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검열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검열은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표현을 스스로 검열하는 행위를 말하는데요. 적당한 자기검열은 실수를 줄여준다는 측면에서 창작에 도움을 주지만, 지나친 자기검열은 창조성을 망가뜨리고 결과물을 내지 못하는 등의 문제를 야기하죠.

오늘은 창작자들이 자기검열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볼까 합니다. 만약 지나친 자기검열 때문에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면 오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글쓰기뿐만 아니라 실행력이 낮아 고민인 분들께도 영감이 될 만한 이야기를 가져왔어요.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기가 꺼려지는 이유는 단순히 말해 “욕먹기 싫어서”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욕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맷집이 강하고 멘탈이 좋은 사람이라도 누군가에게 미움 받는 건 힘든 일이지요.

글을 쓸 때 자기검열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누군가에게 욕을 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일 겁니다. 온라인으로 글을 쓰는 경우에는 아직 달리지도 않은 ‘악플’을 상상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에 어느 정도는 초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비판 받을까 두려워 주장을 두루뭉술하게 바꾸고 표현을 정제하다보면 글이 맹탕이 될 수밖에 없겠죠. 내 생각을 썼는데 비판을 받는다면 그냥 받아드리는 게 답입니다. 그 정도 각오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자신의 글에 대해 설득할 논리를 탄탄하게 만드는 데 시간을 들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움을 받아야 할 땐 그냥 미움을 받자.

출판된 글은 자꾸 꺼내보지 말자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만든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일을 어려워한다고 합니다. 부족한 부분이 자꾸 보여서라고 하는데요. 박찬욱 감독뿐만 아니라 많은 창작자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들은 멋지다고 환호할지라도 내 눈에는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는 책이든 온라인 콘텐츠든 이미 발행된 글을 다시 읽지 않습니다. 물론 발행하기 전에는 수차례 퇴고를 거치지만, 발행된 이후에는 절대 꺼내보지 않죠.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을 때처럼 어색하고 기이하기 때문인데요. 글에 담긴 생각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대다수라 아예 읽지 않는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자꾸 꺼내보면 새로운 글을 쓰는 데 방해가 되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이 부분은 자기검열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만의 방법이니 참고만 하셨으면 합니다.

필명을 써도 된다

조지 오웰, 스티븐 킹, 마크 트웨인, 오 헨리, 조앤 롤링, 이상, 박경리, 이문열, 황석영, 신경림…. 이 작가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나요? 유명 작가들 아닌가요? 그것도 맞지만 바로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자기검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은 필명을 쓰는 일인 듯합니다. 누구나 익명성에서 편안함을 느끼잖아요. 자신을 숨기고 글을 썼을 때 훨씬 더 솔직하고 개성 있는 창작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슈뢰딩거의 나옹이’라는 필명을 사용했었는데요. 재직했던 회사에 대한 내용을 쓸 때 확실히 필명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물론 지금은 홈 화면에 출간된 책을 띄워놓으니까 필명이 아닌 실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아이디로 실명을 대체하니까 여러모로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정체를 감추고 싶을 때도 필명을 쓸 수 있고, 요즘은 작가 활동을 직업과 병행하는 분들도 많아서 ‘부캐’로 필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자기검열이 걱정된다면 필명 사용을 한 번 고민해보세요.

구체적인 상황과 고유명사를 바꿔라

자신의 이름을 바꾸는 방법도 있지만 글 속에 묘사된 상황이나 고유명사를 바꾸는 방법도 있습니다. 가령 최근 방영 중인 <왜 오수재인가>라는 드라마는 시작 전에 이런 문구를 띄워주더라고요. “본 드라마는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지명, 기관, 사건, 단체 및 배경 등은 실제와 어떤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실 드라마를 보다가 ‘저 장면은 누굴 모방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저 문구 때문에 오해를 하지 않았죠. 사실 제가 생각한 그 사람을 모델로 그린 건 맞을 거예요. 하지만 재벌 갑질에 관한 내용인 만큼 저 문구가 힘을 발휘한 거죠.

글을 쓸 때, 특히 에세이에는 어쩔 수 없이 주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갑니다. 이야기를 사실처럼 특정하지 않고 연도나 장소, 상황, 고유명사를 조금씩 바꾸는 거죠. 당사자가 눈치 챌 수 있다면 미리 동의를 구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나쁜 내용이 아니라면 상황을 조금씩 변경하는 것만으로 자기검열에 빠지는 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누가 누군지 모르게 만들자.

완벽한 책을 쓸 수는 없다

저는 자기검열이 실행력을 낮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고려해서 완벽한 창작물을 내려고 하면 결국 책을 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매번 ‘역작’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완성도’에 초점을 맞추고 써내려가지 말고 ‘마감 시간’에 방점을 찍고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점에 가면 별로 뛰어나지 않아 보이는 책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런 책을 쓰다니, 나무에게 미안하군’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기도 하죠. 그 책을 펼치고 내용이 별로라는 것을 확인하는 행위가 ‘위안’을 주는 것도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어찌됐든 그 사람은 책을 썼고, 나는 쓰지 못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이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는 써본 사람만이 알 수 있죠. 시기심과 질투심 안에는 내가 우스운 책을 쓸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차근차근 써내려가는 것만이 답입니다.

글쓰기 조언은 모두 내려놓자

지금도 글쓰기에 관한 이런저런 제안을 하고 있지만, 막상 글을 쓸 때는 모든 조언을 내려둔 채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빈 종이를 바라보면 이런저런 제안이 떠오르고 특히 나의 글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몇몇 말들이 빈 화면을 떠다니곤 하는데요. 타인의 조언에서 벗어나 몰입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첫 문장이 중요하다’라는 조언이 계속 생각나서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면, 그냥 아무 문장으로 첫 문장을 시작한 뒤 퇴고할 때 고치는 편이 낫습니다. 글쓰기 조언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써내려가는 것이 보다 나은 창작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자기검열이 높은 사람이 있고 낮은 사람이 있을 겁니다. 타고난 성향이 아니더라도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일을 해왔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하지만 글쓰기를 해나갈 때 지나친 자기검열은 독이 됩니다. 창작도, 다른 일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라이팅듀오 구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자기검열에 빠지지 않은 자유로운 창작물들을 저희에게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하나의 시작을 발판으로 하여 다른 일들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