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작가와 드로잉 시작

"그냥 아무거나 그어보세요"

이성작가는 그냥 끄적여 보라라는 단어가 가장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술의 무목적성에 대해 글로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냥 아무거나 그어보라'는 말에 질문이 이어집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동그라미를 내 마음대로 색칠하면 될까요?", "이상한 것 같아요", "빡빡하게 다 칠해도 될까요?", "여백이 너무 많은 것 아닐까요?" 등 다양한 질문을 할 때면 제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아, 그냥 아무거나 그어보세요. 상관없어요. 잘하고 있어요." 그리고 하나 덧붙여 말했죠. "의심하지 말고요."

사실 '그냥 아무거나 그어보라'는 말이 참여자에겐 너무 무책임할 수도 있으니 <흔들리는 선>을 교재로 삼기로 했어요.

이성작가의 셀프 워크숍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아요. 이성작가의 미감은 상승할까요, 멈출까요, 하강할까요? 앞으로가 궁금하긴 한데 상관없어요. 있는 그대로를 살펴보고 싶고, 그 있는 그대로가 이성작가의 미감 자체이니까요. 다른 말로 그것이 이성작가의 개성이고요.

이성작가 감성작가의 반반 드로잉 시작

독자들과 드로잉 시작

이성작가가 교재로 삼은 제 책 <흔들리는 선>은 쉽게 쓰려 노력했지만 결코 친절한 책이 아닙니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꽤 있을 것입니다. 참고자료를 상세히 싣지도 않았고 독자들을 일부러 불편하게도 했답니다. 스스로 참고내용을 찾아보길 권하는 마음에서요. "미리 지식을 습득하고 나면 아무래도 미술사나 참고자료를 떠올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비슷하게 그리게 되거든요."(교재 16p) 하지만 작가인 저도 마음 한 구석에는 더 설명해줄 걸 그랬나 갈등도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혼자 워크숍을 진행해 보는 이성작가를 따라 '끄적이기'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쓰기'에만 관심이 있더라도 말이죠.

쓰기를 할 때 '일상에 대한 관찰'이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어요. 더불어 그리기는 관찰에 힘을 실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니, 쓰기와 그리기 관찰은 연결되어 있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관찰하는 힘'은 '직관'이라는 조금 어려운 단어로 치환해 볼 수 있어요. '직관'은 창의적 표현을 할 때 '불현듯 튀어나오는 힘'과 같은 것인데,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직관은 창의적 행위를 할 때 저력을 발휘해요. 감성작가를 믿고 한두 번이라도 끄적여 봅시다.

다양한 선과 점, 색 관찰

시작부터 구체적 사물 특히, 원구 같은 것을 소묘해 보자라는 것이 아니고 그저 '점' 하나 툭 찍어보자는 제안은 머리 식히기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어휴, 그래도 나는 그리기는 못하겠다. 싫다. 라고 생각하는 분이 분명 있을 텐데요. 무언가를 하지 않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해 봅시다. 자! 종이랑 연필만 있으면 돼요!

눈을 감아봅시다! 그 다음 손을 움직여보고요!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가며 이게 뭐하는 짓인가 그런 생각이 누구나 들어요! 그러면서 눈 살짝 떠볼까 하는 순간 눈을 더욱 꼭 감아요. 다시 손을 조금 더 움직여보세요.

자... 이제 충분해요... 다시 눈을 떠 보세요.

눈을 감고 그리면 나타나는 자유로운 선

종이 위에 무엇이 보이나요? 다시 봐도 잘 모르겠으면 테이프를 조금 찢어 깨끗한 벽에 붙이고 하루 정도 자신의 작업을 바라보세요. 자꾸 안 하려고만 노력하지 말고요.

그렇게 그림을 좀 들여다보면서 그 위에 작은 점, 큰 점, 흐린 점, 밝은 점, 흔들리는 점, 뾰족한 점, 비싸 보이는 점, 단단한 점, 슬픈 점, 우울한 점, 발랄한 점, 흐물거리는 점, 둥둥 떠다니는 점, 물아래 점, 달빛 머금은 점, 우르르 점, 외톨이 점.... 별의 별 점을 끄적여 보세요.

여기까지!

벌써, 첫 번째 드로잉 시간이 끝났습니다.

이성작가와 감성작가의 반반 드로잉

라이팅듀오로 활동하는 이성작가와 감성작가는 8절도화지 한 장을 반으로 접었습니다. 먼저 그리는 사람이 도화지 중앙을 살짝 넘어 그리고 다음 사람이 이어그리기를 합니다. 그리고 드로잉이 완성될 때까지 서로의 그림을 않도록 규칙을 세워뒀습니다. 어떤 그림이 나올지 궁금하면서, 이어 그리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서로 너무나 다른 표현방법에 놀라기도 하고, 웃음 짓기도  하죠.

이성작가는 정말 성실한 워크숍 참여자 같아요. 교재 글도 꼼꼼하게 읽고, 책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반려식물로 톡 톡 물감을 찍어 표현했더군요. 나뭇잎 드로잉은 붓으로 그리는 것보다는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힘들었을 테지만 끝까지 열심히 완성했어요. 다양한 점에 대해 고민해본 흔적도 보여요. 규칙적으로 화면을 배열한 것이 똑 이성작가 양식의 그림입니다.

무언가를 잘 그려야 한다는 강박증을 내려놓고 자신의 '작업'에 빠져드세요. 자꾸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하려 말고요. 점 하나 그리고 납득이 갈 리 만무하지만요.

저는 이성작가의 드로잉을 이어받아 슥 슥 선으로 그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성작가가 그린 절반 그림을 상상해보니 규칙적인 점, 선을 연구한 것 같더군요. 이성작가의 그림과 똑 닮은 느낌 말고 제가 그리고 싶은 분위기를 상상하며 시작했어요. 점으로부터 선으로 가는 과정도 생각하며 오랜만에 종이 위에 사각 사각 거리는 드로잉 질감을 느꼈지요. 보통은 드로잉 워크숍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지만 이번 드로잉듀오 작업은 감성작가가 충분히 즐기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냥 저도 제 작업을 하며 성공도 해보고 실패도 해보기로 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