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평범’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 먼저 살펴봐야할 것 같습니다. [평범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라고 적혀있는데요.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뛰어나고 모두가 색다르니까요.

감성작가의 글 <평범한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있을까?>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너무 평범해서 작가가 되기 힘들 것 같아.’ 바로 뒤에는 “지금까지 지극히 평균치의 삶만을 살고 있다”라는 내용도 이어지네요. 스스로를 평범하다 생각하다니…. 할 말은 많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평범하다 생각합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부터 시작해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까지,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실히 있긴 하죠. 평범하지 않은 경우 실제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획일적인 분위기는 줄어들지만 그럼에도 평균치에서 벗어난 삶은 응원 받지 못합니다.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고요.

저는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조금 무난해 보이는 사람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인간이 그렇게 단순하고 표면적인 존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모두 ‘X라이’라고 생각해요. 겉으로 티가 많이 나느냐 적게 나느냐 뿐이지 사람은 모두 독특하고 개성 있는 존재입니다. 보통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보통은 하나의 신화일 뿐이죠. 세상 어떤 사람도 똑같이 생기거나, 환경이 같거나, 인생에서의 선택이 일치하는 경우는 없잖아요.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보통이라 규정짓는 건 우스운 일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평범한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평범한 사람은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만약 실제로 평범하다고 느낀다면 그 자체가 개성이므로 작가가 되는 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죠. 어른들은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지만, ‘평범한 삶’이 말 그대로 평범한가요? 세상 치열한 삶 아닌가요? 아무런 굴곡 없이 평범한 삶을 영위했다면 저는 그 삶의 주인공이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은 살기 어려운 삶을 산 것이니까요.

왜 작가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질까요? 이건 아마도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한 가지 공통점 때문일 겁니다. 그건 바로 ‘삐딱하게 보기’인데요. 작가들에겐 남들이 그냥 지나치는 것들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3월에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을 때 보통은 ‘꽃이 폈구나’, ‘봄이 왔구나’ 정도로 생각하지 진달래가 언제 피는지, 철쭉과 어떻게 다른지, 철쭉보다 일찍 피는지 늦게 피는지, 진달래에 얽힌 설화는 무엇이 있는지 등을 떠올리지 않죠. 하지만 진달래를 유심히 관찰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시조를 남기기도 합니다.

두견화 어제 디고 척촉(琇乘) 오 픠니

산중(山中) 번화(繁華)ㅣ야 이 밧긔 이실

호나 유수(流水)에 흘러 소식 알가노라

-김시홍

‌‌기자들의 글도 봐볼까요. 기자들은 대중들이 그냥 지나치는 사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합니다. 어떤 사안이 있을 때 이것이 기사거리가 되는지 되지 않는지 즉각적으로 판단하죠. 베테랑 기자들은 이런 훈련을 되어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세상을 향해 더듬이를 세우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래도 집중을 하고 있으니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도 잘 볼 수 있게 되고요. 경쟁 매체의 다른 기자가 보도한 내용도 자세히 살피죠. A라고 해석했지만 자신은 B라고 해석하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도 하고요. 이처럼 사안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습관이 쌓여 좋은 글을 만들어냅니다.

작가들이 삶이나 일상은 평범해도 시각은 독특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렸는데요. 작가들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확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는 자신이나 가까운 지인의 일에 그치는 사안을 확장적으로 해석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입니다. 요즘 많은 직장인들이 퇴사를 꿈꾸죠. 퇴사에 관한 책도 넘쳐나고요. 누구는 그냥 퇴사를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퇴사 경험을 콘텐츠로 만들어 책을 출판해요. 퇴사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을 잘 기억했다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을 법한 독자들과 연결하죠. 회사 다니는 것이 ‘힘들었다’라고 쓰는 것이 아니라, 왜 힘들었는지, 왜 늘 최선을 다하려고 했었는지, 성공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같은 이야기를 쓰다보면 확장성을 가지게 되죠.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

최근에 <며느라기>의 수신지 작가님 강연을 들었는데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씀해주셨는데 인상 깊었어요. <며느라기>는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 같은데, 시댁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을 그린 인스타툰이잖아요. 여성들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의 글을 읽으면서 너무 극단적인 사례는 제외하고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을 모으셨다고 해요. 이후 <곤>이라는 낙태죄 관련 만화를 구상할 땐 낙태죄 찬반 집회에 고루 나가보기도 하셨대요. 저는 작가의 이러한 취재 과정이 모두 ‘확장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나의 사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례들을 모아모아 작가의 시각을 더해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게 된 것이죠.

자신이 ‘너무 평범해서 작가가 되기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계신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평범함’이 문제라고 느끼신다면 혹시 다른 요인 때문에 작가의 길이 저어되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생각이 많고, 예민하고,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며, 스스로 특이한 구석이 있다고 느끼신다면 작가가 될 준비가 이미 끝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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