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하는 시간과 예술력은 비례 한다"라는 말을 자주 생각하며 살아 가요.

워크숍 중 창작 활동을 잘 해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요. 그럴 때면 저는 거꾸로 창작 활동을 잘 해서 무엇이 좋을까도 함께 생각해 보길 제안해요. 어떠한 활동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니 그 활동을 잘해냈을 경우 무엇이 좋은지 생각하는 것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 '예술 활동'이라는 것이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기가 참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는 누군가 논리적으로 예술 활동과 예술 활동의 목적, 이유 등을 설명한다면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예술 활동을 언어적으로 조목조목 논리 정연하게 설명한다면 꼭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겠어'라는 청개구리 같은 심보를 가지고 있어요. 저만 그런가요? 하지만 여러 차례 예술 활동에 대한 사례를 참고하다보니 문득 예술 활동에서의 예술력은 '낭비하는 시간'과 굉장히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여기서 말하는 '낭비하는 시간' 안에는 예술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즐거움, 편안함, 자아 발전, 취미 발견, 보잘 것 없는 삶의 원동력, 허무함의 구체화, 실존에 대한 논리적인 탐구 등 진지한 정의들이 포함되어있죠.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낭비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느릿느릿 낭비하는 시간

저는 주로 컴퓨터 자판을 치며 글을 쓰는 것을 선호합니다. 타자도 무척 빠른 편인데요.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저도 모르게 자판을 누르듯 허공에 손이 움직이는 경험을 자주해요. 버릇처럼 자판을 두드리는 직업병이 있는 거죠. 그런데 최근 7살 된 딸아이의 한글 교육덕분에 느릿느릿하게 한 자 한 자 손으로 쓰는 시간이 생겼어요. 평소 제가 삐뚤빼뚤한 드로잉 선을 좋아하듯 글도 잘 못쓰고 엉뚱하게 틀린 단어에 매력을 느끼거든요. 그러다보니 공부를 봐주는 것은 핑계고 '엄마'를 '임마'로 쓴다거나 '이재는 겨울이 좋아젼어' '재빨리 눈이오면 조켓어' '모냐면 내가 겨울을 내가 내가 내가 좋아하는 거야' 등 희귀한 문장들을 읽고 반응해주는 것이 특히 재미있어 관찰하고 있는 것이 목적이죠.

실랑과 심부, 틀렸다고 말하지 않아요. 금방 고쳐질까바 벌써 서운ㅎㅏㅁㅇㅣ.

이 정도의 쓰기가 가능한 시기라면 곧 한글을 깨우치고 완벽한 문장으로 쓰는 것에 속도가 붙을 테니 이 시기란 무척 짧아요. 그러니 이런 즐거움을 맛 볼 기회가 짧다는 이야기입니다. 몽땅하게 짧은 이 시기를 공감하기 위해 아이 옆에서 아무거나 끄적이며 곁눈질 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죠. 작정하고 노트에 하는 필사는 아니지만 옆에 앉아 천천히 쓰는 '낭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죠. 주제를 정해 맹렬하게 쓰던 제가 갑자기 쓰기의 속도를 확 늦추고, 종이에 위에서 엉뚱한 걸 쓰며 놀며 낭비력을 상승시키고 있답니다. 손 글씨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저는 손으로 쓰는 느린 속도를 견딜 수가 없어 창작활동을 종이에 하지는 못했지만 목적 없는 쓰기 경험을 오랜만에 하다 보니 하나 기억나는 것이 있었어요. 바로 '낭비의 시간'이 불러오는 '낭비력과 예술력의 비례관계' 말입니다.

쓸모없이 보내는 시간

책을 냈다는 것은 그동안 정말 오래 '쓰는 낭비의 시간'이 지나갔다는 증거입니다. 눈만 뜨면 썼던 시간이 있었고요. 아무런 소득도 콘텐츠에 대한 타인의 반응도 없었던 시절 나는 그 '낭비의 시간'을 수없이 보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낭비의 시간'은 글을 쓰는 사람도 글을 읽는 사람도 글을 쓰는 옆에 사는 사람에게도 변화를 일으키더군요. 여기서 말하는 변화란 꼭 긍정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낭비의 시간이 지나간 자리' 정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태풍이 지나간 후의 '흔적' 정도로 표현하고 싶어요. 아무런 목적도 방향도 정해지지 않은 채 오로지 무목적의 글을 쓰기 위해 서둘러 장을 보고,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한 후 글을 썼어요. 이후 다시 저녁을 하고 얼른 가사 일을 마무리 한 후 궁금한 책을 읽고 시간을 쪼개 다시 글을 정리한 후 잠자리에 드는 삶이 일 년 이 년 지나갔죠.

세상이 만들어 놓은 이득의 기준과는 무관한 ‘낭비의 시간’을 보내면 사서하는 고생의 힘듦과 보람됨을 동시에 느껴봤어요. 너무 신났던 순간도 있고 허무해서 아무것도 쓰기 싫은 시간도 지나갔고요. 그런 시간 사이에 제 주변인들은 저 이는 왜 저렇게 바쁘게 움직이며(헛된 에너지를 쏟아가며) 책을 읽고 글을 쓰나 의문과 호기심을 품더군요. 삶의 틈을 이용해 ‘낭비의 시간’을 만들면서 서서히 예술력 수레바퀴는 움직이기도 하고 멈추기도 했죠. 이 수레바퀴는 생각보다 더디 움직이고 육중한데다 혼자 힘으로 오랫동안 굴려봐야 감이 생겨요. 심지어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고요. 또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한다 한들 생산적인 힘을 발휘하기까지 또 다시 ‘낭비의 시간’이 소모돼요. 쓸모없는 시간이 무한정 흘러가는 거죠.

노마드 독서를 돕는 수레입니다.

책을 내기 전과 후, 달라진 점들

정처 없이 ‘낭비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사람들의 관심은 유지되더군요.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너는 예술가냐? 너는 그 무슨 시간 낭비를 오래도록 하느냐? 그래서 네가 남는 것이 무엇이냐? 다 늙어서도 꿈이 있느냐? 너 참 사서 고생을 왜 하냐? 에너지 낭비, 시간 낭비, 돈 낭비 등 갖가지 낭비 이야기 등이 섞여 버무려진 의문과 질문이 오고 가더군요.

저는 책을 내기 전과 후 특별하게 달라진 점이 없어요. 제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기에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점이 없을 수도 있지만, 혹시나 제가 유명 작가가 되더라도 저는 제 삶을 달리 살고 싶지도 않거든요. 가끔 아주 가끔 내가 정말로 유명 작가가 되면 어떻게 하지? 하고 걱정을 다 한다니까요. 나는 지금 이대로 딱 요만큼 글을 읽고 쓰고 있음에 충분히 감사하거든요. 그래도 책을 낸 후 달라진 점을 손에 꼽자면 ‘괜히 책을 내서 힘도 들고 바빠지기만 했네’라는 생각을 합니다. 의외의 반전이죠?

낭비의 시간을 견뎌냈으니 책을 내서 너무 행복하고, 글을 쓰며 살아서 꿈만 같다고 상상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나는 나의 ‘낭비의 시간’이 이루어 내는 결과물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요.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어떠한 낭비의 시간을 보냈을까? 내가 글을 읽으며 보낸 낭비의 시간 말고 다른 낭비의 시간은 무엇인가를 과연 생산했을까? 하고 되물어보니 조금 다른 결론이 나더라고요. 여러 가지 낭비의 시간이 있겠지만 제 경험상으로 글을 읽고 글을 쓰는 ‘낭비의 시간’은 그 결과물이 꼭 책은 아니더라도 삶에 대한 호기심, 지적인 연결, 주변인에 대한 인식 변화 등 다양한 관점을 불러오는 것은 확실해요. 만약 읽고 쓰는 낭비의 시간을 보내봤는데도 나는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은 낭비의 시간이 너무 짧았거나, 진짜배기 낭비의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입니다.


제가 글을 읽고 쓰는 낭비의 시간을 가졌구나 하고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정확히 알려드릴게요. 매달 책을 2권 이상 읽고, 매일 3줄씩 글을 써보는 것을 1년 이상 해야 합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예시는 가장 최소한의 ‘낭비의 시간’입니다. 조금 더 ‘낭비의 시간’에 관심이 가는 분은 매달 책을 5권 이상(모든 장르) 읽고, 매일 A4 한 페이지의 글을 마무리 짓는 것입니다.

최소 6개월 동안 이러한 ‘낭비의 시간’을 보냈다면 제게 쓴 글 3편을 메일로 보내 주셔도 좋아요. honeybny@naver.com

'낭비의 시간’ 동안 돌아가지 않는 수레바퀴를 제가 휙- 돌려드리겠습니다. 책을 내고 달라진 점은 멈춘 바퀴 돌리는 노하우 정도를 장착했거든요.


책을 내고 달라진 점이 "있다"고 말하는 이성작가의 글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책을 내기 전과 후, 달라진 점 - ”있다?”
저는 책을 내기 전과 후,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고 느낍니다. 물론 책을 냈기 때문에 달라진 것인지 인생이란 게 늘 조금씩 변화하기 때문인지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달라진 부분이 존재합니다. 새로운 일을 하게 됩니다 책이라는 건 여러 가치를 지니지만, 요즘 관점에서의 책은 ‘퍼스널 브랜딩’과 연관되는 것 같아요. 어떤 책들은 역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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