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서보(1931~)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NFT로 사용할 수 없음을 글로 남겼습니다. 박서보 작가가 쓴 글을 그대로 실어보겠습니다.

주변에서 자꾸 NFT 이야기를 한다. 손자 말이, 대체불가능한 토큰이라고 하던데, 토큰은 몰라도 “대체불가능한”이라는 말의 의미는 안다.

내 그림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사진을 찍어 만든 디지털 이미지가 “대체불가능한” 것이라는 이름으로 고가에 팔리며 내 그림을 대신할 수는 없다. 내 그림 자체가 대체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오프라인 세상의 사람이고, 물질 세계에 속해있다. 내 작품 역시 이 시대와 지평의 산물이다. 물감과 붓과 캔버스가 내 예술 세계의 미디움이다. 나는 그 속에서 호흡하며 내 시대를 충실히 살아왔다. 내가 알지 못하고, 나한테 오지 않은 시대까지 넘볼 생각이 없다. 디지털 예술은 새로운 세대의 것이다.

내 작품을 디지털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것은 가능하다. 가상세계의 어느 공간에 내 작품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도 내 작품 이미지를 NFT라는 이름의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는 없다. 앞으로 내 작품이 디지털의 형식으로 상업적으로 거래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수행하는 듯 그리는 묘법, 박서보

물질세계의 작품

박서보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단색화 대가입니다. 수행하듯 반복해서 선을 긋는 그의 ‘묘법’ 시리즈는 미술관 또는 갤러리, 미디어를 통해 한번 즈음 접했을 작품입니다. 저는 박서보 작가가 작품을 가상이미지로 허하지 않음에 대한 기사를 보기 몇 일전 우연히 해외의 한 미술관 사이트에서 작품 ‘묘법’을 봤습니다. 자연 속 미술관으로 유명한 남 프랑스 샤토 드 라코스테 아트센터 내에 렌조 피아노가 2017년 지은 파빌리온 형식의 갤러리에서 박서보 전시가 열리고 있더군요. 저 멀리 프랑스 남부, 불어로 된 사이트를 영어로 변환하고 렌조 피아노가 건축 설계한 갤러리 벽에 박서보 작가의 작품이 일렬로 걸려 있는 이미지로 보는데 신기하더군요. 요즘 많이 이야기 되는 원본 작품과 가상의 이미지가 중첩되는 순간이기도 했어요. 구독자 여러분도 시간이 되신다면 샤토 드 라코스테 홈페이지를 살펴보세요. 근사해요!

샤토 드 라코스테, 박서보 전시 소개

저는 굳이 원본 작품과 NFT 작품을 하나 택하라면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원본 작품을 선택할 확률이 아주 높은 사람입니다. 이유인즉, 샤토 드 라코스테 아트 센터를 방문한 적은 없지만 공간의 안과 밖이 열리고 닫히는 구조로 자연 채광이 자연스럽죠. 어두움과 밝음이 조절되는 조도를 확인하며 작품을 감상하고 싶고, 남 프랑스에서 부는 바람, 샤토 드 라코스테 와이너리 와인을 한 잔 한 후 ‘아이고 반가워라 대한민국의 박서보 작품이 여기에 있군!’하고 속으로 외치며 건조한 노출 콘크리트 바닥을 거니는 느낌이 필요해요. 내 수정체에 그 무엇도 걸치지 않고 오직 내 감각과 직관으로 자연과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여전히 선호하니까요.

샤토 드 라코스테, 렌조 피아노의 갤러리 파빌리온

비물질세계의 작업

이성작가가 보여준 오큘러스 퀘스트도 무척 재미있게는 보았습니다. 이성작가는 일만 하는 것 같더니 언제 저런 것도 하는지 신기합니다. 아마도 제가 모르는 곳에서 여러 활동을 하는 젊은 사람이 맞아요. 유튜브를 통해 오큘러스 퀘스트가 무엇인가 켜봤다가 ‘우와- 우와-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하며 쳐다봤어요. 오큘러스 퀘스트(oculus quest)는 ‘눈 탐구’ 뭐 이렇게 번역을 하면 되는가 이런 생각도 했고요.  가격도 찾아봤는데 40만원 돈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도 VR 기기 하나가 뒹굴고 있어요. 저도 한번 껴보긴 했는데 작동도 안 해봤지만 그걸 쓰는 순간 내가 미래인(?)이 된 기분도 들더군요.

이성작가에게 하얀 도화지에 재료로 자유롭게 드로잉을 하라고 했는데 15장 남짓 그렸나? 벌써 가상의 세계로의 일탈이 시작되었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저런 일탈은 일탈이 아니라 드로잉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했어요. 드로잉 선들이 뭔지 모르게 신나보였거든요. 이성작가가 VR을 통해 만들어 낸 결과물은 지극히 2차원적인 작업 결과물에 그치지만, 오큘러스 퀘스트를 쓴 사람을 외부에서 쳐다본다 가정하면, 오큘러스 퀘스트를 쓰고 움직이는 행위는 3차원의 역동성을 경험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눈 탐구, 오큘러스 퀘스트

기술의 발달로 양팔만 흔들면 드로잉의 에너지에 흠뻑 취할 수 있으니 드로잉하기 좋은 매체이기도 하겠어요. 종이를 꺼내고, 하얀 도화지를 마주해서 부담스러운 마음 등 여러 번거로운 과정을 줄여줄 테니까요. 그리고 만약 드로잉을 하지 않았다면 ‘눈 탐구’를 통해 가상의 오락 시간만 가졌겠죠? 아! 드로잉도 오락의 일종이었나? 어휴...가상의 세계에 대해서는 글 한줄 써 내려 가기도 쉽지 않군요. 아무튼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재밌음’ 카테고리더군요.

물질세계의 작품과 비물질 세계의 작업

메타버스의 시대 흐름, 어리 어댑터들이 사용하는 기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저는 못 돼요. 그러니 제가 감히 가상 세계에 대해 판단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거죠. 하지만 저는 제 선호도를 설명할 수는 있잖아요. 메타버스의 세계를 알고자 사둔 책이 있는데 아직 읽지 못해 아쉽기도 하지만 아무튼 제 호불호를 설명은 해볼게요.

이런 기계의 발전을 보면서 ‘인간의 심리적 저항’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르더라고요. 2010년 스티브 잡스가 4G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야심차게 화상전화를 홍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고 해요. 원인이 바로 이 ‘인간의 심리적 저항’인데요. 이유가 가족이나 연인을 제외하고, 직장 상사 등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음성이라는 최소한의 소통채널만으로 대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술은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기술은 인간이 원하는 만큼만 발전하는 거죠.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방향도 이러한 점을 보여주는데 예를 들어 개인 정보 보호에 관한 관심이 증대함에 따라 과거와 같이 무제한적인 빅데이터의 이용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해요. 인간의 불편한 심리를 반영해 빅데이터가 아니라 스몰데이터 혹은 완전한 데이터가 아니라 일부 정보가 삭제된 불완전한 데이터에서 추론해 낼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고 하니까요.

다시, 박서보의 NFT 금지 선언과 물질세계의 작품을 선호하는 감성작가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저는 가상세계에 대해 물질세계를 선호하는 심리적 저항을 갖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덮어놓고 메타버스 세계를 싫어하는 것은 전혀 아니고요.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나의 이러한 선호도가 가상세계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서 작은 스몰 데이터만큼을 차지할 순 있겠단 생각을 해요. 의견을 조금 더 내어보자면 가상세계 안에서의 작품들이 제 눈에는 ‘작업’들로만 보여요. 너무 금방 만들고 금방 소비하는 공기만큼 가벼워 보이는 행위를 ‘작품’이라 강조하면서 거래를 하는 모습에 저항감도 생기더라고요. 자신의 절대 고독 속에서 겨우 점하나 찍고 나온 작가 또는 수천 번 수만 번 선을 그은 묘법 작가 박서보가 심리적 저항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이 들고요. 이러한 문제는 어느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닌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일어나는 ‘아무도 모르는 세계에 대한 막연한’ 정도로만 결론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샤토 드 라코스테의 땅을 밟아 보고 싶은 감성작가

제가 조금 오래 살아 할머니가 된다면 가상의 세계 작업들이 어떠한 작품들로 변해있을지 너무너무 궁금하답니다. 아직은 ‘눈 탐구’를 쓰고 움직여야하는 번거로움이 도화지와 드로잉 재료를 챙기는 것만큼 귀찮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간편하게 ‘눈 탐구’를 활용해 가상의 세계를 즐길 수 있다면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은 커요. 물론 남 프랑스 샤토 드 라코스테 렌조 피아노 파빌리온도 꼭 가보고 싶고요.

구독자 여러분들은 어떠한가요? 물질세계의 작품과 비물질 세계의 작업, 작품과 작업을 구분해 보는 제 표현을 보고 어떠한 생각을 해보셨나요? 여러분의 선호도는 어떤 쪽인지도 궁금하고요. 벌써 ‘눈 탐구’ 주문을 하셨을까요? 너무 비싸진 않은가요? 고장은 나지 않을런가? 이성작가에게 물어보고 구입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