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5. 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6.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정치와 영어> 에세이 중

5년 전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위해 김정선 편집자가 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부터 사봤던 기억이 나요. 내가 쓴 글을 스스로 다듬을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몇 번을 펼쳐 읽었지만, 제게는 요술봉이 되지 못했어요. 그 이유는 그 책을 참고해 제가 쓴 문장을 다듬을 역량조차 없었으니까요. 이후 정말 다양한 책을 읽었고 매일 3~5시간씩 작업하는 규칙을 지켰더니 이제는 제법 다양한 글쓰기에 익숙해지고 있어요. 아직 가야할 길은 멀지만 가기로 작정한 시간은 제가 정하는 거니까 너무 제 자신을 닦달하진 않아요.

제게 글쓰기의 표본이 된 작가는 박완서조지 오웰입니다. 조금 뜬금없는 조합 같지요?

저는 옷을 입을 때도 집안에 가구를 배치할 때도 그리고 드로잉을 할 때도 다양한 재료를 종합적으로 배치해 보는 것을 선호해요. 그런 뜬금없는 조합에서 진짜 나의 것이 탄생하더라고요. 박완서의 따뜻함과 조지 오웰의 냉철함은 제가 가장 닮고 싶은 부분인 것 같네요. 오늘은 두 분의 작가 중 조지 오웰을 선택해 보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게 되었어요.

민음사 <조지 오웰>

조지 오웰, 자신이 작가가 되리란 걸 알았던 천재


어린 시절 조지 오웰은 자신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해요. 이러한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푸대접받은 일을 앙갚음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글을 통해 자신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글을 쓰며 살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대여섯 살 때부터 했다더군요. 똑똑한 사람은 진로도 빨리 정하는가요? 나는 나이 사십이 넘어 겨우 겨우 찾아 낸 것이 재능도 없는 글쓰기인데 말이죠. 그런데 조지 오웰도 어린 시절과 소년시절을 통틀어 써낸 심각한(즉 심각한 의도로 쓴)글은 대여섯 페이지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는 부분에서 웃음이 났어요. 독자들에게 밀당을 얼마나 잘하는지, 천재 작가가 얄미울 즈음 공감대를 형성해주네요.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의 ‘왜 쓰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게요. 조지 오웰은 ‘작가란 왜 쓰는가’에 대한 답으로 첫째 순전한 이기심으로 글을 쓴다고 합니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의 욕구를 말하며,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 하는 것은 허위라고 적어둡니다. 작가의 이런 특성은 과학자, 예술가, 정치인, 법조인, 군인, 성공한 사업가 등, 요컨대 최상층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특성이라더군요.

벽돌책이 부담스럽다면 조지 오웰의 책 대 담배를 추천해요 ^^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라고 하네요)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라고 써 둔 부분에서 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어느 하나 틀린 말이 없어요. 소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고 하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작가가 바로 이 부류에 속한다네요. 반박할 논리를 하나도 못 찾겠어요. 특히 진지한 작가들이 대체로 언론인에 비해 돈에는 관심이 적어도 더 허영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라고 합디다. 피해 나갈 구멍을 단 하나도 주지 않는 조지 오웰에게 ‘그래요 나는 내 삶을 살아보겠다고 이기적으로 구는 허영심 많고 자기중심적인 서지형 작가입니다’라고 속으로 대답합니다.

저는 조지 오웰의 12줄 남짓의 이 문단을 단숨에 읽었고, 하루 종일 생각했었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답고 정확한 글쓰기라 생각합니다. 요란한 소리가 나는 야외에서 복잡한 마음으로 펼쳐든 책 속의 12줄은 나를 진공상태의 공간에 머무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행간에 멈춰져 하루 종일 생각에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런 표현이야말로 작가로서 정말로 탐나는 글쓰기 전법입니다. 조지 오웰이 쓴 12줄은 간단해보여도 1903년에 태어나 1946년 43살이 된 조지 오웰이 최소 25년간 품은, 단단한 생각으로 단련된 문장에서 나온 12줄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등이 작가가 왜 쓰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문장마다 손가락을 짚어 읽게 됩니다. 이 부분은 직접 찾아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좀 황당하지만 저는 아직 조지 오웰의 대표작 <1984> <동물농장>을 읽어보지 않았어요. 올해 겨울 즈음 읽어볼 생각입니다. 사실 아껴두고 있는 거죠. 정말 아끼는 옷은 잘 펴서 걸어 놓고 중요한 날만 입 듯 진짜 잘 읽어보고 싶은 책은 바쁘고 정신없을 때 말고 몇 날 며칠 은둔하며 읽고 싶거든요.

읽고 싶은 책들로 미어터지는 바퀴달린 매니저 3 입니다

조지 오웰, 그러나 다시 ‘나’


조지 오웰의 언어재능을 원문 그 자체로 느끼고 싶지만 저는 번역서에 기대어 읽고 있으니 사실 그가 전하는 온전한 뜻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보다는 읽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니 자주 펼쳐보는 것이지요. 또 그가 제시하는 다양한 예시 중에 동의할 수 없는 내용도 꽤 있기에, 저는 그의 자료를 참고로 삼되 저만의 쓰기를 그의 문체로 덮진 않아요.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이 자세히 나지 않는데요. ‘시가 시일 수 있는 것은 모순된 말들이 모여 하나의 진리를 말할 때일 듯하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조지 오웰이 하려는 말이 이런 것 아닐까요? 조금 부족하더라도 내가 많이 고민하고 쓰는 문장에 조지 오웰은 한 표 더 얹어줄 것 같아요. 물론 저 또한 진부한 글을 쓰는 것은 아닌지, 나를 숨기기 위해 젠체하는 문장들로 나를 포장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시간도 되었고요. 여러분도 저도 스스로를 고독하게 만들고 그냥 관계에서 오는 고독감 말고 내가 혼자 마주할 수 있는 절대고독의 시간 앞에서 모순된 말들이 모여 진리를 말할 수 있는 문장을 고민해 봅시다.


여러분은 어떠한 작가의 글을 유심히 보는가요? 주로 어떠한 행간에 멈춰지나요?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글은 책을 부르고 책은 다시 글을 부른답니다. 바라는 것 없이 많이 읽고, 많이 읽다보면 잘 쓰게 되는 진리는 틀림없는 사실임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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