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책을 읽으면서 최종 목적지를 생각할까요? 그냥 그 자체로 좋아서 계속 추구하는 것이 있지 않나요? 즐거움만이 최종 목적인 경우 말이에요. 적어도 내게는 이런 꿈이 있어요. 심판의 날이 와서 위대한 정복자와 법률가와 정치가들이 왕관이나 월계관을 쓰고 불멸의 대리석 위에 선명하게 그 이름이 새겨지는 보상을 받을 때,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다가오는 우리를 보고 신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꿈이죠. ‘보게나, 저들에게는 달리 보상이 필요 없어. 우리가 여기서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네.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 버지니아 울프

저는 요즘 이 문장을 수시로 꺼내 읽었습니다. 그냥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또 마흔이 넘어 버지니아 울프를 다시 찾아본 제가 기특했죠. 읽기 적합한 나이에 그녀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는 것은 행운같이 느껴지고도 했고요. 20살 즈음 도서관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잠시 서서 읽었던 기억이 나요.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겠는데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문장들이 내 몸과 마음에서 튕겨 나가더군요. 우아한데 성격 좀 있어 보이는 언니가 빠른 말의 영국 악센트로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쏟아 내는데 관심사 자체가 달랐던 어린 나는 딴 생각하기에 바빴죠. 배도 고팠던 것 같아요.

오늘날을 사는 버지니아 울프 이야기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는 여성으로 읽고 쓰고 생각하기를 전달한 버지니아 울프의 잡지 기고문 등을 엮어 만든 산문집으로, 버지니아 울프를 입체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내용이 들어있어요. 저는 소설에 많은 흥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이번 기회에 고전 소설들을 좀 읽어볼까 싶네요. 밥을 든든하게 먹고 읽기를 도전하겠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읽고 쓰는 데 능숙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고 자랐으나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겪은 불합리한 교육환경에서 쓰기 위해 애썼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그러한 시대상과 자신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가 다수의 글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죠.

그녀의 글쓰기를 찬찬히 읽다 보면 그녀의 상황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지 그녀가 각도를 틀어가며 시도한 그녀의 글쓰기는 오직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녀가 살던 당시도 여성들의 글쓰기가 시작되고 그러한 시도를 받쳐 주기 위한 여성 강의 기회가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주 마련되었으니 남겨진 자료가 여성과 글쓰기로 묶어져 많이 발행되었을 뿐더러 그녀도 그렇게 훈련이 되어 버렸다고 할까요. 『자기만의 방』과 경제적 자주독립을 위한 500파운드에 대한 이야기도 만약 그녀가 저와 같은 동시대인이라면 어떻게 써 내려갔을 까 상상을 하며 읽게 됩니다. 그녀가 하려는 이야기는 오직 여성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닌 사회상을 고루 담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 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글 잘 썼던 영국언니가 90년대에 태어났다면 시대와 흐름을 어떻게 읽었을까 상상에 상상이 더해집니다. 어디 태어나 있는 것 아니야???

자기만의 방, 복원본 책은 읽기 대기 중입니다 :)

라이팅듀오 작업을 하면서 제 업무를 위한 쓰기 외에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은 번거로우면서도 도움이 되는 작업 같아요. 독자님들도 이성작가와 감성작가의 전혀 다른 스타일의 발행 글을 읽으면서 정반대의 영역을 넘나들어 보길 바랍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떠올리면 베네치아에서 산마르코 광장에 도착해 ‘이것이 진짜 바로크야, 좁고 고불고불한 길을 지나 숨이 턱 막히게 거대한 광장이 나오는 것을 내가 봤어!’ 하는 그런 기억보다는 ‘산마르코 광장 안 성당에서 함께 기도하며 눈빛으로 친구 예지와 주고받았던 뜨끈한 싸인, 말없이 좌측 얼굴을 까딱 움직이며 저쪽을 보라고 했던 그 순간’이 찰나의 기억으로 평생 마음속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산마르코 광장은 구글 사진에서나 보는 이미지로 기억나는 정도일 수 있어요. 목적지와는 무관한 전혀 엉뚱한 곳에서 최고 좋은 것, 남들이 발견 못한 보물들이 있으니 평소에 주변을 잘 둘러보는 것을 잊지 마시고요.

버지니아 울프가 알려 준 소설 쓰기

버지니아 울프가 쓴 많은 글귀를 읽고 또 읽고 했는데, 오늘 제가 라이팅듀오에서 도전해보려 하는 것은 ‘소설 쓰기’입니다. 저는 소설을 자주 접해본 독자도 아니었을 뿐 더러 소설 쓰기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거든요. 따라서 내가 제일 잘 이해하고, 자신감 있게 쓸 수 있는 것 말고 ‘내가 소설을 쓴다면?’ 하고 상상을 더해보기로 했습니다. 구독자분들에게는 자꾸 산마르코 광장 말고 골목의 빛바랜 겨자색 벽에 보물이 있으니 시도하지 않은 것을 시도하라고 해 놓고 저는 자꾸 제가 젤 잘하는 것만 한다면 이건 좀 아니잖아요. 제가 그나마 재밌게 읽은 소설은 박완서의 『나목』이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입니다. 박완서의 문체를 워낙 좋아해서 박완서의 수필을 모두 읽고 더 이상 읽을 것이 없을 때에 그녀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죠. 박완서의 소설을 읽을 때면 그녀가 살아온 환경은 소설 그 자체이니 그 어떤 것도 소설이 되었겠구나 하며 즐겁게 읽었어요.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저는 전쟁을 영화로 보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고 무서운데, 박완서의 글을 통해 읽다 보면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한 ‘서늘함’으로 상상되는 그런 지점에서 소설의 장점을 발견하곤 하거든요.

쪽집게과외, 표시한 글만 읽어도 '소설 쓰고 있을 수' 있습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면 『베넷 씨와 브라운 부인』을 읽기를

소설 쓰기라는 어리석은 일을 해봤거나 하려고 애쓰고 있거나 하려다 실패한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나 혼자일 수도 있겠는데, 어쩌면 그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현대소설을 주제로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과연 어떤 악령의 쏘삭거림 때문에 내가 소설 쓰기라는 비운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자문해 보았을 때 한 자그마한 인물이 내 앞에 솟아났어요.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는 그 인물은 이렇게 말했죠. “내 이름은 브라운입니다. 할 수 있으면 날 한번 잡아 보시든지.” 소설가라면 대부분 이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브라운이나 스미스나 존스가 앞에 나타나 더없이 매혹적인 말투로 “할 수 있으면 날 잡아 보시든지” 라고 유혹하는 경험 말이죠. 그래서 이 도깨비불이 이끄는 대로 허우적거리면서도 연달아 책을 써 내느라 인생의 좋은 시절 대부분을 보내지만, 그 대가로 손에 쥐게 되는 현금은 대체로 참 보잘것없습니다. 그 환영을 붙잡아본 사람도 거의 없어서, 대부분 옷자락 끝이나 머리칼 몇 가닥에 만족할 뿐이고요. 남녀를 불문하고 다들 그렇게 들이밀 듯 나타나는 인물을 창조해보라는 꾐에 빠져 소설을 쓰게 된다는 것이 내 믿음인데, 아널드 베넷 씨도 그 점에 대해서는 이미 이렇게 인정했어요. -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가 소설에 대한 강연을 시작하면서 대담한 방식으로 ‘인물’을 강조해보겠다고 선언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과 소설> 통해 소설이 쓰이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언급도 했어요. 특출한 여성은 평범한 여성들의 존재에 의존한다고 하더군요. 평균적인 여성의 삶의 조건―아이들을 몇을 두었는지, 자기 소유의 돈이 있었는지, 자기만의 방이 있었는지, 하인을 두었는지, 어떤 집안일을 해야 했는지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작가라는 특출한 여성의 성공과 실패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 등 단순하게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한다가 아니라 어떻게 소설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한 다양한 시점을 시사했죠.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 조지 에리엇은 모두 아이가 없었고. 그 중 두 사람은 미혼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해요. 심지어 소설은 집중력을 가장 덜 요구하는 예술의 형식임도 짚어 주더군요. 글을 쓰다 말고 감자 싹을 자르고 공용 응접실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여성의 소설은 관찰력과 인물을 분석하는 능력을 발전시키기 적합 했다 하더군요. 저는 글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 소설책을 펼치면 일단 분량에 놀라곤 하는데 버지니아 울프 언니의 책 한권의 멘토링으로 과감하게 ‘인물’을 상상하며 소설쓰기를 감행해보겠습니다. 너무 바닥 같은 상태이니 부담도 없네요. 5분 구상 후 바로 시작합니다.

감성작가가 생애 처음 쓰는 <소설 쓰고 있네!>

우리 동네에는 110년 된 은행나무가 하나 있다. 5년 동안 거리를 오고 가면서 나는 항상 그 은행나무에게 안부를 묻거나, 은행나무가 잘 있나 살피곤 하는데 내가 아는 한 단 한 명도 그 오래된 은행나무를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 확신한다. 110살 된 은행나무는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나무로, 어딘가 아픈지 자꾸 몸통이 새 까맣게 변해가고 있다. 더해 구청지시를 받은 관리인이 싹둑싹둑 가지를 쳐 놓아 흉한 느낌도 드는데 나는 왜, 언제 이 은행나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루는 내가 글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어느 밤, 산책이라도 하지 않으면 책을 완성하지 못할 것 같아 걸을 겸 나온 그 순간 이 나무를 만났다. 근사하지도 늠름하지도 않아 위로가 되었다고 할까? 심지어 명성에 비해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는 나무는 내게 말을 걸 기력조차 없었다. 귀찮게 하지 말고 너 갈 길이나 가라는 식으로 나뭇가지가 나를 내려 깔았다. 주목받지 못하는 은행나무를 위로하며 마치 나는 나무 너를 위로하는 존재라며 누군가를 위로하며 나 자신의 쓸모를 찾는 그런 역할 놀이를 홀로 했다. 아무리 써봐야 과연 가치가 있나 의문이 드는 책 작업을 이어가면서 그 무모한 시도와 실패의 감정을 나무에 옮겼다.

왜 110년 된 보존수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느냐고, 얘는 나이가 110살이나 된 영물 같은 존재인데, 배재정동빌딩 벽만도 못한 취급을 받을 일이냐고 내 초라함을 나무에 덮여 씌우고도 성이 차질 않아 씩씩거릴 무렵 옆에서 사람 냄새가 묻은 고운 향기가 났다. 그 향에 이끌려 정신도 돌아왔는데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하며 향의 진앙지를 찾았다. 오래된 할머니의 농장 속 분향은 시선을 옆으로 끌어당겼다. 세상에 나와 은행나무 바로 옆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 있지 않은가? 물론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여왕과 정말 똑 닮은 동양인 할머니였다. 신세계 백화점 명품관 1층 헤르메스 숍 건너는 진귀한 모자 그러니까 세상 가장 부유함의 상징 같은 깃털 달린 모자, 고은 실크에 금빛 가루가 뿌려진 망이 씌워진 모자 등을 판매하는 매장이 있는데 저런 것을 한국 사람 중에 누가 사는가 늘 의문스럽곤 했었다. 그런데 바로 이 할머니가 그를 쓰고 있지 않은가? 훗날 알고 보니 할머니는 바로바로 ~ 바로 ~~ 누구였다~~ 뭐 이런 소설 쓰고 있네!!

… 감성작가의 <소설 쓰고 있네!> 였습니다. 더 쓸까요 말까요? 생애 처음 단 몇 분 만에 구상해서 쓴 소설입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인물 중심의 소설을 시작 하려는 순간, 소설은 나랑은 인연이 아니구나 하고 깨닫기도 했죠. 쓸 수는 있는데요. 재미가 하나 없습니다. 소설 쓰기는 이만 마치겠어요.

제 글을 읽고 이성 작가는 껄껄 웃으며 표지를 만들어 보냈더군요. 감성작가의 <소설 쓰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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