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끝까지 쓰는 용기』는 정여울 작가가 글쓰기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1부가 구성되어 있는데요. 작가의 답변도 좋았지만, 저희 라이팅듀오도 나름대로 답변을 한 번 드려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책의 질문들을 가져와 봤어요. 책 『끝까지 쓰는 용기』의 내용은 아래 글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끝까지 쓰는 용기
저는 책을 읽을 때 내용뿐만 아니라 저자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피곤 합니다. 저자의 이력을 찾아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가 쓴 다른 책들을 연속해서 읽거나, 그가 책에 쓴 내용과 문장들을 살피면서 그의 성격적인 면까지 파악하려 애씁니다. 아이돌에 빠지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요. 저에게는 정여울 작가가 그랬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글쓰기에 필요한 재능은 무엇인가요?

저는 ‘마감을 지키는 시간 감각’과 ‘꾸준하고 오랫동안 글을 쓰는 능력’을 글쓰기 재능으로 꼽고 싶어요.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정말 많아요. 하지만 마감을 잘 지키는 저자로 1차 필터링을 하면 절반 이상이 걸러집니다. 여기에 10년, 20년 글을 쓰고 있는 저자를 찾아보면 생각보다 정말 소수가 남아요. 이 두 가지 요소를 계속 목표로 삼는다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다른 작가에게 질투심을 느낄 때는요?

내가 새로운 책을 출판하면 내 책은 매년 4만 여종 쏟아져 나오는 신간뿐만 아니라 이전에 출판된 책들, 심지어 고전과 동등한 경쟁을 벌이게 돼요. 헤르만 헤세, 괴테, 박경리, 존리(?)와 같은 매대에 놓이게 되는 건데요. 다른 작가에게 질투심을 느낄 새가 있을까요? 어차피 거의 모든 작가가 나보다 뛰어난데 말이죠. 질투심을 느끼지 않는다기보다는 질투라는 감정에 집중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평범한 사람은 끝내 천재 작가가 될 수 없는 걸까요?

저는 평범한 사람은 천재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렇게 반문해볼게요. 왜 굳이 천재 작가가 되어야 하나요? 세상엔 천재 작가도 있고, 평범한 작가도 있고, 조금 못난 작가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자신의 글을 읽어줄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엄청난 무언가를 써내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평범하더라도 진솔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게 작가의 일상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할 말이 없는데 무작정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경우에는 뭐라도 쓰는 게 그 순간의 감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뚜렷하게 무언가가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잖아요. 이럴 땐 온라인 공간에 올리지 않는다고 스스로 전제하고 습작의 형태로 글을 써나가면 어떨까 싶어요. 저 같은 경우는 스마트폰 메모장을 자주 이용하는데요. 자판에 문자들을 입력하다보면 메모장을 열기 전에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 생각들이 정리될 때가 있어요. 나중에 그 글들을 써먹을 때도 있고요.

글쓰기의 다양한 재료들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자존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글쓰기는 코인 투자처럼 단기간에 승부가 결정 나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존감은 알아서 채워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일상 속 ‘작은 성취’를 통해서 조금씩 자존감을 채워나가는 거죠. 원고를 기고했을 때 편집자가 어떤 칭찬의 말을 던졌다든지,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내 책 후기를 발견했는데 독자와 코드가 맞았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이렇게 일상 속에서 조금씩 자신감을 얻는 순간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글을 쓰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해소하나요?

어떤 종류의 스트레스인지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은데요. 1) 영감이 안 떠오르거나 진도가 안 나가서, 혹은 2) 마감에 쫓겨서가 아닐까 싶어요. 저는 1)의 경우에는 지금 쓰는 내용과 완전히 다른 내용의 텍스트를 주입하곤 해요. 내용에 너무 몰입하고 있기 때문에 더 안 써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거든요. 학술적인 글을 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갑자기 소설을 읽어본다든지, 미술 글이라면 과학 책을 펼쳐본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그리고 2)의 경우는 미루면 더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그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 글쓰기를 마무리합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보람될 때는 언제인가요?

저는 독자들의 반응을 접할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어떤 독자들의 평은 정말 오래오래 기억에 남거든요. 제 책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하고 싶은 너에게>를 본 어떤 독자분이 “야전교범 같은 책이다”라는 평을 인스타그램에 남겨주셨는데요. 야전교범은 군사교육 및 작전에 관한 지시, 첩보 원칙 사항과 자료가 기술되어 있는 교리 문헌을 뜻해요. 제 책은 감성적인 표지와 달리 2030이 겪는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담았는데요. 이런 저의 의도를 적확하게 파악해 ‘야전교범’이라는 촌철살인 멘트로 남겨주셔서 너무 보람되더라고요. 최근에는 브런치에 ‘파이어족’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일에 대한 생각이 바뀌네요”라는 댓글을 보고 보람을 느꼈어요. 누군가의 생각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지식과 연결 짓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또, 며칠 전에는 저희 라이팅듀오 구독자님 중 한 분이 제 책을 읽고 앞 부분의 에너지와 뒷 부분의 에너지가 다르다고 표현해주셨는데요. 저자도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을 독자님이 일깨워 주실 때 보람을 크게 느낍니다.

글쓰기의 보람된 순간들

어떻게 어휘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요즘 ‘어휘력’에 대한 이슈가 많이 불거지잖아요.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기생충>의 한줄평으로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표현을 썼다가 ‘왜 어려운 말을 쓰느냐’라고 거센 비판을 받기도 하고, ‘사흘’을 ‘3일’로 착각해 무식하단 소리를 듣기도 하고요. 최근 정치권에서는 ‘무운을 빈다’라는 표현 가지고도 논란이 있었죠. 가장 큰 문제는 “그런 단어 몰라도 잘먹고 잘산다”라는 무관심인 것 같아요. 모르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찾아보지 않는 건 부끄러운 거죠. 어떤 어휘가 불명확하게 느껴지면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이 바로 어휘력을 키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글감을 찾는지요?

저는 요즘은 주로 문헌에서 글감을 찾아요. 제가 요즘 쓰는 글들이 자료조사가 필요한 내용이 많아서요. 관련 책, 논문을 주구장창 읽다보면 어느 순간 내 것으로 변환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더 많은 인풋을 하려 노력합니다. 첫 책을 쓸 땐 주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글감을 얻었어요. 제 책의 1차 독자를 ‘입사 3년차 미만의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성’으로 잡았었거든요. 후배들을 만나서 요즘 고민하는 것들을 많이 물어봤던 것 같아요.

사적인 이야기와 이론적인 이야기의 균형을 잡는 방법이 있을까요?

글을 작성하기 전에 대략 몇 % 정도로 사적인 이야기와 이론적인 이야기를 배분할지 정해두면 균형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글에 따라 어떤 부분에 더 많은 비중을 둘지가 달라지잖아요. 에세이에는 당연히 사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갈 것이고, 논문에는 이론적인 이야기가 다수를 차지하겠죠. 미리 이 비율을 설정해두고 글을 작성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칼럼, 서평, 에세이를 관통하는 대원칙이 있다면요?

‘가독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잘 읽히는 글인지가 그 글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문장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요. 글쓴이의 진정성이나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못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만약 읽는 사람이 그 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저는 읽는 사람보다는 쓴 사람에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젊은 세대로 갈수록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실제 그런지도 의문이거니와 만약 그렇다고 해도 떨어진 문해력에 맞게 글을 쓰는 게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의 원칙들

악평과 악플에 어떻게 대처하나요?

저는 악플은 대부분 삭제하는 편이에요. 악플에 발끈해서 대응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아요. 딱히 신고하거나 고소하지도 않고요. 물론 너무 심한 악플이 달린다면 고소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아직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악평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에요. 실제로 무플보단 악플이 낫기도 하고요. 사실 악플도 신경쓰여서라기보다는 악플이 하나 있으면 그 아래 비슷한 댓글이 또 달리거든요. 그래서 삭제하는 거죠. 글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전 평가 기준을 그냥 저에게 둡니다. 제가 만족했으면 그걸로 된 거죠.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특별한 독서 습관이 있을까요?

책을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기록을 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은 것 같아요. 저는 누워서 책을 읽지 않는데요. 누워서 책을 읽으면 잠이 오는 것도 있지만, 기록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은 문장을 워드에 모두 입력해요. 인상 깊은 책의 경우 10페이지가 넘어가곤 하는데요. 예전에는 손으로 직접 썼지만 요즘에는 거의 워드만 써요. 이렇게 해두면 나중에 그 부분을 다시 찾아볼 수 있고, 적어놓은 부분만 봐도 내용이 다시 떠올라서 좋아요.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묘책이 있을까요?

영감은 어느 날 ‘반짝’ 하고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무언가를 읽고 있을 때 영감이 떠오르곤 하는데요. 서로 다른 분야의 책을 교차해서 읽는 것이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인 것 같아요. 전혀 관련 없는 분야의 책을 읽을 때 의외로 무언가 발견하게 되는데요. 창의력의 핵심도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하는 능력인 거잖아요. 그래서 영감이 잘 안 떠오를 때는 고전을 읽는다든지, 시를 읽는다든지, 아니면 SF 소설을 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슬럼프가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슬럼프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슬럼프’, ‘번아웃’ 이런 단어에 자신을 가두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요. 그저 며칠 피로가 누적된 것일 수 있어요. 전 오히려 슬럼프가 ‘디폴트’ 상태인 것 같아요. 무언가가 일이 너무 잘되는 시기는 그렇게 길지 않잖아요. 안 되는 시기가 훨씬 더 많고요. 슬럼프 그 자체에 너무 몰두하기보다는 오늘 하루 충실히 사는 게 슬럼프에서 가장 빨리 벗어나는 방법일 수 있어요.

효율적으로 글 쓰는 시간을 버는 방법은요?

자신은 무언가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그 시간이 짧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스톱워치를 사용하는데요. 글쓰기를 해나가는 시간을 매일 스톱워치로 기록해두는 겁니다. 하루의 일정이 마무리되면 노트에 스톱워치의 시간을 표기해두고요. 스톱워치를 사용하면 자신이 실제로 얼마만큼 글쓰기를 했는지 살펴볼 수 있어서 점점 시간이 늘어나는 효과를 누리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