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보고 느낀 거를 써야지’ 라는 문장을 초등학교 때 듣고 평생 기억한 작가가 있습니다. 구순의 조각가 최종태님입니다. 저 또한 작가의 인터뷰를 읽고 종일 생각이 나더라고요. 제가 처음 큐레이터 일을 배우게 된 곳이 평창동의 김종영 미술관인데, 제가 일을 할 당시 최종태 조각가가 관장님으로 계셨을 때였죠. 그 당시 저는 조각에 큰 흥미를 가지지 못했을 뿐더러 매일 반복되는 소장 자료 아카이빙 작업이 무료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지금 다시 김종영 미술관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능동적으로 소장품을 관리하고, 미술관에 있는 책들을 열심히 읽고 김종영 미술관이 기획할 수 있는 전시에 대해 고민할 것 같은 이상향을 그리네요. 지금 하는 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요. 최소한 그때보다는 20배 성장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만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날이 오면

비유가 좀 그렇지만 도둑도 익숙한 곳에서 도둑질을 하고 도망을 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도 익숙한 곳에서 하는 전시를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 연유로 저의 아이들은 김종영 미술관의 사계절들 자주 느끼며 크고 있죠. 실내와 야외가 연결된 전시장은 아이들과 함께 가도 답답함이 덜하답니다. 큰 아이가 징검다리가 있는 미술관에 가고 싶다고 해서 마침 잘 되었다 나도 보고 싶은 전시가 있으니 합의를 보고 김종영 미술관에 들렀습니다. 아이들은 도착과 동시에 미술관 밖으로 나갔죠. 고맙게도. 그 덕분에 저는 혼자 조용히 최종태 조각가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어요. 마음 한 구석에는 ‘이 좋은 것을 같이 보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을 했지만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나 혼자 봐야 이 좋은 것을 완벽하게 보지’하며 바로 결단이 섰어요.

조각가 최종태 <구순을 사는 이야기> 김종영 미술관

최종태 조각가는 8.15 해방부터 4.19, 5.18, 6.29 등 우리에게는 특정 숫자로만 느껴지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모두 체감하며 작업을 이어나간 작가입니다. 그의 구술 인터뷰를 보면서 ‘체감’이라는 단어의 예시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만난 일본인 교장에 대한 회고가 인상 깊었어요. 그의 어린 시절은 세상의 이야기를 다 알기 전  일본어를 배웠다가 한국어를 배웠다가 하는 시대잖아요. 그 당시 일본인 교장을 만나 배움을 하던 중 붓글씨 경서대회에 나갔고 1등을 했어요. 할머니와 엄마가 아이를 유심히 볼 사이도 없는 삶에서 그 때 상으로 받은 붓 두 자루를 덩그러니 책상 위에 두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최종태 어린이를 출장 다녀온 아버지가 상장과 함께 상황을 알아 본거죠. 그 계기로 일본인 교장(당시 학교 규모가 작아 교장도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과 교류가 있게 되었는데 그 기억이 ‘일본 사람들이 다 고약한 게 아니고, 좋은 사람도 있었고’라고 하는 부분이 제게 도드라졌어요. 어린 최종태는 열심히 학업을 가르쳐준 교장선생님에 대한 고마움과 더불어 일본 교장선생님의 3살 된 아들소식도 평생 궁금해 했죠. 뉴스와 SNS 등을 넘나드는 일본대 한국의 증오와 갈등보다는 이런 소소한 이야기가 되레 화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혼자 해보았습니다.

이후 광복을 맞고 다시 한글을 배우며 한글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된 작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기회가 또 주어졌다고 합니다. 일본 식민지가 무엇인지, 조선이 무엇인지, 나라 잃은 압박과 서러움의 36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선생님은 글을 써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이 최종태는 신문에 난 것을 써갔고 선생님은 ‘네가 보고 느낀 거를 써야지’라고 했다는데 그때 그 한 마디가 최종태 조각가님을 평생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무엇인가 대단한 학교공부가 인생을 바꾸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평생을 따라다니는 울림을 줄 수 있는 선생님과 그 울림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학생이 최고의 호흡을 발휘해 세상의 진주를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최종태 조각가의 삶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드로잉과 조각, 최종태 조각가만의 스타일로 완성된 2021년 작품

신기하게도 『흔들리는 선』에 실린 드로잉 아티스트 이건용 작가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어요. 중학교 시절 교외 과목으로 논리학 수업이 있었는데 다른 모든 교과목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고 선생님이 교외 과목으로 논리학 수업을 하면서 해준 이야기들이 자기 동기를 부여하는 공부로 이끄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저를 돌이켜보면 ‘왜 그런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나’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저는 최종태, 이건용 작가님처럼 울림 있는 대화를 알아들을 줄 모르는 학생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환경 탓이 아니라 제 문제였던 거죠. 글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신기하게 김종영 미술관 큐레이터 선생님이 제게 해주셨던 말도 기억에 남네요. “지형, 글이 참 좋아요. 특히 도입 부분이 항상 좋습니다. 앞으로 글을 더 써보세요”라고 여러 번 말씀해주셨어요. 그때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내가 무슨 글을 쓴단 말인가,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데 라며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갑옷을 두른 체 살고 있었죠. 그때부터 글을 썼다면 ... 어땠을까요.

들어갈 때는 법이 있고, 나올 때는 법이 없다. 이제 나는 나의 법을 따른다. _ 추사 김정희

최종태 조각가님이 구순의 나이에 깨달은 것을 추사 김정희는 이 세 마디 ‘들어갈 때는 법이 있고, 나올 때는 법이 없다. 이제 나는 나의 법을 따른다’로 다 표현했다며 극찬을 합니다. 저는 늘 20년씩 뒤처지는 사람이라 깨닫기는커녕 저 말을 그냥 외울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지만 40대가 된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무척 도움이 되었답니다.

최근의 드로잉과 작업들

조각가 최종태님은 1970년대에 100일간의 세계 여행을 다녀옵니다. 하지만 여행지 내내 무언가 답답함을 느낀 최종태 조각가는 반가사유상과 한국적인 것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냅니다. 이후 글과 그림, 조각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을 이어가던 최종태 조각가는 팔순이 되면서 좀 다른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내 머릿속에는 세계미술관, 박물관이 있어요. 언제부터인지 하루에도 수십 바퀴씩 세계 미술사를 돌고 돌았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새김질하는 일 같은데, 80이 되면서부터 그게 없어졌어요. 머리가 조용해지더라고. 세계 미술사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같아.”

글을 쓰는 제게 내 세계가 완성되는 느낌은 어떠한 것일까 상상만 하고 있었는데 구순의 조각가 최종태님을 통해 간접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끊임없이 과정 속에서만 작업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고 나 죽을 때까지 나의 완결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다소 비관적인 상상이 나의 작업을 지배할 때 최종태 작가님의 도록을 열어볼 것입니다.

사실 전시장에 도착하면 백 마디 말도 필요 없어요. 자신이 만든, 자신의 법을 따라 만들어 놓은 조각과 드로잉을 보면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직관의 힘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답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직관적인 에너지는 상대에게 너무 크게 전달되는데 이것이 예술세계에만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힘 아닐까 싶어요.

전시는 보지 않고 당일 사온 도록을 보고 따라 그린 7살 딸 아이의 그림입니다. 미술관을 다녀온 효능감은 번거롭게 다녀와야 알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