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기 전에는 잠만 자자. 일기는 낮에 쓸 수 있다.

1996년 9월 3일 화요일. 맑고 더웠다.

잠 _ 성진아

일기를 빨리 쓰고 잠을 잘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일기를 쓰기가 싫었다. 너무 잠이 왔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일기를 모아 책을 낸 선생님이 있습니다. 1950년 경상북도 영주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그곳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해오고 계신 윤태규 선생님입니다. 1998년에 처음 『일기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를 발행해 2018년 26쇄를 찍었다고 하네요. 2021년 현재 이 책은 독자가 자력으로 발견해 내기 어려운 서가들에 꽂혀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저는 이 책을 경의선 책거리 공원 ‘옛따 책방’ 서점지기님을 통해서 소개받았습니다. 제가 세상에 하고 있는 이야기를 넌지시 알고 있던 서점지기님은 제게 꼭 맞는 책을 손에 쥐어주셨어요. 이런 책을 만날 때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답니다. 만약 띠지에 “교사와 학부모를 위한 새로운 일기 지도 길잡이”라 적혀있는 『일기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를 대형문고에서 만났다면 펼쳐보지도 않고 지나쳤을 테죠.

이 책을 읽다보면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급해지기도 하네요. ‘숨은 책들아, 너희가 알아서 나를 돌아보게 해다오. 널 보고도 혹여 내가 성급하게 뒤 돌아서거든 다른 책방에서 꼭 다시 눈에 띄어다오. 겉표지만 보고 속단하는, 진부한 제목이라 편견을 갖는 내게 기회를 한 번만 다오’하고 부탁할 지경입니다.

앞서 제가 발행한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 추천> 글에서 이 책의 머리말을 인용했는데 읽어보셨나요? 바로 강도가 일기를 쓴다면 어떻게 쓸까라는 부분입니다. 머리말부터 재미있던 이 책은 읽으면서 포스트잇을 빼곡이 붙이는 저의 최애 책이 되었답니다. 1장 일기 쓰기는 왜 실패하고 있는가, 2장 어떻게 시작할까, 3장 무엇을 어떻게 쓰게 할까, 4장 이럴 때는 어떻게 할까, 5장 여러 가지 일기글로 전개되는데 아이들 일기와 선생님의 시선이 독자가 읽기에 지루하지 않은 호흡으로 전개되니 꼭 읽어 보셨으면 해요.

<일기 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책 표지도 어린이의 그림 입니다.

허깨비 일기쓰기, 허깨비 글쓰기

일기쓰기의 실패 이유를 보고 있자면 ‘글쓰기에 왜 실패하고 있는가’와 같은 이야기임을 알 수 있어요.

‘초등학교에서 겨우 고개를 내밀고 새싹을 틔우는 듯 하다가 공부 때문에, 돈벌이 때문에, 시간이 없기 때문에 깡그리 싹도 없이 말라 죽어 버리고 마는 연약한 것이 일기라면 일기 쓰기 교육은 실패다. 완전 실패다’ 라고 하는 윤태규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없나요?

글자를 완전하게 깨우쳐야만 비로소 일기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자기가 알고 있는 글자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일기를 쓸 수 있는 게 일기라고, 말이 서툰 아가에게 말을 다 배우게 한 뒤에 비로소 말을 하게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는 부분은 허깨비 일기 쓰기, 허깨비 글쓰기에 일침을 가하는 문장입니다.

7살 아이가 서툰 문장으로 쓴 문장이 보입니다.

특히, 일기쓰기 실패 요인과 쓰기를 성공하는 방법을 한 12가지 정도 들어두었는데 특히 기억나는 것들을 나열해볼게요. 특별한 일을 자꾸 쓰려하지 말라는 거죠. 매일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 집안은 정말이지 큰일이 아닐 수가 없다고요. 글을 쓰는 저 또한 이 부분에 너무 공감을 합니다. 제가 쓰고 있는 글들도 일상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지 엄청난 사건을 매일 언급하지 않으니까요. 엄청난 사건이 매일 일어난다면 그 피로감에 글을 어떻게 쓰겠습니까?

또 글을 길게 쓸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잠자기 전에는 잠이나 자고 정신이 맑고 시간이 여유로운 때에 쓰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이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일기장이라는 형식에 대한 언급입니다. 틀에 가두는 잡다한 양식이 일기 쓰기를 재미없게 한다는 거죠. 가령 어떤 날은 3줄만 쓰고 싶고 어떤 날은 3장을 쓰고 싶은 것이 쓰는 이의 자연스러운 마음 아니겠습니까? 특히 어른들이 일기를 쓰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일기를 들여다본다는 것 또한 유심히 살펴보았던 기억이 나요.

내일도 일기를 쓰려고 하는가

윤태규 선생님은 처음 일기를 쓸 때 쓰기 실력의 부족함이 드러나는데 이에 대한 지적보다는 ‘내일 또 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가’에 주목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씨부터 문장으로 쓰라고 하는데요. 그 예시로 ‘큰 다라이에도 얼음이 얼고’라는 표현을 극찬하죠. 저도 무척 동의가 되는 문장입니다. 이만큼 날씨를 잘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 하고요. 그리고 공개된 일기라면 일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그 일기에 궁금해 하며 2편 3편을 기대하는 것도 일기 쓰기를 지속하게 하는 좋은 장치이죠. 일기를 쓸 때 일기 쓴 시간을 적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3시 30분, 4시 56분 이렇게 일기를 쓴 시간을 적어두면 마치 작가가 글쓰기를 할 때 업무 타임시트를 작성하는 효과도 있고요. 이 모든 것이 글쓰기와 얼마나 맞닿은 내용인가요?

『일기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책 소개 마무리는 글감 고르기를 어려워 할 때에 대해 윤태규 선생님이 쓴 글을 공유해 볼까합니다.


"글감 고르기를 잘 못하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가만히 떠올리거나 생각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둘째, 삶이 없기 때문이다.

펄펄 살아 있는 아이들에게 삶이 없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하나부터 열까지 어른이 만들어 준 틀 속에서 기계처럼 살아간다면 그건 자기 삶이 아니다. 주는 것만 받아먹는 삶도 마찬가지다. 삶이 없으면 일기를 쓸 수가 없다. 쓸 거리가 없게 마련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거기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살아가면서 느끼고 깨닫고 하는 삶이 진정한 삶이다. 거기에는 어려움도 있어 그것을 극복하기도 하고 서툴러서 시행착오도 겪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