각색해서 나의 의견을 넣습니다.

칼럼, 서평, 에세이를 관통하는 대원칙이 있다면요?

이에 대한 답변은 이성작가와 같습니다. ‘가독성’을 중요시합니다. 이성작가를 만나기 전 저는 내가 잘 읽지 못하는 글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잘 안 읽히면 제 탓을 그렇게 하면서 어떻게든 읽었어요. 눈도 아프고 읽었던 문장을 읽고 또 읽고, 책을 사면 꼭 완독하는 제 버릇은 저를 괴롭히는지도 몰랐어요. 번역서도 내 탓, 실용서 도 내 탓, 칼럼도 내 탓 못 읽으면 모두 제 탓으로 생각했죠. 그런데 이성작가를 만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성작가가 강력하게 답해주더군요.

“만약 읽는 사람이 그 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쓴 사람 책임입니다.”

이 얼마나 속이 시원한 답변입니까.

악평과 악플에 어떻게 대처하나요?

저는 이성작가만큼 구독자와 일대일로 소통했던 경험이 없어서 악플조차 부럽네요. 악플을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악플에 대해 상상을 해본 적은 있어요. 만약 악플이 달린다면 대응을 하진 않을 것 같아요. 기분은 좋지 않겠지만 내가 글을 발행하고, 세상에 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작가라면 내 글이 싫고, 내 목소리가 싫은 사람도 분명 존재할 테니까요. 악플 안 받아봐서 이러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특별한 독서 습관이 있을까요?

다독합니다. 요즘은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 책을 죽 둘러보면 어떤 것이 내 책인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어요. 척하면 착하고 주문합니다. 책 구매에 대한 실패 확률도 낮습니다. 제가 믿고 주문하는 출판사도 꽤 있고요. 제게 도움이 되는 책을 내는 출판사는 비슷한 결의 책을 발행합니다. 제가 인상 깊게 본 책들은 책이 깨끗하지 않습니다. 밑줄도 많이 긋고, 밑줄 긋기 힘들 때면 책 귀퉁이를 모두 접어둡니다. 이후 다시 그 귀퉁이 부분만을 발췌해서 읽고 또 읽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책 같은 것은 만년필로 천천히 필사해 보고 싶어요.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묘책이 있을까요?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할멈을 떠올려 보세요.

이런 식인데요. 농담이 아니고요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딴 짓’을 시작합니다. 딴 짓은 정말로 기묘한 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최근 창작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들은 이야기인데요.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맥주를 마신다더군요!

슬럼프가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슬럼프가 오면 좀 쉬어야 합니다. 어떤 강연에서 들었는데 화가 날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더군요. 듣고 나면 너무 당연한 것인데 그 상황에서는 몰랐던 것이죠. 그게 무엇이냐. 바로 ‘내 몸이 힘든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슬럼프도 마찬 가지 같아요. 특별한 원인 보다는 일단 내 몸과 마음이 힘들다는 신호 일 수 있습니다. 슬럼프다 싶으면 나를 다독이며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사람들 곁에 나를 두세요.

슬럼프가 오면 저는 영화를 몰아서 봅니다. 현실을 잊어버리거나 정서가 환기됨을 느껴요.


효율적으로 글 쓰는 시간을 버는 방법은요?

사람을 좀 덜 만나면 되는 것 같아요. 어른이 되고나면 경쟁자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어른이 되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죠. 자유는 글쓰기를 집어 삼키기 딱 좋은 함정 같은 겁니다. 감성작가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람과 만나는 횟수를 반에 반으로 줄였어요. ‘그럼 외로워서 어쩌죠’하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도처에 있습니다. 옆자리 사람과 짧은 수다를 나눌 수도 있고, 메신저로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도 있죠. 꼭 만나야 하는 또는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의 만남이외에 불필요한 대면만남을 줄여보세요. 꽤 긴 시간이 생길 것입니다.


같은 질문에 대한 이성작가의 답변은 다음 글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Q&A) 글을 쓸 때 궁금한 모든 것들|이성작가 답변
책 『끝까지 쓰는 용기』는 정여울 작가가 글쓰기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1부가 구성되어 있는데요. 작가의 답변도 좋았지만, 저희 라이팅듀오도 나름대로 답변을 한 번 드려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책의 질문들을 가져와 봤어요. 책 『끝까지 쓰는 용기』의 내용은 아래 글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끝까지 쓰는 용기저는 책을 읽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