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는 작가의 첫 독자입니다. 작가인 저는 제 첫 독자가 가장 부담스럽습니다. 그는 책을 여러 번 읽으며 저를 꿰뚫기 때문입니다. 편집자는 작가가 써 놓은 글을 의심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의심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글은 좋게 바뀌지만, 때론 그 과정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물론 고마운 감정이 들 때가 훨씬 많지만요.  

어떤 날은 내용을 두고 첨예하게 날을 세우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한 없이 용기를 북돋우며 작가를 이끌어 줍니다. 더 쓰고 싶어 하는 작가를 말리기도 하고, 덜 쓴 부분을 짚어주며 글을 새롭게 도전하도록 돕는 역할도 합니다. 신기한 것은 책을 하나 끝낼 때마다 편집자와의 헤어짐이 그렇게 서운합니다. 어쩌면 편집자에게 길들여졌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각 편집자들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저자 양육 방식’에 익숙해진 작가는 책이 만들어 진 후 홀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 자꾸 그 전 편집자가 떠올라요. 전 에디터와 현 에디터 사이에서 마음과 정신이 오락가락 할 때도 있고요.

책을 한 권 쓰려면 정말 오랜 시간을 혼자 앉아 써야하는데, 신나게 쓰다가도 어떤 날은 너무 힘이 드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럴 때 나는 편집자들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내가 공들여 쓴 글이 허무하게 끝나 버릴 수도 있지, 뭐. 하지만 책만 만드는 업을 하는 편집자들이 그래도 내 글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책으로 만들어 나아갔으니 내가 쓴 글을 깊게 알아봐 준 사람이 책마다 한명씩은 있는 거잖아? 그러면 된 거지. 더 바라면 나도 욕심이지.’

이렇게 혼자 몰래 스스로를 다독이며 힘이 축 빠진 문장을 단단하게 마무리 지어나갑니다.

갖고 싶은 아트북에 코를 빠트린 감성작가 (사진: 이성작가)

내가 만났던 편집자들

그럼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제가 만난 편집자와 나눈 메일을 조금 공개해 볼까합니다. 편집자들마다 조금씩 다른 온도 차이를 느껴보세요.

‘감성작가가 만난 첫 번째 편집자의 메일’

그리고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선생님의 유아미술 교육 방법은 독특하고 새로운 시각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게 저희도 무척 마음에 들었고, 책으로 낼만한 의미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문제는 글이 더 쉽고 편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현 상태의 글은 흥미를 느껴 계속 읽어가기엔 딱딱하고 정리가 덜 된 느낌이에요.

‘감성작가가 만난 두 번째 편집자의 메일’

지형 님께서 힘써 주셔야 할 부분은 8월의 단행본 원고 재작성, 디자이너 리서치 파트인데요. 제가 판단하기에는 이번 단행본의 디자인이 중요할 것 같아서 ○○ 디자이너가 이 책의 특성과 내용을 여느 때보다도 더 잘 이해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나름대로 리서치하겠지만, 지형 님이 원하시는 방향의 디자인도 한번 고민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감성작가가 만난 세 번째 편집자의 메일’

우선 주무시죠. 이번 주 내로 자료 다시 살펴보고 생각도 정리하고 일정도 잡아볼게요. 작가님. :) 믿어줘서 고맙습니다-

‘감성작가가 만난 네 번째 편집자의 메일’

저희 벌써 이만큼이나 썼네요! 뿌듯뿌듯~ 인상주의, 야수파, 고흐, 고갱 수정해주신 부분 넘 좋고요~ 고생하셨어용!!

‘감성작가가 만난 이후 기타의 편집자 여러 명 중 한 명’

지형 샘, 아직 보내주신 파일은 열어보지 않았어요. 곧 개봉 예정. 샘이 주신 자료를 읽고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와'(과)에 대해 생각을 해보니 여기서 대화가,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는 지점? 같았어요.

두 종류의 편집


‘편집하다’라는 단어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단어인데요. ‘편집’이라는 말을 ‘창의’로 해석하기도 한답니다. 현대의 미술에서 ‘낯설게 하기’가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편집을 어떠한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지각 관념을 180도 바꿔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편집을 주체적으로 시도한다는 것이 창의적 활동이라는 좋은 예시가 있죠. 바로 ‘편집매장’인데요. 정체모를 브랜드들이 MD에 의해 재편집되어 있는 매장을 만나면 윈도우 쇼핑 그 자체로도 즐겁거든요. 세상 하나뿐인 스니커즈 위에 문구류가 펼쳐져있고, 계절과 상관없는 옷과 유일무이한 소품이 믹스매치되어 있죠. 방문하기 어려운 도시에서만 판매하는 치약, 그리고 얼마 전에 출판된 것처럼 보이는 잡지, 그 옆에 떡 하니 놓인 한국성 짙은 전통 굿즈 등을 보고 있노라면 1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죠. 결국 ‘어머, 이건 사야해’ 봉투도 손에 들려 있고요.

향수가게에서 사고 싶은 그림 이젤 발견, 꼭 안 파는 것들이 더 갖고 싶어요.

편집자와 편집증 사이에


그런데 제 머릿속의 ‘편집하다’는 두 가지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제가 창작하는 과정에서의 ‘편집’과 편집자들을 만나 하는 ‘편집’은 많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편집자들의 ‘편집’은 규칙이 있고, 완벽한 편집증적인 ‘편집’과 맞닿아 있었어요. 편집증적인 ‘편집’은 단 하나의 오타와 띄어쓰기를 허용치 않으며 내용구성에 있어서도 인쇄 직전까지 검열을 하는 거죠. 작가는 한 줄 한 줄 영혼을 다해 쓰긴 하지만 영혼이 녹아드는 순간 글을 저 세상에서 쓰고 있다는 증거죠. 자신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면 아마존 숲 한가운데서 쓰고 있을 때가 많아요. 더군다나 숙련되지 않은 작가들은 편집자가 손을 꼭 잡고 숲 속에서 데리고 나오지 않으면 굶어 죽는 줄도, 깜깜한 숲이 위한한 줄도 모른 채 자신의 세계에 취해 글을 쓰고 있을 확률이 높아요.

그만 쓰라고, 그만 생각하라고, 그 생각보다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라이트를 켜주면 그제 서야 이 세상으로 돌아와 정신을 차리고 독자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의 글을 쓰죠. 또 작가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긴 하지만 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에 매몰될 때도 많아요. 그럴 때 편집자는 편집을 통해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글을 재배치하는데요, 재배치된 글을 받아보면 작가는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편집 오류가 있었는지 깨닫게 되요.

이처럼 저자 뒤에 그리고 책 뒤에서 자신을 하나도 드러내지 않고 독자와 작가의 거리를 좁혀주기 위해 편집증적으로 일하는 편집자가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했으면 합니다. 혼자 훌륭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는 많지요. 하지만 좋은 편집자를 만나 자신의 글이 100배는 더 훌륭해 질 수 있는 작가는 행운입니다.

내가 만난 편집자들과의 에필로그


작가 뒤에 머물렀던 편집자님들의 성함을 꺼내보고 싶어 실명을 사용했습니다. 장유진님, 박소현님, 정서연님 감사합니다.

1) <의자와 낙서> 편집자님께

유진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나는 <흔들리는 선> 편집을 하는 내내 유진님이 생각이 났어요. 600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정리해서 142페이지로 만들어 냈다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을 테지요. 해리디자이너와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 근황 정도 나누는 시간을 갖지만 저는 그 시간이 참 좋아요. 책 한권을 만들기 위해 짧은 시간을 만나도 서로 깊숙하게 아는 사이 같기도 하거든요. 단시간이지만 작가의 머릿속에 엄청 깊이 들어왔다 나가는 사이가 편집자와 디자이너 아닐까요. 독자들은 그 이면의 과정은 모르겠지만 단 한 페이지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음을 느낄 순 있을 것 같아요. 책을 자세히 들여다 본 독자라면 말이죠. <의자와 낙서> 이후 유진님의 손을 거쳐 많은 책이 탄생되었겠죠. 저는 제 책이 유진님의 마음에 크게 남아있는 책이길 바라진 않아요. 제 책을 편집하면서 생긴 노하우가 다른 책들에 많이 묻어나길 바랄 뿐입니다. 자주 보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바라지도 않지만 오래도록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고 책이 풀리지 않을 때 고민스러울 때 생각나는 심리적 거리에 머무르고 싶네요.

2) <흔들리는 선> 편집자님께

크리스 박님, 이름을 불러도 될까요? 예명을 부르긴 했지만 이 예명을 언급하는 것조차 허락을 구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을 하게 만드는 분이십니다. 한없이 강직해 보이는데 한편으로는 한없이 연약해서 보호해줘야 할 것 같은 편집자님이십니다. 산발적으로 썼던 책이 앞은 가볍고 뒤가 묵직한 세련된 편집으로 묶여져 온 순간부터는 편집자님이 우려했던 교정교열엔 관심도 없었답니다. 1차 편집에서 이미 느낌으로 알 수 있었어요. “됐다. 흔들선 끝났네”라고 생각했죠. 작가는 작가만의 촉이 있잖아요. 편집자님은 편집자님의 촉이 있듯. 사탄으로 불리우길 바라시지만 영원히 사탕 같은 사람입니다. 물론 멘톨사탕 정도로 할게요.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할머니가 된 편집자님과, 진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디자이너님과 아주 약간 더 어린 할머니가 된 제가 함께 웃으면서 밥 먹을 시간도 기다려집니다.

3) <라이팅듀오> 편집자님께

이성작가, 차가운 서울내기 첫 인상은 사라지고 해달라는 것 다 해주는 성 SAINT. 시작할 때 초치듯 무턱대고 시동부터 껐던 나는 이성작가를 만나 이번 세상에 없을 경험을 다 하고 있어요. 지금도 여전히 가끔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하는 갈등도 있지만요. 논술강화 훈련 같은 듀오 프로젝트는 날이 갈수록 나의 작문실력을 키워주고 있어서 내가 훨씬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지 이러다 내가 진짜 조지 오웰이 될 1%의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상상하며 두근거려요.

돌발 퀴즈


이성작가가 <라이팅듀오> 편집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위의 글 중 '내가 만났던 편집자들' 부분에서 이성작가가 보낸 메일은 몇 번째일까요? 여러분들의 선택을 writingduo.official@gmail.com 로 보내주세요. (댓글 기능은 개발 중이오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맞히면 선물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