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6년 6월 <국민대학원보>에 실린 제 논문을 오랜만에 꺼내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새로운 시각 새로운 시간 Bill Viola>이라는 논문이었는데요. 시간을 극단적으로 느리게 한다거나 공간과 상황을 거꾸로 인식하게 하는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영상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연결해 쓴 논문입니다. 이 논문으로 북악논총 예체능 부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었는데 정말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던 수상경력이 제가 지금 작가로 살아가게 된 기초재료였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16년이 지나 하게 되었습니다.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고만 딱 잘라 생각했던 과거 한 번의 수상경력이 이제는 위로로 남네요.

수상 당시 기분은 무척 좋았어요. 그런데 ‘내가 상을 덜컥 받았구나, 이 논문이 상을 받을 일인가? 운수 참 좋은 날이구나’ 했던 기억은 분명하게 떠올라요. 글을 써서 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나는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인데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자존감 낮은 석사 시절 이야기 그리고 논문 쓰는 방법론, 비평을 마주한 창작자 등의 이야기를 오늘 해보려고 합니다.

우연히든 능력치든 상을 받은 논문은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정말 신나게, 아주 열심히 썼던 기억은 나요.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전시를 삼청동 ‘국제 갤러리’에서 한참 서서 보았고 그 순간 비디오 아트라는 것은 과학과 어떠한 교집합이 있는지 궁금해져서 도서관의 책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이 시작이었던 것은 확실해요. 지금은 미술과 과학이라는 카테고리로 연구된 자료들이 많은데 당시에는 그렇진 않았는데요. 순간적인 호기심으로 시작된 연관 도서 찾기는 과제 제출로 이어졌고, 인상 깊었던 빌 비올라 작가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변주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까지 끌고 갔죠. 과제를 쓰면서 아이디어는 괜찮았으나 내용을 매끄럽게 수습되지 못하고 끝낼 과제가 되겠다는 것을 시작부터 알고 있었죠. 그리고 교수님 연구실에서 발표했던 기억을 더듬거려보면, 글도 제대로 못 쓰던 당시에 상대성 원리까지 겁 없이 덤벼들었던 터라 구구절절 동기들 하품 나게 설명에 설명을 이어가며 스스로 혼을 뺏던 창피함도 떠올라요.

그런데 그 과제가 개교 60주년 기념 논문 심사대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상을 덜컥 받게 된 것이었죠. 마치 사건(해프닝)의 발단과 전개 정도로 마무리되었던 장면처럼 스쳐요. 빌 비올라의 작품에 나오는 놀라움을 표현하는 배우의 느린 필름 모습이 감성 작가의 상 받을 때 표정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어머나, 덜컥? 상을? 내가? 기뻐 그런데 어쩌지? 논문을 다시 써? 오마이갓’

빌 비올라, <조우>

16년 뒤 다시 읽은 교수님의 완벽한 논문 심사평

지금 돌이켜 보면 계속 한심한 생각이 드는 것이 상을 받은 멋진 모습보다는 교수님의 적어 둔 심사평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학생이었구나 싶어요. 저 논문상을 받은 후 석사 졸업을 위해 한 번 더 논문을 써야 했고 그 과정이 정말 힘이 들었어요. 상을 받은 후 알게 된 사실은 학술지에 실린 경우 동일한 내용을 석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하면 자기표절이 된다는 것도 몰랐던 논문계의 무식자였습니다. 상을 받아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또 다시 논문을 써야 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기도 했던 거죠. 이후 석사 졸업 논문을 다시 쓰기 위해 방향을 잡을 때 시작부터 논문 쓰기에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힘 들어간 시작은 애초부터 논문의 참신성은 잃었고, 운 좋게 석사 졸업 전 하던 업무에서 전달받게 된 자료를 정리해서 석사학위를 받고 졸업을 했습니다. 제가 학위를 받은 논문은 빌 비올라와는 전혀 상관없는 <한국 미술시장 지원제도 연구 : 문화관광부의 국제아트페어 참여화랑 직접 지원 사례>였어요.

졸업을 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 만난 은사님이 논문 방향을 물어보시더니 미술시장에 대해 써보는게 어떻겠냐고 자료 뭉텅이를 책상 위에 올려주셨어요. 그 자료 덕분에 탄생한 석사 졸업 논문이니 제 능력치보다는 실제 사례에 근접한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조건 덕을 톡톡히 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논문조차 교수님이 적어둔 심사평 앞부분의 가이드를 전혀 흡수하지 못한 채 썼다는 것입니다. 얼핏 기억나는 것이 심사평 중 교수님이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 부분들이 놀랍도록 정확해서 회피하고 싶었던 거죠. 이 회피 본능은 내가 석사 논문을 쓰기 전 절대 고칠 수 없는 단점들이라 시간의 물리적 한계에 덮어 씌어 놓고는 정신을 어딘가로 피신시켜버린 것이고요. 정말 한심한 거죠.

16년이 지난 지금에서 교수님의 심사평을 제대로 읽고 머리와 마음에 새기며 컴퓨터로 적어내려 갔는데요. A4 한 장 분량의 논문 심사평을 온전히 이해하고 따라 했더라면 발전적인 논문을 작성했을 것이라 이제야 알아챘습니다. 조금 긴 내용이지만 라이팅듀오 여러분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인용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