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시려고 하는 말투"는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보다 취할 것이 많을 때 주로 드러난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명상에 빠진 친구가 알려준 유튜브 영상을 켜자마자 안 보고 싶어 당시에는 흘려들은 말인데,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습니다.

서로를 꼬실 이유도, 목적도 없이 2020년 출판 코 워킹스페이스에서 입주 작가로 처음 만났습니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는 정도만 아는 사이인 이성 작가가 웃으면서 말했어요.

"제 책만 읽고 저를 만나면 제가 사람 하나 칼로 찌를 것 같죠? 으흐흫흫" 하고 웃는 모습은 내가 그를 책으로만 아는 모습과 조금 달라보였어요. '생각보다 귀염성스레 유머도 던지는구나' 정도의 느낌을 받았고요.

말이 '코워킹스페이스'지 팬데믹 상황에서 입주 작가 모두 절간처럼 각자의 작업에 몰두했죠. 말을 먼저 거는 사람은 퇴장인 게임을 하는 것처럼 철저히 서로의 선을 넘지 않고 물도 조용히 마시는, 함께 일하는 코(co)가 빠진 (코).워.킹.스.페.이.스.

1년이 지나 재연장계약 기간 즈음 작가들은 삼삼오오 모여 소통을 하기 시작했고, 이성작가와도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다른 사고회로에 웃는 기회가 생겼어요. 그래봤자 3~4회, 30분 내외의 수다였습니다. 어느 날부터 더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생겼는데, 너무나 다른 영역에서 활동한 우리가 미술이라는 교집합 안에서 함께 작업하면 어떨까 상상했어요.

이성작가와 감성작가의 Platform-P 수다장소

원래 말이라는 것이 가볍고, 발랄한 분위기의 대화에서는 무엇인들 못할까요. 그렇게 흐지부지 되는 대화는 또 얼마나 많고요. 그다지 진지하지 못했던 나는 이성작가를 몰라봤던 것입니다. 다음 만남에서 얼마나 꼼꼼하고 치밀하게 나아갈 방향을 정해 왔는지 입이 떡 벌어지고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자신 없어진 나를 변명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못할 이유 네 가지가 마음속에 마련되었습니다. 첫째 나는 두 번째 책이 곧 나올 예정이고 그 책의 일정에 맞춰 좀 바쁠 것 같다는 것과 둘째 나는 더 이상 일을 벌이지 말라는 편집자님의 조언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제 책 편집자님의 애증어린 가스라이팅은 자주 생활전반에 도움이 되곤 하는데 프로젝트를 말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찰떡 변명이죠. 셋째, '이게 이렇게 바로 진행 될 일인가?'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완벽한 변명, 이성작가의 준비성을 보고 나니 나 말고 더 적합한 적임자를 매칭 시켜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는 변명프레임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할 참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성작가의 준비성을 믿고 일이 추진되면 편하기도 하고, 뭔가 잘 풀릴 것 같아 내가 그만둔다고 하면 남 좋은 일시키는 기분도 들어 살짝 고민했지만 이성작가를 만나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말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성 작가랑 일 해보는 것이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 말고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과 듀오를 해 보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하며 최대한 존중하는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나의 자신 없음은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포장하는 것이 최고네'하며 흡족하고 있는데.

단번에 그는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같이 합시다.” 어머...뭐야 멋있네. 나 이대로 꼬심 당하는 거?

막바지 꿈


책을 쓰는 것이 막바지 꿈이 될 것 같아 나는 작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면 꿈을 이루기가 의외로 쉽다 생각해요. 왜냐면 꿈을 꾸는 사람이 많지도 않고, 다들 말만하지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요.

저는 제 전공분야에 끝까지 남으려고 애를 쓰진 않았습니다. 그냥 내가 시작한 분야에서 적응하느라 삼년, 호기심의 삼년, 무기력한 삼년으로 지냈을 뿐이었죠. 즐거운 일도 속상한 일도 지나 마흔이 넘은 요즈음 미술계 한 구석에 20년 동안 그저 남아 있었던 효과가 있구나 싶어요.

막바지 꿈이 보이는 그림 (6세 여아 드로잉)

이성작가가 단호하게 말해 준 "아니요! 같이 합시다"는 그냥 한 분야에 머무르기만 한 나에게는 너무나 신선했습니다. 이성이 발달하면 저렇게 확신에 찰 수 있구나, 저렇게 화끈하게 남을 꼬실 수 도 있고, 실패해도 당당히 자기모순을 고쳐 나가는구나 싶었어요. 무언가를 함께해서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보다 내게 없는 마케팅 기법, 새로운 사고방식을 배우기에 꽤 좋은 기회 같아 기대도 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나도 꼬셔보려 해요. 어디 대놓고 감성작가의 매력을 발산해보자 싶고요. 무얼 하자는 지도 모르겠고, 내가 미술바닥에서 당차게 써보지 못한 단어도 마구 써보는 기회였어요. 이성작가, 감성작가, 돈, 자유...

회의 1시간 만에 제목, 필명, 회사명, 로고 콘셉트, 카테고리, 인스타그램, 인터뷰 방향, 드로잉 방법론, 목차, 마케팅 방향, 채널 분석 결과 보고 등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의사결정을 최대한 미적거리며 단어와 단어 연결의 부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미술계(나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유기체적인 업무형태라는 이야기)와 정반대의 경험이었습니다. 한 번도 다녀본 적 없는 커다란 기업의 의사결정은 저런 것일까? 혼자 상상했어요.

저는 이렇게 '라이팅 듀오'라는 문구를 내걸고 글을 쓰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만남은 자연스러웠으나 지금부터 듀오로 활동해 보기로 했으니 이젠 서로를 꼬셔댔으면 합니다. "그냥 놀면서 재미로 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면 "그냥 놀 거면 우리 그냥 놀아요"의 관계로 지냈으면 해요. "해볼 것이면 제대로 끝까지 해봐요"에 동의하는 사이가 되길 바랍니다. 단, 실패에 서로의 목을 조르지 않기로, 끝을 마무리 할 때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흩어지기를 바라요.

분석적인 이성작가는 미적인 감각을 나누어 줄 감성작가에게 얻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추진 에너지가 바닥난 감성작가에게 활력적인 이성작가는 새로운 세계를 구경시켜 줄 것입니다. 그리고 솔직한 우리 비하인드 스토리기가 처음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혹은 책을 내려는 사람들에게 참고자료로도 쓰임새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반려식물 만큼만의 영향을 남기고 싶은 감성작가 글에 이성작가의 이성적인 방법론과 치밀한 마케팅 전략을 더해 반려동물처럼 명랑하게 날뛰는 책이 나올 수도 있겠거니 상상해 봅니다.

내 생애 첫 듀오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