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뭐 하고 놀까?"

감성작가와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해놓고선 오랫동안 아무 것도 쓰지 못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실 수 있겠지만, 최근 들어 논 기억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안 놀게 된 걸까 자문자답해 보았는데요. 웬걸, 계속 일만 한 것 같아요. ENTJ의 전형적인 특성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감성작가에게 짐짓 눙치며 말을 꺼냈죠. “전 이 글 안 쓸게요!” 그랬더니 감성작가가 굉장히 신박하다며 안 노는 이야기를 쓰라고 하더라고요. 라이팅듀오를 시작한 이래 최대 위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물론 저도 문화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전시나 공연을 볼 때는 행여 내가 놓치는 게 없을지 두 눈을 크게 뜨고 비평적으로 살피기 때문에 노는 느낌은 아니에요. 전시 가는 날을 스스로 ‘출장’이라고 명명하기도 합니다. 실제로도 자료조사나 취재에 가깝죠. 드라마나 영화도 봅니다. 하지만 한 드라마에 빠지면 해당 회차를 챙겨보는 수준을 넘어 유튜브에 있는 분석 영상과 댓글, 블로그의 후기까지 다 찾아보죠. 제가 써놓고도 피곤하군요. 친구들을 만날 때도 있어요. 그나마 ‘논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범주네요. 일적으로 만난 사람들과는 노는 단계로 잘 나아가지 않아요. 감성작가와는 조금 놀고 있긴 해요.

이성작가의 몇 안 되는 취미 활동, 펭수 그리기

‘그러면 넌 놀지도 않고 일만 하느냐?’라고 물으실 수 있어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사실 저는 퇴사 후 ‘나만의 일’을 찾는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일’과 ‘놀이’를 일치시킨 것 같아요. 그렇기에 스스로는 인생에 ‘놀이’가 빠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글쓰기가 저한테 일일까요, 놀이일까요. 둘 다거든요. 대학원 수업을 듣고 논문을 쓰는 것도 저한테는 일이자 놀이예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 감성작가가 “오늘 일 많이 했다!”라고 말하면, 저는 늘 똑같이 답해요. “일 한 게 아니라 논 겁니다.” 장난 아니라 진심인데, 진심이라서 감성작가는 더 식겁하죠.

하지만 '남의 일'이 아닌 ‘자기 일’을 하면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의 경계가 많이 흐려지는 것 같아요. 이 일을 해내면 오롯이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잖아요. 사업가나 창작자는 일이 ‘어렵다’, ‘힘들다’라고는 느낄 수 있을지언정 ‘하기 싫다’라고는 잘 표현하지 않죠. 자율성이 높은 업무라면 일이 놀이가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돈’과 너무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도 ‘놀이’로 치환하기 어렵습니다. 생계유지를 위한 일이 어떻게 놀이가 될 수 있을까요. 일에 가깝습니다. 즐겁지 않죠.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일’을 세 가지로 정의하더라고요. 바로 1) 생계유지를 위한 일, 2) 자아실현을 위한 일, 3) 공동체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은 생계유지를 위한 일로 배달의민족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자아실현을 위한 일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배달의민족 서체, 을지로 비엔날레, 배민 신춘문예, 배민 아트, 배민 의류, 매거진 F, 사랑의 열매 봉사 등을 했다고 해요. 일 안에서 어떻게든 재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돋보입니다.

펭수를 클릭하시면 이성작가의 그라폴리오를 보실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고 말해요. 어떤 마음인지 잘 알 것 같아요. 지금 삶이 너무 팍팍한 데다 돈 걱정 없이 살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막상 그런 삶이 주어졌을 때 아주 행복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 기준에서요. 자아 실현도 하고, 어느 정도 돈이 따라오게 만드는 게 가장 밀도 있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선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겠지만요.

일하는 게 노는 것이고, 노는 게 일하는 것이라는 다소 황당한 결론에 이르렀는데요. 제가 최종적으로 일과 놀이를 일치시킨 이유는 김봉진 대표의 말처럼 ‘저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사실 퇴사 후 주 7일 쉬지 않고 일하는데요. 이걸 말 그대로 ‘일’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못했죠. 이 모든 게 ‘놀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지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