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시는 많은 분들이 언젠가는 ‘나의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회사 일을 ‘남의 일’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싶진 않지만, 내가 사장이 아닌 이상 명백하게 ‘나의 일’은 아니니까요. 우리가 일하기 싫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요. ‘나의 일’을 하게 된다면 생각도 바뀔 수 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은 매우 다양할 텐데,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사업’입니다. 내가 사장이 되어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 많은 회사원들의 로망이죠. 퇴사 후 하고 싶은 일 중 ‘창작자’도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유튜버가 그 예인데요. 유튜브로 월급을 능가하는 수익을 얻어 퇴사를 하는 것이 많은 회사원들의 바람이 되었죠. 꼭 유튜버가 아니더라도 웹툰 작가, 웹소설 작가, 혹은 저 같이 책을 쓰는 작가를 꿈꾸시는 분도 있을 듯합니다. 모두 ‘창작자’의 범주에 들어가죠.

사장님 되고 싶네요.

결과만 놓고 보면 저는 공공기관을 그만두고 작가로 데뷔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결과는 ‘우연히’ 일어난 일에 불과하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선택은 제가 봐도 무모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공공기관에 입사할 당시 언론사 시험을 다시 치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험을 준비하던 중 골반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3개월 간 입원을 하게 되고, 결국 그 해 시험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던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에서 계속 일하고 싶진 않고, 언론사에 신입으로 들어가긴 나이가 너무 많고, 사기업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진 않고 등. 머릿속이 복잡했죠.

너무 깊게 고민하지 말자는 생각에 대학원 학위과정에 등록해 학업을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괜찮더군요. 하지만 석사학위를 취득한 시점에 다시 고민은 깊어집니다. 박사까지 하고 싶었지만 박사는 회사와 병행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건 좋은 선택지로 보이지 않았어요. 결국 입학허가를 받고도 등록하지는 않았죠.

하필 그 시기에 업무가 몰리는 부서에 배치돼 정신없게 보냈어요. 야근도 자주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요. 마음 한 구석에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있었는데,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가 5~6년차였기 때문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10년차가 되어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았거든요. 뒤로 갈수록 선택지만 좁아질 뿐이었죠.

내 커리어의 행방은 어디로...

결국 결론을 내리긴 했는데, 결론이 좀 허무해요. ‘공공기관 커리어를 살려서 재취업할 곳은 없다’라는 것이었어요. ‘이 커리어를 버리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모든 것을 원점에 놓은 채 생각해보았습니다. 빈 종이를 하나 꺼내서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원하는 것, 원하지 않는 것 등 ‘마인드맵’을 그려보았어요. 불안했기 때문일까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상한데, 당시에는 좋다고 생각했던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결론은 ‘디자이너가 되자!’였습니다. 모르겠어요. 그냥 해보고 싶었어요.

퇴사하기 전 거의 1년 동안 디자인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는 유학원까지 기웃거렸으니 나름 진지했어요. 학원에 거의 천만 원 가까이 쓴 것 같아요. 분야는 UX 디자인 혹은 북 디자인으로까지 좁혔고요. 결국 저는 디자이너가 되지 못했지만 이때 쌓은 지식과 스킬은 ‘회사를 그만 두어도 굶어죽지는 않겠구나’라는 일말의 자신감을 만들어주었어요. 디자인을 잘했다는 뜻이 아니라 ‘5년 안에 쇼부를 볼 수 있겠다’ 정도의 마음이었죠. 모아둔 돈을 ‘대충’ 계산한 뒤 퇴사를 하게 됩니다.

망한 기운이 느껴진다.

퇴사한 뒤 불안한 적이 없느냐고 질문하신다면, 딱 처음 일주일만 그랬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불안할 때 친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는데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안정을 찾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워볼 수 있었어요. 특히 저에 대해 잘 아는 한 친구가 디자인을 하지 말고 대학원에 가는 건 어떻겠느냐고 조언을 해줬어요. 잘하는 것을 해야지, 새로운 것을 언제 배워서 언제 하냐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조언이 제 인생의 방향을 많이 바꾼 것 같아요.

대학원에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 글쓰기에 ‘인풋(input)’을 하는 장치로 생각했어요. 학계로 갈 생각은 없었고요. 아는 것이 많아져야 쓸 것도 많잖아요. 저는 대학원에서 미디어와 문화연구를 전공했고, 이를 좀 더 확장해 매체철학과 현대미술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준비를 해서 예술학과에 지원했고, 면접 후 발표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어요.

이때 브런치에 미술 관련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브런치 작가는 회사에 다니던 중에도 두 번 신청을 했었는데요. 그때는 아쉽게도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신청을 했습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이 엄청 어려운 일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저에게는 퇴사 후 ‘작은 성취’로 기록될 수 있는 사건이었어요. 이때만 해도 ‘작가’로서의 삶이 시작된 줄은 잘 몰랐습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도 거의 2~3주 동안은 아무 것도 못 썼던 것 같아요. 앞으로 현대미술을 공부할 예정인데, 이 내용을 브런치 글에 쓰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내공이 부족해 당장 쓸 수 있는 글감이 아니다보니 자꾸 미뤄지더라고요. 그러다가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글을 쓰자. 그것이 바로 퇴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당시엔 이미 퇴사에 대한 글을 차고 넘쳤죠. 코로나 이전이었고, 퇴사가 말 그대로 ‘유행’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딱히 쓸 수 있는 글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썼습니다. 브런치 첫 글이 바로 <내가 공공기관을 그만둔 이유>인데요. 이 글이 30만 정도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말 그대로 ‘떡상’을 하게 됩니다. 제 친구가 ‘좋은 글’이라며 저한테 보내줬으니 말 다했죠.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은 것도 이 글 덕분이었습니다.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저는 ‘선인세’를 받게 됩니다. 프리랜서로서의 첫 매출이죠. 이 매출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늘 시장에서 1만 원을 벌 수 있으면, 백만 원, 천만 원도 벌 수 있다고 생각해왔는데요. 첫 매출이 발생했으니 그 뒤는 왠지 모르게 걱정이 안 되더라고요. 실제로 그 해에 ‘글’과 관련한 매출을 계속 내게 됩니다. 원고료를 받고 고정적으로 기고하는 곳도 생겼고요. ‘글’에서 좀 더 확장해 ‘말’과 관련한 매출도 냈어요. 심포지엄 사회자로 참석한 적이 있었죠. 월급 수준을 회복하기에는 아직 멀었지만, 잠재력을 품고 있는 매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냥...?

제가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들려드린 이유를 지금부터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시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회사에서 일할 땐 시장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기업도 아니고 공공기관이니 더했죠. 하지만 저는 첫 매출을 발생시킨 뒤 시장의 속성을 빠르게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의 노동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라고 봤을 때, 시장에서는 거래될 가치가 있는 상품이 거래된다는 것이죠. 제 ‘글’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었던 건 제가 ‘글’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을 만큼은 써왔다는 증거입니다. 반면에 저의 ‘디자인’은 거래되지 않았죠. ‘상품’으로 거래되기엔 그 가치가 너무 낮다는 것을 나도 알고, 시장도 알고 있었던 거죠.

제가 가진 능력 중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상품은 ‘글’ 뿐이었습니다. 책 원고와 인세를 맞바꾸고, 기사와 원고료를 거래하죠. 이것이 바로 제가 작가가 된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에 대해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자신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스킬이니까요. 그래서 자꾸 새로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제가 권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시장에서 ‘1만 원’을 벌어보라는 제안입니다. 단, 누구에게 ‘고용’되어 받은 급여는 제외입니다. ‘시장’에서 직접 ‘거래’해 보세요. 크몽이나 숨고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셔도 좋고, 알음알음 일을 구하셔도 좋습니다. 오랫동안 외국어를 해오신 분들은 영상 번역을 할 수 있겠고, 손재주가 좋은 분들은 굿즈를 직접 만들어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 팔 수도 있겠죠. ‘글’을 거래하고 싶으신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글’로 첫 매출을 냈다면 이미 작가의 삶이 시작된 겁니다.


15년 차 큐레이터가 ‘작가’가 되기까지
″실패한 사람 마음은 실패한 사람이 제일 잘 알지”라는 말이 익숙한 저예요. 그만큼 실수와 실패를 많이 하면서 살아왔거든요. 한때는 머리가 나쁜 나를 탓하고, 심약하기만한 나를 탓하고, 나의 유전적·환경적 결함을 핑계 삼아 내 탓, 남 탓 ‘–탓-탓‘만 하고 사는 시기가 꽤 길었어요. 어떻게든 내가 저지른 실수와 실패를 ‘–탓’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