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맡기자” _ 영화 ‘듄’

영화 ‘듄’ 보셨나요? 영화관에서 멋진 스크린으로 봐도 모자랄 판에 자그마한 휴대폰 화면을 통해 155분을 보고나니 후회가 되더군요. 영화관이라도 가서 볼 걸 하고요. 감성작가는 판타지 SF 장르에 흥미가 높지 않은데도 ‘듄’은 정말 신나게 봤답니다. 꽃미남 남자주인공 티모시 샬라메 효과도 있고요. 그 영화를 보고 있으면 메타버스 시대가 잘 버무려져 표현되어 있었어요. 어두움을 밝히는 전등이 움직임을 감지해 사람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고, 검술을 배울 때 몸을 보호하는 보호막을 켜서 연습하기도 하며, 학습을 할 때는 3D 화면을 통해 다면적으로 공간에 띄워지더군요. 그 외에도 무척 많지만 영화는 역시 직접 봐야죠. 특히, 좋았던 장면은 엄마와 아들이 사막에서 블랙홀 같은 그러니까 살아남을 확률이 0.1%도 안 될 것 같은 사막의 모래바람에 헬기가 빨려 들어가는데 안간힘을 다 쓰던 아들이 이런 말을 하면서 핸들을 손에서 놔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맡기자”

홈 무비로 봤지만 흥미진진했답니다. 엄마와 아들(?)은 살아남았어요.

이성작가와 주거니 받거니 주제를 정하긴 하는데요. 이번 주제는 이성작가가 선택했답니다. ‘메타버스 시대 작가는 무얼 할 수 있을까?’ 하고요. 메타버스 이야기가 나오면 초월적 유니버스에 대해 뭔가 글을 장황하게 쓰면서 답을 내릴 것 같지만 제 답은 굉장히 간단해요. 미리 말하자면 ‘나는 고전을 좀 더 읽어야겠어. 또 양질의 책을 더 찾아 읽어야겠고’입니다.

메타버스? 마우스 더블클릭을 배우던 시절의 데자뷔

요즘 저는 메타버스 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 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가상화폐, 스마트월드,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 AR, VR, 디지털플랫폼, 디지털 트윈, NFT 등 많은 정보를 보고 읽고 연구하고 있어요. 사실 연구라기보다 눈만 뜨면 보이는 뉴스, 기사, 읽을거리 등이 메타버스 세상과 관련지어 내 눈앞에 있던걸요. 저도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자꾸 읽다보니 이 말이 그 말이고, 네이버나 구글 검색에 나오는 정의들을 이사람 저사람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며 쓴 글들로 발행된 글이 많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메타버스 및 기타 동시대 기술 관련 단어들을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 계속 변화하고 있는 상태를 설명해야 하기에 정의 내리는 순간 틀린 정의가 될 때도 있거든요. 아무튼 제법 그에 대한 개념이 명확해지자 저는 어떠한 것이 버즈워드(buzz word)인지 구분 할 수 있는 경지(?)에도 이르렀어요. 최근 스마트 뮤지엄에 대한 연구를 할 기회가 주어지다보니 메타버스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도 더 넓어졌고요.

이런 책 있었다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 연구를 하면서 데자뷔를 경험했어요. 제가 97년도에 컴퓨터 수업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더블 클릭하는 것을 처음 배웠거든요? 마우스라는 것을 처음 손에 쥐고 오른쪽 손가락을 따-닥 두 번 재빨리 클릭해야 인터넷에 접속을 한다는 것을 엄청 진지하게 배웠어요. 그러면서 강사님이 곧 있을 미래에는 개인이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시간 장소 상관없이 어디든 앉아서 일을 할 것을 강조하셨죠.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이 인터넷 익스플로러 더블클릭 하던 때와 메타버스시대라며 게더타운에 들아 가서 두리번거리는 순간이 왜 이렇게 닮았는지 모르겠어요. 분명 혁신적인 세상이 오기 직전인 것도 알겠고, 패러다임 전환기가 내 인생에 두 번이나 들이닥치는구나 하는 ‘감’은 오지만, 메타버스 세상과 인터넷 익스플로러 세상이 크게 다르진 않아 보여 무언가를 특별히 준비해야 한다거나 속도를 내 적응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특히, 글 쓰는 작가로서 어떠한 액션을 취해야한다는 것도 떠오르지 않고요. 천천히 내 속도대로 적응해도 다 해결할 수 있게끔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 제 편의를 봐주면서 개발 중에 있으니까요. 나는 거부감 없이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편리하다면 적응하고 불필요하다면 멀리하는 정도의 노선을 취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기술의 발전 속도의 수혜가 가장 큰 곳은 제조업 같아요. 혁신적인 3D기술은 시뮬레이션기능을 향상시켰고 세밀하고 정교한 입체물의 제작 등이 가능해졌으니까요. 하지만 속도가 붙은 기술이 너무 빨리 제조업의 인력을 몰아내는 부작용도 있더군요. 아무튼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혁신적인 기술이 가장 늦게 도착하는 곳이 저는 문화예술 장르 같은데요. 다수가 동의하는 것에 대해 다르게 보기를 시도하는 현대 미술의 영역적 특성을 감안해도 혁신시스템 도착시기가 늦을 테고요. 또 투자대비 효용가치도 문화예술이 가장 높진 않을 테니 기술이 충분히 발전한 후 예술영역으로 조금씩 천천히 흘러들어올 것이라는 추론이 돼요. 제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상상은 자유니까. 하지만 혁신적인 기술 한 단계 위로 가기위해서는 창의력이 요구되고 그를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문화예술이니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제일 느릴 수 있지만 끝과 끝은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 기술 발전에서의 민감도 영역에서는 가장 뒤떨어지는 예술장르라도 괄시 받을 수는 없겠죠.(누가 괄시를 한다고. 예술가 자격지심인가요?)

물론 발전적인 기술과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행위 자체는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세상의 흐름에 관심을 가지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면서 옳고 그름, 좋음과 나쁨에 대해 쏟아져 나오는 의견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력은 길러야 하니까요. 나는 귀찮아서 그런 판단도 싫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전 세계 인류의 구성원으로 아주 작은 결정이 모여 나비효과를 발휘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