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작가를 처음 만난 건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Platform-P에서 ‘텀블벅 멘토링’을 받으면서였어요. 당시 감성작가는 시니어 대상의 드로잉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었는데요. 바로 <흔들리는 선>이라는 책이에요. 텀블벅 펀딩을 마치고 지금은 서점에도 출간되었답니다. 저희 구독자 이벤트로 받아보신 분들도 계실 거예요.

표지부터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어디에 두든 이 책이 주인공입니다. 표지가 너무 예뻐서 사무실 책상에 세워두었는데, 어떤 분이 와서 저에게 묻더라고요. “서지형 작가님 아니세요?” 이 책은 들고 있는 사람을 저자로 만들어버릴 만큼 존재감이 넘칩니다.

워크숍 교재로 선택한 감성작가의 <흔들리는 선>

저는 오늘부터 이 책을 따라 셀프로 워크숍을 진행해보려 합니다. 셀프라고는 하지만 감성작가가 제 워크숍을 보고 후기를 실어줄 거예요. 책의 목차는 1)점에서 시작하기, 2)색을 느끼기, 3)선으로 개성 찾기, 4)면을 표현하기, 5)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기, 6)점, 색, 선, 면, 공간 활용하기 그리고 '일상에서 전시하기'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제가 책의 목차에 따라 셀프 드로잉 워크숍을 진행한 뒤, 감성작가가 각각의 워크숍에 대한 코멘트를 하고, 마지막에는 전시를 여는 것으로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만든 책이라고는 하지만, 매뉴얼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가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감성작가가 미술교육과 관련한 책은 거의 다 읽었을 정도로 연구에 매진한 뒤 쏟아낸 책이라고 하니 여러분도 한 번 따라해 보세요.

1. 점에서 시작하기: 번지는 점

<흔들리는 선> 첫 번째 장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림 그리기의 기초인 ‘점’을 시작하기 위해 붓 대신 꽃을 사용해 볼까요? 전형적인 미술 도구가 아닌 의외의 재료를 사용해 그리기를 시작하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고 잘 그리겠다는 강박관념도 내려놓을 수 있거든요.” - 책 14p

시작부터 난관이 예상됩니다. ‘붓’ 말고 ‘꽃’이라뇨. 집안을 둘러봤지만 꽃은 없죠. 그나마 반려식물이 떨어뜨린 몸체가 하나 있네요. 일부러 뜯은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걸로 그릴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생활 속 다양한 물건들을 활용해 점을 찍어보라”라는 책 속 문장에 따라 한 번 도전해보겠습니다. 혹시 하다가 잘 안 되면 태세 전환을 하기 위해 얇은 붓도 하나 가져다 두었습니다.

"붓 대신 꽃을 사용해볼까요?"

잘 그리겠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건 확실해요. 물감이 나뭇잎에 잘 찍히지도 않거든요. 감성작가는 너무 잘 그리려고 하지 말고 편하게 그리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은 확실히 아닙니다. 다만 미술 선생님(감성작가) 외에 다른 누군가가 이걸 보는 것은 원하지 않죠.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둥근 점만 있을까요? 점도 다양한 형태로 그릴 수 있겠죠? 세모 점, 네모 점, 별 모양 점, 뾰족한 점, 흐물거리는 점 등 말이죠.” - 책 14p

이건 전혀 생각지 못했던 포인트네요. 네모 점이 있다고요? 감성작가와 이야기를 해보면 제가 고정관념에 많이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네모 점, 뾰족한 점을 그려 봅니다.

네모 점, 뾰족한 점 그리기

제가 최근 감성작가와 “그리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스스로 깨달은 게 있는데요. 제가 규칙에 굉장히 얽매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은 좋지만, 때론 틀 안에 갇혀버리기도 하거든요. 규칙을 지키는 데 너무 몰입한 나머지 다른 중요한 것들을 놓칠 때도 있고요. 하지만 예시로 제시된 세모 점, 네모 점, 별 모양 점, 뾰족한 점, 흐물거리는 점을 다 그리고야 말았네요. 여기서 뭐 하나 뺄 수는 없었죠. 책에서 제시된 거니까요.

저도 ‘점’을 그리면서 이우환 선생님이 떠올랐는데, 책에도 짧게 소개되어 있네요. 제 점과 이우환 작가의 점이 공통점을 갖는다는 얘기는 전혀 아닙니다. 그저 소재가 같아서 떠올랐다는 말이었어요. 이우환 작가의 <조응>이 매번 최고가를 경신하는 ‘비싼 점’이라고 해요(16p). 저는 지금 대학원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있는데요. 지난 학기 내내 이우환 작가에 대해 탐구했어요. 저도 미술을 공부하기 전에는 ‘점 하나 찍은 그림이 왜 몇 십 억인지’ 몰랐거든요. 근데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큰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요.

점에서 시작하기: 번지는 점

미술작품을 보면 모두 ‘연도’가 표기되어 있잖아요. 미술 작품을 볼 때 연도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언제’ 이 작품을 제작했는지가요. 이우환 작가가 점과 선으로 작업하기 이전에는 돌과 유리, 철판 등으로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요. ‘모노하’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어요. 모노하가 등장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에요. 당시에는 전 세계적으로 시위와 저항의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던 때였어요. 프랑스 68혁명부터 시작해서 일본에서도 서구화와 근대화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었죠. 서구의 사조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하려는 미술 운동이 바로 모노하였다고 해요.

당시 서구의 미술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조작’을 가한 경향이 많았는데, 모노하 작가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었어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드러내야지만 비로소 사물들이 다르게 인식될 수 있고 그래야만 새로운 경험이 가능하다고 여긴 것이죠. 지금 2021년도에 누군가가 돌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둔 작품을 한다면 아무런 울림이 없겠죠. 하지만 1968년도의 모노하 작품들은 말 그대로 ‘위대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장의 내용을 진행하다가 이우환 작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졌네요. 사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속담이 예술에도 적용되는지는 모르겠어요. 예술은 스스로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한 분야니까요. 하지만 때로는 약간의 지식이 예술작품의 감상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해요. 앞으로 이 코너에서는 제가 <흔들리는 선>의 목차에 따라 셀프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책에 나온 예술가들을 조금씩 소개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