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 평범해서 작가가 되기 힘들 것 같아’라고 대학시절 내내 생각했습니다. 미대 졸업 후 특별한 사연도 없고 매일 평범할 뿐, 평생 주인공 근처도 못 가본 그런 사람이 어떻게 ‘특별한 작가’가 될 수가 있나 하는 생각에 미술이론을 선택했죠. 이후 큐레이터가 되었고 조금 더 살아보니 사연 없는 큐레이터도 사연 있는 큐레이터도 골고루 있더군요.

지금까지 지극히 평균치의 삶만을 살고 있는데 나의 글은 세상에 어떤 쓸모가 있나 하는 생각이 여전히 스쳐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갈증에 제격인 시원한 냉수 같은 책을 만나는데요. 제가 작가로 수명 연장 하듯 활동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책복’(인복 다음 책복) 아닐까 싶어요. 다음날의 피곤함을 감수하면서 책을 읽을 때가 있는데 오랜만에 냉수 같은 책을 만나 ‘피곤한 내가’ 이기나 ‘읽고 싶은 내가’ 이기나 겨루며 새벽 3시까지 완독했어요. 읽고 싶은 내가 이긴 경우는 그만큼 좋은 책이라는 거죠.

책에 대한 글과 책, 책 전체를 펼쳐 일러스트를 구경했습니다.

피곤을 이기게 해준 책은 결혼이주여성이 된 세여자의 분투기 『거기까지 가서 그렇게까지』입니다. 다소 평범한 세 명의 여성들이 인생에서 마주친 ‘뜬금없는 제약’을 극복, 스스로 자신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평범한 저자들―하늬, 유진, 다정―의 고군분투기

세 명의 저자 모두 에세이를 처음 쓴다는 말을 책 속에서 여러 번 반복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외에 그동안 글을 많이 다루어 본 구력도 느껴졌죠. 저는 에세이를 읽을 때면 에세이에 숙련된 작가의 글보다는 처음 에세이를 쓰는 사람의 글을 선호해요.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지 수위조절을 못한 채 그만 자신을 다 드러내는 순수한 지점은 첫 에세이를 쓰는 작가만이 할 수 특장점 같은 것입니다. 구독자 여러분들 중 에세이를 출간할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숙련된 글을 써서 에세이를 내려고 하지 말고 첫 에세이의 순수함에 더 큰 가치를 두고 도전해 보길 바랍니다.

아무튼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남편을 따라 김천, 세종, LA 로 흩어지게 된 사연과 그로 인해 주인공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자신들의 직업 그리고 원래 직업을 유지하기 위한 고군분투, 새로운 도시에 천천히 적응해가는 자신만의 삶을 일궈내고, 남편과 동등한 관계를 위해 서로 배려하고(싸우기도 했지만) 인정하는 과정 등이 담겨있어요. 감성작가의 부실한 요약은 책에 표현된 문장과 내용을 담지 못하네요. ‘새로운 곳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직업을 만들어 내는’이라는 키워드로 고요하면서 흥미진진한 매력적인 책인데 말이죠. 특히 라이팅듀오 구독자분들처럼 새로운 일을 위해 시동을 거는 사람들에게 기승전결을 세 명의 작가를 통해 세 번이나 색다르게 경험하는 그런 책이고요.

하늬_유진_다정 조화로운 인간상, 삼각 구도

이 책의 묘미는 평범하게 큐레이터로 시작해 글 쓰는 작가가 된 나의 원동력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거였어요. 나와 무관한 세 명의 삶이 어쩜 저와 이렇게 닮아있던지요.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무모한 한 걸음 내딛기 위한 과정,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의 나태함과 갈등, 전혀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 나를 가장 깊숙이 알아 가장 깊게 긁어버리는 엄마와의 갈등,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들이 등을 쑥 쑥 밀어주었던 경험 등 전반적으로 과거의 나를 되돌아 볼 수 있었죠.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는 우리

평범한 사람 누구나 그의 하루를 들여다본다면 세상 그 누구의 삶이 그렇게 평범한가요?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평범함으로 포장된 우리 모두의 하루는 결코 만만치 않아요. 안면근육의 이상신호가 오기 직전까지도 자신은 그저 평범한 하루를 열심히 보냈을 뿐이라 착각한 다정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 아닌가요? ‘나는 괜찮다. 이 정도는 해내야 하지 않을까? 나는 힘들지 않은데. 어른이면 이 정도는 견뎌야지’라고 생각하며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하루를 견뎌낸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그런 손해의 시간 뒤 우리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자신도 모른 채 길러져 있기도 해요. 인내하고 상황을 견뎌낸 자를 뒤에서 응원하는 사람, 시간이 지나도 손해만 보던 사람을 기억해 두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우연한 기회에 도움 주는 사람 등 세상의 모든 손해의 시간에 대한 보상은 의외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요. 다정 역시 손해의 구간에서 알게 된 동료들과 그녀의 첫 책을 내게 된 것에 대해 아주 뒤늦게 손해와 창작 보상을 경험했다 적어두었고요.

책을 출판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멀리서 보면 그 사람은 굉장히 특출나고, 온 우주가 도와주는 대단한 인연이 있었을 것 같고, 내가 가지지 못한 뒷배가 있을 것이라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가까이 두고 하루하루 지나온 이야기를 모아 들어본다면 결코 ‘안락하게 마련된 특별함’은 없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특별히 틀어진 상황과 문제, 보장되지 않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선택해야 했던 과정과 실패, 다시 선택해도 또 실패 그리고 주변의 무시와 위기, 겨우 모면한 위기상황과 안정기, 나의 내면적 갈등 이외에 다시 다가올 모험 변수 등 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할 것입니다.

물론 무난하고 행복한 순간들도 많겠지만 고단하거 마음이 뻑뻑해지는 일상이 적절히 버무려져 있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죠.  특별한 상황을 경험하는 작가도 많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삶에서 창작 소재들이 건져 올려 집니다. 또 창작자로 살 수 있는 기회도 창작자의 삶과 가장 무관했던 일, 내 발목을 가장 강하게 잡던 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 인생에서 가장 불편한 장소와 소재가 어우러져 좋은 문장들로 이어지고 그로부터 창작의 기회가 획득되기도 하거든요. 감성작가의 경우도 미술계에 몸담은 10여년의 시간동안 많이 헤매고, 멈춰졌고,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 여러 번 말 했고요. 꼭 누군가 나에게 손해를 끼진 것은 아니더라도 내 스스로가 손해의 시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도 한 그 모든 시간들이 헛수고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덧붙여요.

저녁 아홉시에 일하러 잠시 나왔는데, 책 상위에 티 나지 않게 돕는 힘들이 놓여져 있더군요.

티 나지 않게 나의 평범함을 돕는 힘들

유난히 손해를 많이 보는 상황이 생기면 ‘물밑에서 돕는 힘’도 잘 기억해주세요. 서로 알지 못하는 곳에서 손해 보며 견뎠던 동료의 얼굴을 떠올려보세요. ‘내가 힘겹게 견딘 시간만큼 충분한 보상을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라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등 뒤에 있답니다. 감성작가가 오래전 겪은 일을 이야기 하며 마무리 해 볼게요. 제가 꼭 했으면 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누군가의 추천으로 그 일을 제안 받았다는 것을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죠. “누가 저를 추천했죠? 궁금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하지만 담당자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추천한 분이 절대 제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3년 정도 지난 후 추천인이 누군지 우연히 듣게 되었고 극구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을 제가 도울 기회가 왔습니다. 저는 똑같이 은혜를 갚았어요. “담당자님 절대로 제가 추천했다고 말씀드리지 말아주세요!”

이 무슨 신파 같은 이야기인가 하겠지만 당사자인 저는 지금도 마음이 뜨끈해지는 추억으로 마무리 된 쌍방향 은혜로움과 은혜 갚음이었어요. 세상에는 물밑의 손으로 평범한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러니까 한순간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말고 손해를 좀 보세요. 손해 본다고 계속 망하지 않는답니다. 손해 보면서도 내가 자꾸 망하지 않는다면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물밑 손들이 나를 엄청나게 떠받쳐 주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고 나도 누군가를 열심히 물밑에서 받쳐주십시오. 티 나지 않게 그리고 티 내지 말고. 이런 힘들이 모여 나의 평범함을 비범하게 해주는 창작의 힘들로 바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