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져간 책들이 다 팔렸어요”라고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한 출판공유오피스 Platform-P 동료들이 놀라워하며 말하던 그 순간 ‘다 팔린 책’이 내 것이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책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데 책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책이 아직 괜찮다는’ 소식을 직접적으로 전하고 싶어 사람들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담기도 했어요. 코로나 이후에도 책을 보기 위해 줄을 서서 입장을 하며, 양손 무겁게 책을 사서 갔다고 현장 르포 사진을 찍듯 그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사실 보이는 모습만큼 성과와 내실을 확대 해석하고 싶지는 않아요. 여러 출판사 및 작가들은 올해 국제도서전에서 주목도 받고, 높은 판매실적을 기록했겠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구름떼 같은 인파를 보며 즐거워했을 뿐 실질적 성과 면에서는 평균 또는 평균 이하를 기록한 곳도 꽤 있을 것입니다. 다만, 책이라는 매체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확인을 할 수 있었음에 기뻤다는 이야기로 요약 정도로 서두를 마칠까 합니다.

책과 책 옷을 입은 스텝 뒷 모습이 귀여워서 한 컷!

책과 책이 연결되는 곳

제가 책을 읽을 때 또는 책을 통해 무언가를 연구할 때 책은 책을 불러요! 그리고 책을 한 권 두 권 만들다 보니 책은 ‘책 스스로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누군가 넘치게 책의 미래를 걱정하거나, 책과 함께 미래를 어떻게 계획할지가 아니라 책을 통해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에 도취되거나, 책을 매개로 돈을 벌어볼 요량만 앞서면 책은 불편함을 느끼면서 책의 일을 멈추는 것도 많이 목격했고요.

책은 가장 ‘책다움’을 유지할 때 책 스스로 미래를 꾸려 나가는 것 같아요. 저도 처음 도서전에 참여했을 때는 제 책의 내용을 요약하기 바빴었는데요. 책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을 마친 후부터는 제 책보다는 제 책을 쓰기 위해 불러들였던 양서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준답니다. 되레 제 책은 도서관에도 있으니 관심만 가져 주어도 충분하다 결론을 내렸고요. 사실 책이 10권 더 팔린다고 해서 제 책이 시장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고요. 책을 낼 때마다 미완의 부분이 더 많이 보이기에 아직 가야하는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에 적극적 홍보보다는 소극적 홍보 또는 지평을 넓히는 홍보를 택했다고 할까요.

줄을 길게 늘어선 국제도서전, 코엑스 A홀

이번 국제도서전을 통해 저는 다양한 책을 만났어요. 올해는 출판사 부스에서 하는 행사도 진행해야 했고 도서전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조건은 아니었기에 책 구매보다는 책과 도서전 전체 행사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도서전을 다녀봤지만 다닐 때마다 한국 그리고 서울에서 만나는 책의 종류가 이만큼 다양한데 대체 전 세계에는 얼마나 많은 작가와 작업들이 책으로 만들고 있을까 생각을 하면서 다양한 부스를 기웃거렸어요. 가끔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보고 싶은 부스를 지레 포기하고 사람이 없는, 내가 그다지 관심을 없는 부스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요. 저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외서 코너에서 시간을 많이 소비하기도 했습니다. 독일 문화원에서 만들어 놓은 부스에서는 언어를 이해할 순 없지만 책의 만들어진 꼴이나 특별히 시도하려는 것을 새겨 보았어요. 그 옆 프랑스문화원에서 주관한 부스도 보였는데요. 엄청 화려한 그림책을 정신없이 봤답니다.

이번 국제 도서전은 아쉽게도 번역되지 않은 오리지널 상태 그대로의 해외 서적을 바로 구경하긴 어려웠어요. 대부분 한국 출판사들이 가지고 있는 번역된 해외 도서를 보기에는 좋았지만 ‘국제’도서전에 걸맞게 해외의 다양한 출판사들이 국제 도서전에 참여해 한국의 작가들 또는 출판사들과 바로 네트워킹이 가능한 장소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책과 사람이 연결되는 곳

감성작가는 출판사가 마련해 놓은 책 마을 속 한 켠에서 드로잉 안내서 『의자와 낙서』와 『흔들리는 선』을 소개해 보았습니다. 2019년 이후 꾸준히 출판사와 더불어 활동을 도모해 온 결과 국제도서전에서는 제 책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는 것을 체감했어요. 바로 구매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어, 나 저 책 알아” 이렇게 지나가거나, 함께 온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는 모습에 그간의 나의 사서했던 고생에 제 자신에게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 사 줄 마음까지 도착하게 되더라고요. 또 이름 있는 그림책 작가님이 직접 사인을 받아 갔는데, 겉으로 표현한 마음보다 10배는 즐거웠고요. 국제도서전에는 대형 출판사 뿐만 아니라 책마을 속 아트북과 독립서점 문고들 그리고 유명한 저자들을 초대한 행사(김영하 작가, 최재천 교수, 장기하 가수)들이 자주 목격되었어요. 저는 어떻게 얼굴이라도 한 번 볼까 싶어 기웃거리기만 하고는 말았어요.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마치 제가 도서전 스텝인 마냥 손님들이 편안하게 보도록 나는 빠져야지 하는 착각을 하면서요.

도서전 속 체험행사, MBTI 드로잉

제 책이 출판된 출판사에서는 국제도서전 참여 확정 공지를 몇 달 전부터 알려주었어요. 그리고 제게 체험행사 겸 독자들이 즐거울 수 있는 간단한 프로그램이 있는지 물어보더라고요. 제 책의 정체성을 보면 ‘드로잉’이 키워드긴 하지만 자그마한 부스 그리고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이 되기도 했는데 뾰족한 답을 찾을 순 없었어요. 그렇게 도서전 날짜는 가까워 왔고, 작년 성수동 모 출판사 부스에서 재미있게 봤던 MBTI 북 큐레이션이 떠올랐어요. MBTI로 카테고리를 나누어 책을 포장해 두고 판매를 했는데요, 포장이 된 채로 어떤 책이 들어 있는지 알 길이 없는 그런 컨셉이었는데 좀 재미있었어요. 이성작가와 함께 도서전을 들러 제가 선물 겸 두 가지 MBTI 묶음을 구매했거든요. 선물로 주었더니 이성작가가 되레 바꿔 읽자고 하더라고요. 서로 다른 성향의 책을 읽어보자고 해서 웃었던 기억도 나요.

역시 제일 잘한 것을 따라 하는 것이 최고 아닐까요? 그래서 일단은 MBTI 드로잉을 하겠다고 말부터 뱉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계획은 없었습니다. 도서전 며칠 전 열심히 리서치를 시작했는데요. 길이 있으면 뜻도 생기나요? 길부터 세웠더니 뜻이 따라 오던걸요. 구글 서치 중 MBTI를 컬러로 분석해둔 자료가 있었어요. 그 이미지를 보는 순간 아이디어가 쑥 하고 떠올랐어요. 도서전에서의 주인공은 어차피 내 책이지만, 내 책을 전면에 소개하지 말고 먼저 상대방의 MBTI를 물어보거나, 성향, 또는 관계, 분위기 등을 파악하고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 드로잉을 해보자 하고요. 다양한 재료를 챙기고 MBTI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은유한 종이 액자도 준비했습니다. 사실 재료를 준비하면서 과연 몇 명이나 할까 하고 첫날 너무 조금 챙겨간 거 있죠. 25개 정도를 챙겨갔는데 예약까지 받아가며 무려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당연히 재료는 부족했고 출판사에서 준비해 둔 엽서를 활용해서 무사히 마무리는 했고요.

저널리스트들인데 열심히 참여해 주었어요. ^^

드로잉에 대해 즐거운 경험은 도서 구매로도 이어졌어요. 어린이 참여자의 경우 MBTI보다는 좋아하는 색을 물어보고 즐거운 시간을 공유했더니 옆에 서 있던 부모님들이 『의자와 낙서』를 구매해 가시기도 했답니다. 저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도서관에도 있다고 웃었는데요. 참여자들은 주저 없이 사인까지 받아가며 행복을 나누어 주셨어요.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사람들도 있는데 외국인 참여자가 있었어요. 독일 저널리스트들이었는데 MBTI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많이 유행하는 것 같다고요. 그래서 저도 대답했죠. 사실 나도 MBTI에 많이 관심이 있어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해프닝처럼 시작하게 되었는데, 자주 MBTI를 접하다 보니 공감되는 부분도 많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죠.

책을 구경하고, 사람을 만나고, 다른 이벤트들로 연결되는 국제도서전은 2022년 기억에 남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날 체험행사를 한 번 더 진행하게 되었을 때는 제가 아이들도 도서전에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2시간 남짓한 시간을 이성작가는 아이들을 돌보아 주기도 했답니다. 각 3만원씩을 손에 쥐어 주고 원하는 굿즈나 책을 구매하도록 했는데 세상에 양손 가득 구매한 것들과 행사에서 제공받은 것들을 들고 왔더라고요. 이성작가는 생전 먼저 말하지 않을 뱉더라고요. “지형쌤, 배고파요!” “그래 오늘 번 돈 다 써버리자. 먹는 걸로 다 쓰자.”하고 저는 대답했어요. 어른 두 명, 어린이 두 명은 웃으며 뜨끈한 쌀국수를 먹고 마무리했습니다.


이성작가와 감성작가는 비슷한 점도 많지만 다른 점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자주 공유해서 그런지 어느 부분에서 서로가 약점을 갖고 있는지 아는 사이까지 도착했고요. 내년 국제도서전에는 이성작가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워주고 내가 “배고프다” 말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싶네요. 이성작가 포함 도서전을 위해 힘써 주신 모든 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라이팅듀오 구독자님들 우리 내년 도서전에서 만나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