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눈에만 보이는 식스 센스의 힘으로 저는 글을 써 냅니다. 영화 <식스 센스>를 보면 “나는 귀신이 보여요”라고 대답하는 어린 소년이 나오죠. 저는 그 장면을 볼 때 마다 “나는 글감이 보여요”라며 혼자 중얼거려요.

무언가를 쓴다는 것, 무언가를 그린다는 것,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그 무언가를 섬세하게 관찰하는 힘에 의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개인이 가진 고유한 식스센스가 발동하는 거죠.

나의 식스 센스는 주로 ‘보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어요. 나는 최소 하루에 한 가지 이상은 무언가를 유심히 보게 돼요. 그것은 유행하는 오브제일 수도 있고, 후미진 뒷골목의 담벼락일 수도 있고, 책 한 귀퉁이에 실린 하찮은 도판일 수도 있고, 독특한 타이포그라피일 수도 있고, 리뉴얼 된 곰표 막걸리 일 수도 있고, 지하철 구석에 붙여진 닳은 펭수 스티커일 수도 있고, 동물원 바닥 유인원 관 방향 표시일 수도 있고, 옆에 앉은 창작자가 마음대로 벗어 둔 슬리퍼 모양새일 수도 있고, 소파에 얼룩진 무늬가 그림자와 결합되어 나타난 빛의 콜라주일 수도 있고, 아이가 몰래 가방에 넣어둔 꼬깃꼬깃한 3년 전 쪽지일 수도 있고, 장바구니의 꽃다발처럼 펼쳐진 파 한단 일수도 있고, 에르메스 브랜드의 기막힌 감각의 쇼윈도 일 수도 있고, 세계적 일러스트레이터 요안나 콘세이요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그림책 일 수도 있고, 인스타에 소개되는 개인의 작업일 수도 있고, 남대문에서 수세미를 만드는 할머니의 공예소품일수도 있는 등….

정말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정도로 ‘나만의 귀신스러운 것’이 보여요.

나만의 귀신스러운 것. 어린이 대공원 바닥에서 발견한 타이포그라피.

매일 매일 경탄하는 나

괴테는 “매일 사소한 것에 경탄하라. 그것이 예술작업의 원동력이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저는 그 말이 자주 생각나요. 저는 ‘매일경탄’을 사자성어처럼 사용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하루에 하나씩 사소한 것에 경탄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쓰기의 저력이 생긴다고나 할까요. 저는 이런 생활이 습관화되어서 경탄하고 사진을 찍고, 한두 줄의 기록으로 남기는 행동을 거의 매일 하는데요. 창작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 경탄놀이는 쓰기가 막힐 때 얼마나 굉장한 힘을 발휘하는지 몰라요. 이걸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일을 하다 복잡한 마음이 스칠 때, 머리가 아플 때, 쓰기 싫을 때는 나만의 경탄놀이를 하며  죄책감 없이 놀지요.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놀기’에 해당하지만, 그보다 저는 나만의 식스센스를 발휘할 수 있는 환경으로 몸을 이끌어서 놀아요. 작업해야 할 시간에 왠지 놀고 싶다면 더더욱 혼자 유의미한 놀 거리를 마련해서 그 속에 푸욱 빠졌다가 나와요. 짧게는 30분 길게는 2~3시간 정도로요. 시간이 넉넉하면 주로 미술관을 혼자 천천히 돌아보기도 하고, 시간을 쪼개어 써야 할 때는 작은 갤러리를 10분 만에 쓱 둘러보고 나오기도 하죠. 정말 시간이 없을 때는 전시는 안보고 미술관 아트 숍에 들러서 엽서라도 구매하고 나와요. 또 예술과 무관한 과학 책방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지갑 없이 백화점을 쏘다니기도 해요. 물욕이 없다는 건 거짓말 같아요. 시간과 돈만 생기면 무언가를 자꾸 사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충동적으로 노는 날은 지갑과 카드를 되도록 멀리 두고, 경탄부터 한 후 꼭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카드를 가지러 차에 오는 셀프 브레이크 장치를 작동시킵니다. 시간차를 두면 구매욕구가 줄어들거나, 이게 과연 필요한지 정신을 차리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꼭 갖고 싶으면 사긴 사요. 이렇게 보는 것, 듣는 것, 사는 것에 대한 나만의 놀이 규칙이 있답니다.

글 잘 쓰는 오빠 괴테의 역사적인 책,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실물 책 본 날.

기꺼이 밥값을 지불하고 싶은 사람과 보내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