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감성작가가 짧은 칼럼 두 편을 필사해보자는 제안을 했었죠. 필사라고 하면 보통 긴 글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간략한 글을 필사하는 것도 좋다고요. 여러분은 필사를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직 해본 적은 없어도 관심이 있으신지요?

저는 꾸준히 필사를 해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10대 시절부터 글을 종이에 옮겨 쓰는 일을 종종 해왔던 것 같아요. 오늘은 조경국 작가의 『필사의 기초』라는 책을 바탕으로 제가 그동안 필사를 하면서 느꼈던 생각을 공유해보려 해요.

조경국, 『필사의 기초』

조경국 작가는 경남 진주에서 작은 헌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이자 작가예요. 2016년 낸 이 책의 저자 소개 글에 필사를 한 지 10여 년 정도 되었다고 했으니, 지금은 더 많은 필사 경험이 쌓였겠군요. 필사의 고수가 전하는 필사 팁이겠거니 하고 책을 펼쳤는데, 저자의 따뜻한 성격이 많이 드러나는 에세이 형태의 글이어서 여러모로 좋았어요.

필사의 다섯 가지 매력

사실 필사가 엄청 재미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약간 지루한 느낌도 있죠. 요즘은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조경국 저자는 필사만이 가진 매력은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필사의 첫 번째 매력으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꼽습니다. 필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외부의 여러 영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고요. 일, 인간관계 등 여러 가지에 신경을 쓰다보면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내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잖아요. 필사는 함석헌 시인의 시에서처럼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골방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행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경국 작가가 꼽은 필사의 두 번째 매력도 첫 번째 매력과 연관돼요. 차분한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건데요. 필사를 하면 풀풀 날리고 방정맞은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고요. 저자는 “필사는 곧 삶의 성찰”이라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에요. 좋은 문장을 옮기고 있으면 그 글을 쓴 작가의 삶에 포개지는 느낌이 들면서 몰입을 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듯해요. 스스로 집중력이 별로 높지 않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필사를 통해 차분한 마음을 경험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세 번째 즐거움은 ‘기억의 연장’이라고 합니다. 세상은 점점 발전해나가는데 ‘기억력’은 점차 감퇴하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많은 것들이 자동화되면서 기억을 대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박약한 기억력을 보완하는 데 필사가 좋은 도구가 된다는 저장의 주장에 동의해요. 그냥 눈으로 한 번 쓱 본 것보다는 손이라는 촉각을 이용해 한 번 더 감각을 느끼게 되니까요.

그는 네 번째 즐거움으로 돈이 거의 들지 않는 현실적인 이유도 제시합니다. 책, 펜과 공책만 있으면 필사를 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이 네 번째 매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이긴 하네요. 필사의 매력에 빠지면 문구류를 구입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몰스킨 노트와 라미 만년필만으로도 이미 과소비 예약이네요.

저는 저자가 필사의 다섯 번째 즐거움으로 꼽은 부분이 좋았어요. 바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라는 건데요. 필사는 승부를 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보여 줄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쫓길 필요도 없다는 거죠. 빨리 쓰지도 말라고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경쟁을 너무 많이 경험하다 보니까 이런 이유 하나만으로도 필사를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느껴지네요.

필사는 비효율적이다?

이렇게 다양한 필사의 매력이 있지만, 정작 필사가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해요. 일본의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책을 읽는 방법』에서 “정확하게 베껴 쓰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원본을 자주 확인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문장의 흐름이 끊겨 버려 정작 중요한 리듬도 전혀 파악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는 건데요. 저도 필사를 하면서 이 생각을 하긴 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 담당이셨던 담임선생님이 신문 사설 필사로 수능 언어 영역 만점을 맞았다고 말씀하셔서(1993년도 수능을 보고 새로 부임한 20대 선생님이셨습니다) 저도 따라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쓰면서도 내용은 잘 안 들어오고 점점 글씨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여기서 조경국 저자는 필사 이전에 책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일독하고 난 다음 필사하는 것이 좋다고요. 처음 읽기 시작한 책을 놓고 바로 필사하는 것은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충분히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 필사로 넘어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하니, 제가 고등학생 때 왜 필사에 실패했는지 이제야 알겠네요.

필사하기 좋은 시간과 장소는?

필사하기 좋은 시간과 장소는 따로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주변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에 정돈된 책상 앞에 앉아 바른 자세로 필사를 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조경국 저자는 오히려 누군가를 기다릴 때나 여행의 자투리 시간에 필사를 하는 경우가 더 완벽한 시간과 장소에 가까운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고 해도 필사는 통증과 피로를 불러오기 때문에 허리가 휘고, 목이 뻣뻣해지는 순간에는 펜을 놓고 쉬라고 조언합니다. 이 부분도 제가 놓친 것 같네요. 손이 아파도 참으면서 썼거든요. 감성작가가 저한테 새해 인사로 “과함을 줄이자”라고 이야기했는데, 조경국 저자도 필사든 뭐든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하네요. 하루 30분, 혹은 시 두 편, 혹은 두어 단락 정도 좋은 문장을 옮기는 것이 적당하다고 합니다.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면 글씨도 엉망으로 나온다고 하니 여러분은 쉬엄쉬엄 필사해보세요.

필사의 마지막 목적

저는 고등학교 시절 신문 사설 베껴 쓰기에 실패한(?) 이후 대학생 때 김훈의 『현의 노래』를 써내려간 적이 있었고, 회사에 다닐 때는 몰스킨 노트에 좋아하는 시를 한 편씩 적기도 했었어요. 독서를 할 때 인상 깊은 부분을 모두 옮겨 적은 시기도 있었고요. 그런데 요즘은 타이핑을 통한 필사를 주로 해요. 손이 아프기도 하고 더 많은 것을 입력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요. 하루에 한글 문서로 30페이지씩 ‘과하게’ 타이핑을 할 때도 있긴 한데, 그래도 여러 단계를 거쳐 정착한 저만의 필사법이에요. 독서를 하면서 옮기고 싶은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해서 옮기고, 그 아래 제 생각을 쓴 뒤 다른 색으로 바꿔요. 이렇게 하면 기억도 잘 나고 나중에 보기에도 편해서 애용하는 방법입니다.

조경국 저자는 필사를 할 때 ‘베껴 쓴다’라는 생각을 버리는 편이 낫다고 조언해요. 단어와 단어 사이, 행과 행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남기는 일이 필사에 방해되는 일은 아니라는 거죠. 필사의 마지막 목적은 남의 글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글을 쓰기 위한 훈련이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쓴 문장을 요리조리 뜯어보면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면 글쓰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주제 필사하는 법, 어떠셨나요? 여러분도 오늘 필사를 해볼 마음이 조금은 생기셨나요? 글쓰기에 관심 있으신 라이팅듀오 구독자님이라면 필사에도 어느 정도 팁이 있으실 것 같아요. 여러분들의 필사 팁을 공유해주시면 다른 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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