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생각이 먼저 있고, 언어는 그 다음에 온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언어 없이는 생각을 할 수 없죠. “인간의 의식이 언어로 구축된다”는 ‘발견’을 한 것이 20세기 철학자들의 큰 성취였습니다. 큰 전환점이 됐다는 의미에서 이를 ‘언어학적 전회(linguistic turn)’라고 부르죠.

이처럼 외부 세계를 향한 우리의 사고는 언어를 통해 규정됩니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through)가 아니라 언어 안(in)에서 자신의 본질을 신에게 보고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인간이 구축하는 세계는 언어 안에 존재합니다. 내가 사고할 수 있는 틀이 ‘언어’라는 테두리 안에 있다면 언어를 잘 이해하는 것이 존재의 의미를 넓히는 방법이 되겠죠.

어휘가 중요한 이유

시인이자 소설가인 박일환 작가는 우리말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낸 언어 전문가입니다. 그는 자신의 책 《어휘 늘리는 법》에서 어휘가 왜 중요한지를 이야기하는데요. 이 책에는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신 라이팅듀오 구독자 여러분께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많아 공유해보려 합니다.

박일환, 《어휘 늘리는 법》

이 책에서는 청소년이든 기성세대든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 사용하는 어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젊은 세대만 어휘력이 떨어진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이 좋았어요. 청소년들은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흔히 볼 수 없는 물건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됐다고 해요. 예를 들어 ‘가마니’ 같은 거요. 주변에서 보기 힘든 물건이 됐으니까요. 또 한자를 많이 쓰지 않게 되면서 한자어로 된 개념어를 익힐 기회도 줄었고요. 반면, 기성세대는 새로 생겨난 말에 대한 적응력이 낮다고 해요. 인터넷 용어를 비롯해 변화를 담고 있는 새로운 어휘를 습득할 필요가 있는 거죠. 박일환 작가는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양과 질을 늘리기 위해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어휘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휘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어휘 없이 문장을 만들 수 없고, 아무리 좋은 문장이라도 잘못 사용한 어휘가 들어 있으면 그 문장은 가치를 상실하니까요. 하지만 박일환 작가는 어휘를 익혀야 하는 이유가 꼭 기능적인 측면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제가 글의 초반부에 언급한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언어는 사유를 펼치는 데 필요한 기본 수단이기 때문이에요. 생각이 먼저 있고 생각을 언어로 표현한다고 이해하기 쉽지만, 사실 생각과 언어는 서로 상호작용하잖아요. 알고 있는 어휘가 더 많은 사람이 더 깊이 있는 사유를 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저 또한 다양한 어휘를 익히는 게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해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내 언어의 한계는 곧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한 것처럼, 어떤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사유가 진전이 되지 않는 경험을 종종 하거든요. 얼마 전 감성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람들이 누군가를 존경할 때는 두려워하는 마음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경외(敬畏)’라는 한 단어로 사유를 정리해볼 수 있었어요. 현실이 언어를 구성하는 게 아니라 언어가 현실을 규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평소에 어떤 어휘를 사용하느냐가 사유의 깊이까지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나만의 어휘 만들기

책 《어휘 늘리는 법》에는 어휘 늘리는 법에 대한 팁을 제시하고 있어요. 물론 서점에 가면 어휘 공부를 할 수 있는 책도 많기 때문에 이런 책을 보면서 어휘를 익힐 수 있겠죠. 하지만 이 방법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말이 쓰이는 맥락에 대한 고려가 없이 영어 단어를 외울 때처럼 학습이 되기 때문에 오래 기억하기 힘들어요.

박일환 저자는 어휘 늘리는 방법으로 ‘나만의 어휘 만들기’를 제시하는데요. 어휘를 늘린다는 것은 결국 어휘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이야기와 통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책을 읽을 때나 남과 대화할 때 그 어휘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이 알고 있는 어휘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해야만 ‘나만의 어휘 만들기’가 완성된다고 해요.

나만의 어휘 만들기

나만의 어휘를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글쓰기’를 제시하는데요. 꼭 남에게 보여주는 글이 아니어도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어휘력이 는다는 거예요. 우리 모두 글을 쓰다보면 그 문장에 딱 어울리는 어휘를 찾지 못해서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잖아요. 이럴 때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면서 딱 맞는 낱말을 떠올리는 연습을 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끄집어낸 낱말을 문장 속에 집어넣고 나면, 나중에 글을 쓸 때는 수월하게 그 낱말을 떠올릴 수 있게 되겠죠. 비로소 그 낱말이 온전히 나의 어휘 목록에 오르게 되는 순간이죠.

여기서 주의할 점은 나만의 어휘를 만든다고 해서 굳이 잘 쓰지 않는 말을 고르거나 어려운 낱말을 가져다 쓸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쉬우면서도 아름다운 말, 상황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말을 많이 만들어 쓰는 게 좋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저자는 ‘보조개’ 대신 ‘볼우물’을, ‘배우자’ 대신 ‘옆지기’ 같은 말을 예시로 드는데요. 이처럼 저자는 쉬우면서도 개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낱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낡은 어휘 버리기

박일환 작가는 새로운 어휘를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자주 사용하는 어휘들을 재점검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장님’이란 말 대신 ‘시각장애인’이란 단어를, ‘도둑고양이’라는 말 대신 ‘길고양이’란 단어를 쓰듯이,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는 어휘에 대해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인간관계에서 언어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아요. 기존의 언어에 차별이나 편견이 있다면 낡은 말을 버리고 합당한 뜻을 담은 새로운 말을 써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해요. ‘외국인노동자’보다는 ‘이주노동자’가, ‘살색’보다는 ‘살구색’이, ‘장애인’의 반대말로는 ‘정상인’보다 ‘비장애인’이 나은 것처럼, 예민한 감성으로 들여다보면 여전히 바꿔야 할 말들이 많습니다.

철학자 훔볼트는 “우리는 언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대로 현실을 인식한다”라고 말 한 바 있는데요. 어떤 어휘를 사용하느냐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척도가 되는 것 같아요. 말은 사고를 반영하는 그릇이기도 하니까요. 여러분들은 어휘를 늘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주로 하시는지, 차별적이라고 생각했던 어휘는 무엇이었는지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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