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계약서상 작가는 ‘갑’으로 표기되지만, 내가 편집자를 ‘선택’하는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창작자가 되면 출판사뿐만 아니라 잡지사, 콘텐츠 회사, 기타 기관에서 이런저런 제안을 받는 일이 조금씩 생겨나고, 여러 제안 중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평소 어떤 편집자와 함께 일하면 좋을지 나만의 기준을 세워두면 창작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죠.

저는 창작자가 편집자로부터 받는 제안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편집자의 머릿속에 구상이 완료되어 있고, 창작자가 그 안에서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

2) 창작자로 하여금 원하는 것을 쓰게 한 다음, 편집자가 그 안에서 도울 방법을 모색하는 방식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두 제안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 둘을 가르는 지점은 바로 창작자의 ‘자율성’인데요. 1)은 이미 구상된 콘텐츠에 창작자가 ‘손’의 역할을 해주는 상황이고, 2)는 창작자가 ‘머리’의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참고로 저는 제안이 왔을 때 1)의 경우는 응하지 않고, 2)의 경우에만 검토를 시작합니다.

제가 이런 기준을 갖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온라인 매체와 콘텐츠 발행 계약을 체결한 적이 있었는데요. 목차는 제가 직접 구성했고, 그쪽에서도 담당 편집자를 배정해 원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작업이 지속될수록 ‘이건 아니다’ 싶은 순간들이 생겼죠.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편집자가 자신의 머릿속에 구상해둔 방향이 있었던 것이죠. 제가 그 방향으로 글을 쓸 수는 없었고요. 결국 원고 작업이 3/4 정도 진행됐을 때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시간이 아까웠지만 배운 점이 있었어요. ‘자율성’을 보장하는 편집자와 함께 하는 것이 저에게는 무척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요.

이 사건(?) 이후에 다양한 제안을 받았는데요. 1)과 2)가 반반 정도였어요. 가장 최근에 받은 출판사의 제안도 1)의 범주에 속했기 때문에 응하지 않았죠. 제 기준에서 1)의 경우는 ‘창작자’와 계약하기보다 ‘직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작가는 편집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구현해주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좋은 편집자 만나는 법

제 첫 책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하고 싶은 너에게>의 편집자님은 2)의 범주였습니다. 우선 첫 미팅 전에 이메일로 제 브런치에 있는 글들을 모아 목차를 구성해 주셨어요. 이와 더불어 자신의 경력을 소개하고,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같이 책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주셨죠. 창작자의 의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제시한 점이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졌어요.

첫 미팅에서도 좋은 감정이 지속됐는데요. 제 브런치 글을 모두 인쇄해서 형광펜으로 표시해 오셨더라고요. 짧은 시간 안에 제 글의 특성을 파악하신 것 같았어요. 당시의 출판 트렌드를 설명해주시면서도 목차를 구성할 권한은 저에게 주셨고요. 창작자의 개성을 존중함과 동시에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한 점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