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작가와 이성작가가 서로를 인터뷰해 보았습니다. 지난 번 이성작가의 답변에 이어 오늘은 감성작가의 답변이 이어집니다. 인터뷰 주제는 '쓰고 x 그리고 x 돈벌고 x 자유롭기'입니다.


쓰고


Q. (이성) 저는 감성작가의 첫 책 <의자와 낙서>가 굉장히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따뜻한 느낌을 주는 책을 쓸 수 있을까요?

A. (감성) 따뜻하게 마음먹고 쓴 책은 아닌데, 나는 과연 따뜻한 사람일까요? 문체 덕분인지 그런 말을 독자들에게 자주 듣는데 나 스스로 돌아보게 돼요.  

Q. (이성) 감성작가의 경우 ‘쓰기’에 익숙했나요?

A. (감성) 이 질문이 너무나 반갑게 느껴집니다. 변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같아서요. 저는 쓰는 사람이 되리라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제가 책을 낼 때 마다 놀라요. “또 썼어?!” 하고요. 약간 놀리는 거죠. 저는 읽기도 안했고, 못했으며, 논문과 과제 외엔 그다지 써 본 기억이 없어요. 논문은 우연히 상을 받긴 했지만, 대부분이 인용이었고 제가 생각해서 쓴 글은 A4 서너 페이지는 될까 싶은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은 좋아했습니다. 그러니까 98년도부터 최근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진 한 장과 3~4줄 정도의 짧은 문장을 비공개 SNS 계정에 올리고 혼자 보는 의식을 치르고 하루를 마무리해요. 하지만 책을 쓰는 과정은 이와 비교할 수가 없죠. 정말 오랜 시간, 자기 확신을 갖고, 오류를 찾아내며 써야 하잖아요. 처음 기회가 닿았던 꽤 이름 있던 출판사와 멀어지게 된 이유도 저의 부족함 때문이었어요. 불필요한 말이 한가득인 글을 들고 만나서는 설명을 그렇게 했어요. 자신이 없으니까 그렇게 설명을 해댄거죠. <의자와 낙서>는 140페이지 남짓이지만 써 놓은 글은 700페이지가 넘었죠. 그래서 두 번째 만나 제 글을 다듬어 준 장유진 에디터님께 더없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의자와 낙서>는 이런 논술훈련 과정에서 나온 책 같습니다. 이렇게 고강도 작업을 3년 넘게 했더니 저는 글을 제법 쓰는 사람으로 재탄생되어 있었어요. 제 책 <흔들리는 선>을 만들면서 어르신들께 선이 흔들려도 되니 마음껏 그리라고 말씀드렸는데, 글인들 흔들리면 뭐가 어떤가요. 여전히 자신은 없지만 흔들려도 된다는 마음으로 부족함을 물리칩니다.

Q. (이성) <의자와 낙서>가 처음 나오게 된 계기를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A. (감성) 저는 큐레이터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미술관, 갤러리, 아트펀드, 비엔날레 등 다양한 업무 환경을 거쳤죠. 매순간 다른 듯 같은 일이었지만 일반인과 ‘소통’할 수 있는 전시를 위해 힘을 쏟았죠.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고 미술계 밖에서 들여다보니 ‘일반인이 접근 가능한 현대미술 전시’가 드물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현대미술은 조금 알고 나면 흥미롭지만 그 ‘조금’ 알기까지 꽤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현대미술은 지각하는 과정을 일부러 느리게 만들어서 스스로 깨우치거나, 답을 주지 않고 의문으로 남겨두거나 하는데, 생전 그려보지도 않은 사람이 평면회화를 거쳐, 평면회화의 종말을 선언하고, 회화 밖으로 튀어나온 사물들, 퍼포먼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무형의 미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의문을 품은 채 아이들과 드로잉을 하며 실천 가능한 방법론들을 발견하기 시작했어요. 말로 하면 근사해 보이는 게 늘 문제인데. 그 방법이라 함이 8절 도화지를 사서 간장을 쏟아 추상적 이미지를 관찰하고, 못 쓰는 화장품으로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어 보고, 멋지게 그린 그림을 반으로 촤-악 찢어도 보며 집안 구석구석 드로잉들을 전시하고 대화를 나누며 아카이빙과 분류를 오랫동안 한 거예요. 그 안에서 발전시킨 내용들이 커리큘럼화 되고 어른들과 워크숍도 진행할 기회가 생겼죠. 어른들은 술을 마시면서 취화선도 해보고, 평면과 입체,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해 자신의 작품으로 대화를 나누는 워크숍이었어요. 경력을 바탕으로 한 사소한 호기심과 의문에서 아카이빙으로, 또 책으로 연결됐죠.

Q. (이성) 어느 정도 드로잉에 대한 아카이빙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책을 내실 수 있었던 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