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책 출간은 몇몇 특별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습니다. 소설가나 시인처럼 전문적으로 글을 쓰거나, 대학 교수와 같이 전문 지식을 생산해내는 경우, 혹은 일부 유명인에게만 ‘작가’라는 호칭이 붙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출판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져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작가의 범주도 확장되었죠. 웹툰, 웹소설 작가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콘텐츠 크리에이터 모두가 작가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계약에 관한 사항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데요. 작가의 일은 창작의 영역인 만큼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는 것이 필수가 되었죠.

출판 계약을 앞두고 있는 예비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제가 공통적으로 받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책을 출판하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느냐’라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책을 출판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만약 작가에게 돈을 요구하는 곳이 있다면 무언가 잘못된 거죠. 책 출판을 준비하고 계시는 라이팅듀오의 구독자 여러분에게 모쪼록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번 콘텐츠를 준비했습니다.

출판 계약서 꼼꼼하게 살피기

표준계약서를 잘 살피자

출판 계약은 다른 계약에 비해 크게 복잡한 계약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고시한 ‘표준계약서’가 있기 때문인데요. 그동안 출판계에는 크게 3종(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인회의, 문화체육관광부)의 표준계약서가 존재했는데, 여러 논의를 거쳐 올해 초 통합 표준계약서가 발표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보통 표준계약서를 제시하기 때문에  내용을 미리 숙지하고 있다면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맨 처음에만 조금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수월하죠. 출판 표준계약서는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링크도 첨부하여 드립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출판권 설정계약서’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려 합니다. 출판권 설정계약서는 단행본 출판을 위해 필요한 계약서입니다. 계약서라고 해서 지레 겁이 날 수도 있는데요. 별 것 없습니다. 계약서에서 꼭 살펴봐야 할 몇 가지 부분을 먼저 짚어보려 합니다.

출판권 설정계약서(표준계약서)를 보면 기본적인 내용이 적혀 있고, 밑줄(____)로 빈칸이 뚫린 부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빈칸들입니다. 다른 부분들은 표준계약서와 비교해 같은지만 확인해보시면 되는데요. 만약 표준계약서와 다르게 기입된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출판사 측에 문의하셔야 합니다. 다르게 표기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들어야 할 테고요. 그 부분이 충족된다면 이제 빈칸에 어떤 내용(주로 숫자)을 기입하느냐가 중요합니다.

📌 저작자의 표시

요즘에는 필명으로 글을 쓰시는 분들도 많죠. 저작권자인 작가는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서 어떤 이름으로 발행을 할지 전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에 반하여 작가의 실명으로 출판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저작자의 표시 부분을 꼭 확인해주시고요. 제호는 괄호 안에 (가제)라고 써있는 만큼 변경될 수 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 계약 기간

제6조(출판권의 존속기간 등)에서 출판사가 저작물의 출판권을 얼마나 보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저는 5년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초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이 기간을 10년으로 명시한 계약서를 이야기하기도 해서 작가에게 너무 불리하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너무 길거나(10년), 너무 짧으면(2~3년) 작가가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일이 생기겠죠.

📌 원고 마감 날짜

계약서에는 작가가 몇 월 며칠까지 완전원고(초고)를 넘겨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요. 저는 첫 번째 책을 계약할 때 미팅에서 날짜를 조율한 뒤 계약서에 사인을 했어요. 그래서 계약서의 다른 부분은 프린트가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손으로 썼네요. 출판사는 완전원고를 인도받은 날로부터 대략 6~9개월 이내에 출판하는 것이 관행인 것 같습니다.

📌 인세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제15조(저작권사용료 등)죠. 출판사에서 ‘인세(印稅)’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저작권사용료’입니다. 인세에 대해서는 라이팅듀오에서 다루었던 <인세로 먹고 살 수 있을까?>(이성작가), <10% 인세로 먹고살려면>(감성작가)에도 여러 정보가 담겨 있으니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해주시고요. 인세는 대체로 8~12%로 정해지며, 출판사와 작가의 분쟁이 발생한다면 주로 이 부분이 문제가 될 것이니 꼼꼼히 살펴봐주세요.

📌 지불 방법

올해 개정된 표준계약서에서는 발행부수에 따른 지불 방법이 구분되어 있어요. 예전에는 몇 %를 명시한 부분과 몇 월에 정산하는 부분 정도로 비교적 간략했거든요. 저작권사용료 산정 및 지불 방법은 계약하기 나름이긴 한데요. 크게 6가지로 나뉩니다. 이 부분은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 해설’을 참고해 제가 다시 정리한 내용입니다.

1) 발행부수에 따른 선지불 방법

: 도서의 정가를 기준으로 한 비율에 발행부수를 곱한 금액을 작가에게 도서가 발행되기 전 지불하는 방식

  • 장점: 유명저자와 흥행에 자신 있는 출판사에게 바람직한 방법
  • 단점: 쌍방 사이에 최소한의 신뢰가 필요하며, 출판사가 무리한 판촉 경쟁에 뛰어들어 실익이 없을 수 있음

2) 발행부수에 따른 후지불 방법

: 계약금 형식의 선지급금 없이 도서를 발행한 후 일정기간 안에 그에 따른 저작권사용료를 지불하는 방식

  • 장점: 초보저자의 경우 부담이 적음
  • 단점: 발행부수에 대해 검증하기 쉽지 않아 양자 사이에 분쟁의 소지가 높을 수 있음

3) 발행부수에 따른 선지불 및 후지불 방법의 절충형

: 초판 1쇄에 한하여 계약금 명복으로 발행부수에 따른 저작권사용료를 먼저 지불하고, 그 다음부터는 나중에 지불하는 방식

  • 장점: 1)과 2)의 장점을 혼합
  • 단점: 양자 사이에 신뢰도가 낮다면 성공하기 어렵고, 지불 시기에 있어 문제가 될 수 있음

4) 판매부수에 따른 후지불 방법

  • 장점: 출판사가 판매부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주기적으로 작가에게 제공한다면 합리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음.
  • 단점: 신뢰의 문제

⭐️ 5) 발행부수와 판매부수를 혼합한 절충형

: 초판 1쇄에 대해서는 발행부수를 기준으로 계산한 저작권사용료를 출판사에서 먼저 작가에게 지불하고, 이후에는 일정기간을 두고 판매부수를 계산하여 나중에 지불하는 방법

  • 장점: 가장 이상적인 방법
  • 단점: 출판사가 도서 판매에 따른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함

6) 저작권사용료 기준비율의 누진 또는 누감 적용 방법

: 발행부수, 판매부수의 비율을 확정하지 않고 늘어남에 따라 그 비율을 차등 적용하는 방법

  • 장점: 합리적
  • 단점: 복잡함

이렇게 정리해보니 조금 복잡하게 느껴지네요. 하지만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5)번의 옵션을 출판사에 요구하기 위해 나머지 부분을 알아야 할 뿐이니까요. 저도 출판 계약을 할 때 5)번의 옵션을 적용하였는데요. 초판 1쇄에 대해서는 실제 판매되는 것과 관계없이 인세를 정산 받고, 2쇄부터는 판매부수에 따라 받는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1쇄가 2000부라고 했을 때 2000부에 대한 인세를 모두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팔리는 것과 상관없이요. 물론 저자가 책이 팔리든 말든 나 몰라라 해선 안 되겠죠. 상호간의 신뢰와 존중이 가장 중요합니다.

표준계약서를 둘러싼 잡음들

얼마 전 출판계를 대표하는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표준계약서 사용을 강제 당했다며 행정소송을 낸 일이 있었습니다. 글의 초반부에 말씀드린 것처럼, 출협이 출판권 존속 기간을 10년으로 한 표준계약서를 발표했다가 작가 단체로부터 반발에 부딪혔죠. 여기에는 2차적 저작물 작성을 출판사에 일임한 내용도 있었기에 작가에게 불리한 건 사실이었죠. 논란이 있자 문체부가 이 내용들을 삭제한 표준계약서를 발표했고요. 이에 반발한 출협은 표준계약서 고시를 취소하라고 청구했으나, 얼마 전 ‘각하’ 판결이 났습니다. 표준계약서는 사실 꼭 그렇게 계약하라는 것이 아닌, 계약 당사자들이 사용하거나 참고할 수 있는 표준을 만든 것이니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구독자 여려분께서 출판 계약을 하시는 경우 1) 표준계약서를 기본으로 하되, 2) 나에게 특별하게 불리한 조항이 없는지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2차 저작권이 뭐기에

출협과 문체부의 갈등은 사실 2차 저작권에 대한 문제로 귀결됩니다. ‘출판권 설정계약서’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은데, 2차 저작권 문제로 넘어가면 조금 복잡해지죠. 최근 출판권 설정계약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이슈가 2차 저작권이며, 2차 저작권은 말 그대로 1차 저작물(원저작물)을 바탕으로 웹툰, 드라마, 영화, 연극, 애니메이션 등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창작할 권리를 말합니다. 전자책이나 해외 수출을 위한 번역서도 엄밀히 말하면 2차 저작물에 해당하지만, 이 부분은 크게 복잡하지 않고 부가가치도 크지 않아 쟁점까진 아닙니다.

약 10년 전만 하더라도 2차적 저작권은 대개 출판사에 위임하고 이에 따른 수익도 출판사와 저작자가 동일하게 배분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요. 최근 창작자의 권리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2차 저작권 계약을 출판사에 위임하지 않고 작가가 직접 갖거나 에이전시에 위임하는 식이죠. 저나 감성작가는 ‘스토리’를 만드는 장르를 다루고 있진 않아서 2차 저작권에 대한 이슈가 크게 불거질 일은 없었는데요. 저희 구독자 분들 중에는 웹소설을 비롯해 시, 소설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도 꽤 계시더라고요. 출판 계약과 관련해 궁금하시거나 고민되는 사인이 있으시면 저희 라이팅듀오와 나누어 주시면 좋겠네요.


출판계는 작가와 출판사가 공생하면서 나아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죠. 계약서를 꼼꼼히 따지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출판사의 역할 없이는 작가의 글이 독자에게 가 닿을 수 없잖아요. 계약의 상대방을 ‘적’으로 생각해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윈윈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쓴 글이 좋은 출판사를 만나 더 많은 독자에게 가 닿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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