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사람 마음은 실패한 사람이 제일 잘 알지"라는 말이 익숙한 저예요. 그만큼 실수와 실패를 많이 하면서 살아왔거든요. 한때는 머리가 나쁜 나를 탓하고, 심약하기만한 나를 탓하고, 나의 유전적·환경적 결함을 핑계 삼아 내 탓, 남 탓 '–탓-탓'만 하고 사는 시기가 꽤 길었어요. 어떻게든 내가 저지른 실수와 실패를 '–탓'으로 돌리는 못된 심보를 부렸죠. 그러다보니 실패에서 벗어날 탈출구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어요.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작가가 되었지?’ 하는 궁금증이 생기시죠.

저마저도 궁금하던 차에 기억을 더듬어보니 제가 유일하게 해낸 것이 있더라고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의 일을 관두지 않았어요.

십여 년 넘게 한 분야에 머무르며 견뎌낸 것이 오늘의 나, 작가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거죠. 저는 항상 프로젝트 및 전시를 위해 나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었어요. 일을 할 때는 개인의 부족함에 대해 씨름하는 마음은 접어두고 하루하루 열심히 보낸 거죠. 내 미래에 대해 고민만 하며 흘려보내는 시간보다는 행동으로 또 성실함으로 나의 부족함을 덮었어요. 주변의 동료 큐레이터들에게 낮은 자존감을 자주 드러내지도 않았어요. 잘 나가는 큐레이터들 앞에서면 대놓고 부러워하고, 그들이 마련한 기획전시 오프닝에 참여해 한껏 진심으로 축하해줬습니다. 물론 나를 잘 아는 동료들에게는 나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죠. 대안 없는 고민으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하루하루 성실하게 보냈습니다. 성실하고 바쁘게 보내다보면 '–탓' 할 시간이 줄어들고 심지어 까먹기도 했으니 전체적으로는 허무함 없이 그 긴 세월을 버텨낸 걸지도 몰라요.

미술계에서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돌이 지난 둘째와 산책하는 모습

하지만 미술계에서의 십여 년간 활동은 하루아침에 끝이 났어요. 둘째 아이를 출산하자 단 한 명도 제게 같이 일을 하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죠. 어쩌면 당연한 것 같아요. 전시오픈을 위해 큐레이터가 해내야 하는 일은 상상 그 이상으로 많고, 오픈 날짜까지 맞추려면 시간의 제약도 크거든요. 특히 규모 있는 프로젝트의 경우 여러 명이 동시에 팀워크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결론을 스스로도 내렸죠.

하지만 직업병처럼 남아있던 습관이 무서운 것 같아요.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기르면서 그들이 그려놓은 흔적을 아카이빙하고 짧게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나는 작가가 될 거야', '장차 멋진 큐레이터로 돌아갈거야' 하는 계획은 단 1%도 없었어요. 어차피 여러 번 실패해 본 맷집도 있겠다. 미술계의 화려한 전설하나 없는 뒷방 큐레이터가 자연스레 세상에서 도태되었음을 인정하며 보냈어요.

그렇게 내 취미로만 시작된 아카이빙과 어린이 그림 관찰은 7년간 쌓여갔고, 마음 아주 깊숙이 '요고 한번 써볼까?' 하는 마음이 스치기도 했어요. 하지만 내가 대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쓰지? 에서 늘 멈춰졌죠. 기회도 없었고요.

여러 분야에서 다시 연락이 온다


무엇 하나 잘해본 적 없던 제가 15여 년은 큐레이터로 버텼고, 육아 7년은 직업병처럼 남은 습관으로 아카이빙을 했으니, 총 20년 넘게 미술계 옆의 '옆 큐레이터'로 지나온 셈인데요. 사람이 아무리 모자라도 20년을 한 분야 언저리에 있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동시대 한 분야를 관찰한 산 증인이기도 하죠. 제가 목격한 동시대미술이 별건가요. 제가 맨 처음 인턴으로 마주했던 작가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티스트가 되어 있어요. 대표적인 예로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한 양혜규 작가가 있네요.

분야를 잘 알게는 되었으나 내 자리를 구체적으로 찾지 못한 그 시간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저 일은 열심히 했지만 꿈꾸는 미래도 없었고 꿈을 제공하는 현실도 없던 그 시간들이 지나갔어요. 그런데 '한 번 써볼까?' 하는 마음이 스치는 그때, 20년치가 한꺼번에 빛을 밝혀주더군요. 우연히 알게 된 출판관계자가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셨고, 관심을 표현하며 대화를 나눈 바로 그 다음날 상업 출판사를 연결해 주었어요.

나는 아직 쓸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데 이 일을 어쩌나 생각하면서도 그날 밤 나의 경력을 끌어 모아 회의를 준비 했죠. 무심하게 흘러간 15년의 큐레이터 생활과 목적도 없이 쌓여간 드로잉의 기록들이 갑자기 찾아온 기회에 밑거름이 되어주었죠. 소개받은 출판사에서 첫 씨앗에 싹을 틔울 순 없었지만 오랜 시간 나도 모르게 쌓인 내공은 결국은 다른 곳에서 싹을 틔웠고 지금까지 두 개의 열매가 책으로 맺어졌죠.

큐레이터로 성공했다면 책이라는 열매는 맺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큐레이터와 육아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했던 시간과 더불어 그래도 그 끈을 놓지 않고 무언가를 끄적거리던 매 순간이 합쳐져 다시 미술계로 복직할 내 자리가 스스로 마련된 것입니다. 그 과정은 무척 힘들었지만, 다시 미술관 및 박물관에서 워크숍 제안이 들어오고, 미술교육 분야에서도 다양한 협업 요청 제안을 받게 된 계기였죠. 국립현대미술관 심사제의, 서울시립미술관 북토크, 미술계를 넘어선 프로젝트와 연결되기 시작했어요. 도시재생프로젝트, 과학과 예술 워크숍, 여성기업네트워킹, 장애인복지프로그램, 청소년대화프로그램 등 장르구분 없이 협업했죠. 각 프로젝트에 맞춤형 워크숍을 기획 진행하며 큐레이터로 지냈던 시간 덕에 혼자 이 모든 일을 처리 할 수 있었어요.

부족함과 자신 없는 나 그리고 받쳐주지 못하는 현실들을 뒤로하고 하루에 딱 한 가지만 이뤄나가 보세요. 허무함에 대한 불평보다는 하루를 성실함으로 채워나가면 고민도 덜고 나도 모르는 어딘가에 있는 꿈에 한 발짝 다가가는 시간이 되어 있어요.

감성작가를 믿고, 벽에 써 보세요.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아인슈타인 오라버님의 말씀입니다.

"미래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안 그래도 너무 빨리 오니까." - 아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