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이성작가의 두 번째 셀프 드로잉 워크숍 작업을 보는 날입니다. 책을 쓰는 작가는 독자의 내밀한 피드백을 받기가 쉽지 않아요. 직접 대면으로 만나지 않는 한 독자의 생각과 행동을 살펴볼 기회가 잘 없죠. 코로나19 이전에는 대면 워크숍을 활발히 진행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어렵기에 피드백을 받기가 더 어려워졌어요.

이성작가 덕분에 <흔들리는 선>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점을 살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 고맙습니다. 사실 점에서 시작하기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시작했다’는 것은 ‘마칠 확률이 높다’와 같은 말이라 생각하거든요. <흔들리는 선>과 함께하는 드로잉 여정의 초입에 들어선 이성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미 절반이상 끝낸 느낌이 들어요. 그 특유의 성실함 때문일지 모르겠는데 이성작가의 도화지에 흥이 묻어난다는 것은 도화지를 거뜬히 채워낼 수 있다는 증거니까요.

종이 한 장이 뭐 대단한 건가 싶겠지만 막상 하얀색 도화지를 마주하면 ‘무엇을 그리지’ 하고 막막해 해요. 그런데 이성작가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첫 장의 미션인 ‘점’ 그리기에서 ‘점’만 그린 것 같아도 ‘점’을 연결해 ‘선’을 만들었고, ‘선’을 연결해 ‘면’을 이루었죠. 거기에 ‘색감’을 더해 자신이 하고 싶은 표현의 밀도를 더했고 마지막엔 ‘흥’에 취했더군요.

과연 제 책을 계속 보도록 하는 것이 맞나? 하는 고민도 했답니다. 더 자유롭게 두면 어떨까? 하면서요.

그런데 또 제가 이성을 잘 알고 있으니 <흔들리는 선>을 보지 말고 ‘자유롭게 그려보라’하면 하얀 도화지를 손에 쥐고 제게 다가와서 ‘이제 무엇을 그릴까요?’ 할 수도 있겠다고 상상했습니다. 어디까지가 자유로이 그리게 하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드로잉 가이드의 영역일까요?

그런 고민이 들 무렵 제가 붓을 들어봤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휘휘 붓을 움직이며 자유롭게 이성이 접어놓은 반쪽을 완성시켰죠. 우리는 절반 그림을 이어 그리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성작가가 제 책을 보고 8절 도화지를 반으로 접어 작업을 하면 나머지 절반에 그 작업의 절반을 상상하며 제가 이어그리기를 하는 방식입니다. 도화지 절반이 접혀있지만 섬세하게 알알이 표현된 동그라미가 삐져나온걸 보니 이성이 분명 열심히 표현해뒀을 것이라 상상하며 도화지 절반에는 맑은 물빛만 번져 놓아봤습니다. 딸아이가 가득 풀어놓은 물감을 재활용하며 한 가지 색만 사용했어요. 색이라고 할 것도 없이 도화지 한가득 물만 끼얹은 느낌으로요.

이성작가와 감성작가의 반반 드로잉 작업과정

이성작가의 점 드로잉을 이어받아 몽롱한 물빛에 취한 저는 참지 못하고 도화지 전체를 펼쳐보았습니다. 별 대수롭지 않은 두 작가의 드로잉 놀이지만 반대쪽을 상상하며 전체를 펼칠 때 그 재미가 쏠쏠합니다. 여러분도 자주 만나는 사람과 반반 드로잉을 한 번 해보세요. 의외의 대화가 오고가고 별스런 취향을 알게 되며, 특별한 포인트에서 웃음이 번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감성작가 한 번 믿어보시죠.

역시, 이번에도 반전 없이 꼼꼼하게 별의 별 점을 다 그려두었습니다. 이성작가의 이 틀림없는 구상 작업들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이성작가가 감성작가에게 물들지 말고 오롯한 자신의 작업을 이어나가길 바라요.

이성작가는 책에 언급한 참고 작가들도 열심히 찾아보는 편인데요 특히 김환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 미술관도 소개하고 <우주>의 낙찰가도 확인했네요. 감성작가는 이미 알고 있는 낙찰가지만 132억이라는 숫자에 다시 한 번 놀라요. 아까 편의점에서 1+1만 한가득 집어왔는데 132억은 0이 몇 개 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