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이성작가의 <잘 팔리는 책 쓰는 법>에 대한 감성작가의 답신입니다.

잘 팔리는 책 쓰는 법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 둘 다 놓칩니다잘 팔리는 책과 잘 팔리지 않는 책을 분석해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닙니다만, 책 판매와 관련한 제 나름의 분석 결과를 공유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창작자를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와 전략가가 그것입니다. 예술가는 창작을 할 때 ’나

세 마리 토끼가 있다 생각합니다.

"잘 안 팔리는 책을 쓰고 싶은 작가가 세상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저는 늘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략을 짜는 방법도 모르고, 치밀한 전략에 숟가락을 얹어볼 성격도 못 되는 작가들이 예술가로 자주 분류되나 봅니다. 저는 제 입으로 예술가라는 말을 하는 것이 남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이성작가가 말한 대로 전략가적 작가와 예술가적 작가 중 선택하라면 나는 예술가적 기질의 작가라 답을 하겠죠.

독자와의 소통을 제1원칙으로 삼으며 글도 잘 쓰는 이성작가가 부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성작가가 자주 하는 말, “전략만 좋으면 책이 성공한다”에 완벽히 동의할 수가 없어요. 이성작가의 글이 탄탄하게 뒷받침되어 있는 것을 늘 전략적 프레임으로 겸손하게 에둘러 표현한다 생각하니까요. 저는 이성작가의 책 그리고 이성작가와의 소통에서 제가 전혀 모르던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어요. 저렇게 양쪽으로 발달해 있는 사람이 나를 라이팅 듀오로 이끌어주는 모습에 가끔 버겁고도 대부분은 감동스러워요.

감성작가도 혼자 전략을 잘 짤 수 있다면 소중한 나의 책에 화려한 전략을 무장시켜 세상에 출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하지만 저는 엄두도 안 나고, 방법도 몰라요. 물론 세상 어딘가에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잘 해내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함께 꼭 붙어서 듀오 활동을 하고 있네요.

이성과 감성은 합쳐야 100%

저는 이성작가가 말한 예술가 타입의 작가 그리고 그들의 작업에 대한 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어 보고 싶어요. 사실은 세 마리 토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서예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면 토끼를 다 놓치지만 토끼가 서너 마리 있다면 그 중 한 마리는 잡을 확률이 높아지죠.

나는 전략을 짤 줄 모르는 예술가 타입으로 분류되는 작가이지만, 우리세계에도 나름의 전략이 있는데요. 그것은 내 작업에 파묻혀 버리는 것입니다. 글도 써야 하고, 연구도 해야 하고, 홍보도 해야 하고, 전략도 짜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친구도 만나야 하고, 가끔 몸도 아프고, 잘나가는 사람들 책도 사줘야 하고, 힘들어하는 후배 밥도 사줘야 하고...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잘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많은가요? 세상의 운을 모두 안고 태어난 사람 아니고서야 동시에 해내는 멋진 사람은 거의 없죠. 그러니 글만 쓴다 생각하고 그 이외의 것은 접어 버린 겁니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내 작업에 더 신경을 쓰자는 전략이죠. 완벽하게 세상의 전략을 접진 못하지만 내 밥그릇이 아닌 것은 과감히 버립니다.

대신, 내가 쓰는 글에 얼마만큼 나를 쏟아 붓는가는 늘 관찰해야죠. 누군가 당신의 직업이 무엇인가요? 하고 물을 때 저는 항상 두 가지로 대답을 해요. 내가 일주일 동안 주 5일 이상 하루 5~7시간 이상 작업을 했나 살펴보고 그 이상의 작업을 했다면 “네, 저는 작가입니다”라고 대답하고, 그렇지 않고 적당히 놀아버렸다면 “저는 글을 쓰긴 하는데 좀 쉬고 있습니다”라고 답변을 합니다. 전략도 못 짜고 대안도 없는데 내 작업만큼은 한계를 두지 않고 끝까지 해낸다는 작업 정신이 있는 거죠.

또 나를 희망고문으로 무장시켜 괜찮다며 다독이지도 않아요. 내 글이 널리 읽히지 않는 이유는 내 탓이라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더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을까 고민도 합니다. 최근 제 두 번째 책이 괜찮은 성과를 가졌다 칭찬해주는 이들을 만나도 속으로 단 한 번도 자신 있게 자만한 적이 없어요. ‘이제 43살이니 20년 정도 더 쓰면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매일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쓰다 너무 힘이 들고 지쳐 회의감에 입맛도 잃을 때는 스스로 희망의 당근을 주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자기주문을 외워요. ‘나는 도전하는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니 사후에 인정받을 것이다. 참고 쓰자. 혹시 사후에 인정을 못 받더라도. 어차피 나는 죽었으니 모를 테지. 히히.’ 이렇게 아무도 들리지 않게 혼자 머리를 쓰다듬고 새로 나온 햄버거 메뉴를 기웃거립니다.

말 나온 김에 작업에 대한 평가 이야기도 나누어 보고 싶어요.

엄유정 작가님의 인물드로잉과 드로잉 선

이성작가가 엄유정 작가의 <Feuilles>를 두고 극찬을 했군요. 참 드문 일인데 부럽네요. 나는 질투부터 앞서는데... 물론 엄유정 작가의 <Feuilles>는 우수한 심사위원의 눈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되었겠죠. 이성작가도 그리 생각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요. 아직 실물을 살펴보진 못했지만 엄유정 작가님의 작업을 잘 드러낸 북 디자인인 것도 맞고,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는 데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는 엄유정 작가의 작업을 책이 절반도 못 담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글이 하나도 없는 도록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되니 글이 대부분인 작가들의 책이 그 아름다움의 한계를 이길 수가 있나 의문도 들었지요. 이건 지극히 제 주관적인 생각이며 이를 적는 이유는 세상의 평가에 길들여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적고 싶어서입니다. 서양미술사의 인상주의 이후 사조들은 ‘욕설’이 타이틀이 되었다고 하지 않나요?

그러니까 빛을 연구하며 움직이는 눈과 마음을 따라 출렁이는 바다를 표현한 모네의 그림이 인상파의 대표작으로 소개되곤 하는데요. 그 당시 똑같이 그린 그림에만 익숙한했던 평론가와 대중들은 ‘어휴, 저렇게 물감을 뭉텅이로 발라 놓은 그림이 뭐람. 본질은 없고 인상만 남았군! 발로 그린 그림 같다’라고 욕을 해대며댔죠. 인상주의 사조는 이렇게 탄생합니다. 또 강렬한 색과 공간에 대한 입체적 구분을 해체해서 그렸던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보면 ‘정신병자 같은 이라고! 빨간색을 온통 퍼부어두었군. 세상에나. 이건 뭐야, 칠하다 만 얼굴에 코는 초록색으로 뒤덮여 있어. 야수스럽기 그지없자나’라고 욕을 먹으며 탄생한 것이 야수주의죠.

그러니 이번 생에 내 작업이 욕을 많이 먹고,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너무 억울해하지 마세요. 특히, 예술가 타입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반적인 평가에 너무 위축되지 말고 스스로 집요하게 판단하고 연구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예술이 평가에 매몰된다면 한 시대도 견뎌내지 못한 예술도 작업도 아닌 ‘그 무언가’일 뿐이니까요.

단, 스스로가 냉철하게 자기 작업을 되돌아보는 습관은 잊지 마시고요!

덧붙여 근래에 읽은 이성작가 글 중 가장 흥미롭게 읽은 글입니다.아래에 링크를 넣어뒀어요. 듀오 활동을 하면 흥분되게 재미있는 순간도 있지만, 속이 터질 듯이 답답해서 피하고 싶은 순간도 많아요. 그런데 서로 닮아가는 모습 또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이 엉뚱하게 채워져 가는 모습에서 쉽사리 듀오는 끝날 것 같지 않아요. 고흐가 있는 아를에 고갱이 와서 함께 작업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갱과 고흐는 각자가 바라보는 작업세계가 달라 언쟁을 벌이곤 했죠. 싸움이 격해지고 고갱이 짐을 싸서 훌쩍 떠나버렸고 고흐는 버려진 상황을 못 견뎌 자해하듯 귀를 잘랐다죠.

하지만 2021년, 이성적인 고갱은 끝까지 짐을 싸지 않고 격정적인 고흐를 치유해 나아갔고, 고흐는 죽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동생 테오에게 진 빚을 한방에 갚습니다. 다소 냉소적인 고갱이 꿈꾸던 멋진 아틀리에도 선사하며 고흐가 그 아틀리에를 방문해 따뜻한 빵과 차를 마시는 해피엔딩을 상상해 봅니다.

예술가 타입도 좋고, 전략가 타입도 좋습니다. 두 마리 토끼는 놓칠 수 있어도,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 토끼 중에 한 마리는 잡을 수 있겠죠. 혼자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기 어렵다면 저희처럼 듀오를 결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죠. 여러분도 주변을 둘러보고 듀오를 찾아보세요. 둘이서 토끼 한 마리 못 잡겠습니까?

p.s-

고갱 멈춰. 섣불리 짐부터 싸지 말고요.

고흐 멈춰. 섣불리 귀부터 자르지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