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평소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들거나 혹은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 내고 싶다는 저의 욕망을 나무랐습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을 글 또는 미술, 음악, 무용 등의 형식을 빌려 표현하는 것이지 그 형식이 좋아 거기에 내용을 넣는다는 것이 순서상 바뀌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또한 글로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없지는 않았지만, 글이 내가 잘 표현하는 도구가 맞을까 하는 의문점도 항상 있었습니다. 저는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은 따로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라이팅 듀오에서 날아오는 이메일을 찬찬히 읽으며 글쓰기에 대한 제 생각은 조금 바뀌었습니다. 적어도 글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나와 같은 욕망을 가지고 글쓰기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제가 가진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정당성을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기분은 글 쓰고 싶다는 용기를 북돋아 줬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 타인의 평가 휘둘리지 말고 무작정 쓰고 싶은 대로 습작을 많이 해보라는 글은 특히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이런 자세로 글쓰기를 꾸준히 하다 보면 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모두 글감이 되고 내용이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일상의 감각들도 더욱 예민해지고 풍부해졌죠. 감성 작가님이 소개해 주신 글 잘쓰는 오빠, 괴테의 ‘매일 사소한 것에 경탄하라’는 문구도 마음에 새기면서요.

라이팅 듀오에서 초기에 소개된 독립 출판과 상업 출판, 인세, 출판사와 편집자에 대한 설명과 경험담 들은 솔직히 저에게 가까이 와닿지 않았습니다. 저에겐 너무 먼 이야기 같았거든요. 하지만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 어휘 늘리는 법, 묘사하기 등의 글쓰기에 직접적인 정보를 주는 내용들과 글을 쓰는 이유, 꾸준히 쓰는 힘을 기르는 법, 끝까지 쓰는 용기 등의 글 쓰는 자세와 태도에 대한 내용은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하면서 제 글쓰기에 도움이 될 수 있게끔 흡수하려고 노력했어요.

같은 주제로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다양한 입장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성 작가와 감성 작가의 글을 보는 즐거움도 컸어요. 뵌 적도 없지만, 글을 통해 목소리와 말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두 분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도 읽어 보고 출판한 책들도 찾아보며 저 혼자 두 분과 친해진 느낌도 받고요. 여전히 글쓰기에 관해 공부하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귀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추천해준 책들과 알게 된 글쓰기에 대한 정보를 따로 찾아보기도 하고 메모도 하면서 글쓰기 연습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나만 보는 일기 형식의 글쓰기였지요. 여전히 제 글에는 알맹이가 부족한 느낌도 들고 늘 마지막은 반성으로 마무리하게 되어 반성문 같은 느낌이 있지만 매일 글쓰기를 하면서 적합한 어휘, 진부하지 않은 표현, 반복되지 않는 단어 등을 신경 쓰게 되었고 스스로도 글이 나아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엔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나아진다는 가능성이 글 쓰고 싶은 욕구를 응원하고 있었죠. 그러면서 문득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글쓰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그 마음속에는 무슨 내용을 얘기해야 할까도 문제였지만 제가 가진 글쓰기 기술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자신감이 없었던 것이죠.

미술적 기법과 글쓰기 문법의 공통점

저는 현재 미국에 있는 한글학교에서 미술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어 정규 교육을 받는 한국 아이들에게 주말에 한국어에 대해 가르치는 학교인데 그곳에서 특별활동으로 미술을 가르치는 것이죠.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도 잠시 어린이 미술을 가르친 적이 있었지만, 그 당시엔 할 줄 아는 것으로 용돈벌이를 했던 것이지 아이들의 미술 교육을 위한 나만의 지침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 둘을 낳고 기르면서 미술 활동이 아이에게 미치는 정서적 영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 저의 미술 교육에 반영되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미술적 기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한 학기의 미술 계획표를 세울 때 저는 크게 과정 중심의 주제와 결과 중심의 주제로 나누어 구성합니다. 과정 중심의 주제는 아이들이 미술 활동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대신 결과물에는 큰 의의를 두지 않습니다. 반면 결과물 중심의 주제는 아이들이 그 과정에서 좀 힘들고 하기 싫더라도 다 완성해서 봤을 때 스스로 자부심이 느껴지고 부모님께 자랑하고 싶거나 집의 벽 한편에 붙여 놓고 싶은 것들로 구성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 두 가지를 떠나 아이들에게 미술 창작의 자율성을 주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주제를 설명해 주고 예시를 보여줘도 주어진 재료들로 엉뚱하고 제멋대로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이 접시와 런치 종이백을 주고 집을 만들어 보라고 과제를 줍니다. 그러면 열의 셋 정도는 꼭 그걸 뒤집어서 낙하산을 만들거나 역삼각형의 집을 만들어 세워달라고 부탁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혹은 종이백을 찢어 구름을 만들기도 하고 종이 접시로 팽이를 만들기도 하고요. 그럴 때 저는 결과물이 주제와 벗어났다고 아이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재료들을 바탕으로 자신 나름의 예술 활동을 한 것이기 때문이죠. 어찌 보면 미술 특별활동 시간을 잘 활용한 것입니다.

<집 만들기> 미술 과제. 집의 외관이 아닌 내부를 그린 아이, 낙하산을 만들어 움직이는 집을 만든 아이

같은 맥락으로 가끔 저에게 미술 과외를 의뢰하는 부모님들께 저는 그 비용으로 다양한 미술 재료를 아이들이 손닿는 곳에 준비해 두라고 제안합니다. 미술은 정해진 정답이 없잖아요. 세상의 수많은 도구와 재료들을 해체하고 조합하면서 내 안의 것들을 미술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많은 기존의 미술 작품들은 그런 활동의 예시 같은 것이지 정답이 아니고요. 특히 아동미술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들의 창작 활동을 일찍부터 미술적 문법에 가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걸 글쓰기에도 적용한다면 글 쓰는 이의 반짝반짝 빛나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영감이 맞춤법 및 글쓰기 기술보다는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글을 많이 쓰다 보면 글쓰기 기술은 후차적으로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형식과 문법에 지나치게 겁먹어 하얀 종이 앞에서 한 자도 용기 있게 못 쓰는 것보다는 내가 가진 생각과 묘사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감정, 깔깔대며 웃었던 이야기들을 마음껏 옮겨 놓고 거기에 맞는 형식을 찾아봐도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