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책거리에서 독립서점 시작하기


“급하게 결정해야 하는 일은 되도록 혼자 결정한다”는 감성작가가 스스로를 위해 세워둔 규칙입니다. 천천히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면 좋겠지만 가끔 급하게 휘몰아치는 일이 들어올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사공만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니까 혼자 얼른 노를 잡고 정신을 차립니다. 1. 출발한다. 2. 안 한다. 이렇게 단순화하여 결정하죠.

단, 혼자 결정하더라도 하나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결정이 내게 미치는 ‘경제적 타격’입니다. 독립서점의 시작도 너무 빠른 속도로 의사결정을 해야 했기에 입찰 전 혼자 생각을 해봤습니다. 3월부터 11월까지 운영계약기간 9개월, 임대료 및 사용료가 월 30만원인데 공동 3인이 운영하니 꼭 들어가야 하는 운영비는 100만원 남짓. 그런데 독립서점이니 운영수익이 날 예정이고 1번을 선택하든 2번을 선택하든 경제적 타격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죠. 그러니 일단 1번 ‘출발한다’를 선택했습니다.

경의선 책거리, 테마산책부스, 독립서점 문열다.

책거리 테마산책은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Platform-P에서 만난 입주자 3명이 공동운영하는 독립서점입니다. 철학출판사 에디터, 음악잡지를 만들어 갈 출판사 , 창작자인 감성작가 이렇게 3인은 센터 내 소모임에서 처음 만났어요. 만남과 동시에 추진체 한명의 엄청난 추진력으로 열흘 만에 경의선 책거리 공원 내 테마 산책 부스 운영권을 따내며 ‘테마산책’이라는 독립서점을 시작하게 됩니다.

시작은 경의선 책거리 홈페이지(http://gbookst.or.kr)에 있는 “2021 경의선 책거리를 함께 운영할 테마산책(책방) 운영자 모집” 공고였어요. 출판사, 작가, 아티스트, 단체, 기관, 독립출판, 1인 출판, 디자이너 등을 모집 대상으로 한다고 써있었죠. 운영 방향 등이 담긴 자료를 작성해 보내야 했어요. 공간 입찰의 경우 서류는 단순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은데요. 명확하게 들어가야 할 것은 입찰과 관련 있는 경력, 입찰 취지에 맞는 공간 운영 방안, 마지막으로 우리 공간만이 해낼 수 있는 특화된 프로그램을 히든카드처럼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테마산책’은 각자의 출판 관련 경력을 기반으로 하여 책거리 공원 내 테마 산책만이 가질 수 있는 운영 내용을 넣었습니다. 문화, 건축, 음식, 여행 등 다양한 테마 잡지 입고 및 드로잉 클래스, 철학과 함께하는 토크 타임 등을 예시로 들었죠.

입찰준비과정은 순조로웠지만 공간임대에 대한 심사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로웠어요. 6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테마산책의 방향성에 대해 한 시간 정도 프레젠테이션을 한 뒤, 심사위원이 묻는 질문에 답변했습니다. 이렇게 급하게 프로젝트가 진행될 경우 준비 과정을 궁금해 하시는 분이 많아요. 입찰일정이 임박해 있을 경우 미리 포기하지 말고 우선 입찰공모를 해보는 것을 권해드려요. 저희는 운 좋게 합격했지만 떨어지더라도 다음 입찰 받을 때 서류를 보완할 수 있는 바탕이 될 테니까요.  서점운영을 시작한 과정까지 제가 느낀 속도감은 상상 이상이긴 했어요. 시작하기 전 겁부터 먹을 필욘 없으니 가만히 지켜보며 휩쓸려 들어간 측면이 있었어요.

독립서점을 연 이유

“가까운 미래에는 한 사람당 직업이 평균 7개가 넘는 시대가 온다”라는 말을 ‘미래학교’ 컨퍼런스에서 들었어요. 종종 이 이야기를 지인들과 공유하곤 하는데, 의견이 반으로 나뉘는 것을 자주 경험해요. “뭐? 완전 피곤하겠다. 직업이 7개가 넘는다니!”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머, 완전 재미있겠다. 직업이 7개가 되니까!”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죠.

여러분은 어느 쪽이세요? 참고로 저는 ‘재미있겠다’는 쪽입니다.

사실 ‘완전 재미있겠다’ 라고까진 표현하긴 어렵습니다. 솔직히 힘이 들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것보다는 하나로부터 다양한 일들이 파생하는 것에 더 흥미가 가는 건 사실입니다. 작가의 삶을 선택하면서 저는 생애 처음으로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보고 있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로 막막했습니다. 책은 어디서 발행해야 하는지, 책을 발행한 후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강의를 시작해야 하는지, 강의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작업은 어디서 해야 할지, 동료에게 어디까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는지, 활동경비는 어떤 규모로 쓰고 벌어야 하는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시작을 응원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협잡꾼들도 얼마나 많은지. 안 그래도 마음속이 캄캄한데 협잡꾼까지 등장하면 당장 쓰는 일을 관둬야 하나 외롭고 고독했어요.

하지만 저는 한 번 시작한 일은 쉽게 관두지 않아요. 제가 특별히 대단해서가 아니라, 어떤 일이 잘 안 풀리면 다른 일을 하더라도 안 풀리긴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든요.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나가도 샌다는 말을 맹신하면서요. 그렇다고 그냥 무방비상태로 버텨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죠. 얽힌 일들을 풀어낼 작은 실마리를 찾아 나설 필요가 있죠. 아주 미미하고 하찮아 보이는 일들도 무시하지 않고 조금씩 해결해 나가다보면 어느새 조금 더 큰 일, 조금 더 복잡한 일, 조금 더 발전적인 일로 풀려나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렇게 첫 책이 만들어지고, 작가라 불리고, 작가에서 강사가 되고, 강사에서 심사자가 되고, 다음 책을 낼 기회가 만들어지고, 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맡고, 선생님들을 양성하고,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게 되며, 출판문화진흥센터 입주 작가로 선정되고, 입주창작자들과 코 워킹이 시작되고, 독립서점을 공동 운영하게 되고, 라이팅 듀오가 결성되는 등 벌써 6~7개의 직함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독립서점 운영하기


입·출고 관리


경의선 책거리 내에는 다양한 서점들이 테마 별로 서점을 운영하는데요.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1시~저녁 8시 사이에 산책 문을 열어요. 개인적으로 감성작가가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이 바로 운영시간이었는데요. 창작자이자 양육자인 저는 시간을 아주 촘촘하게 나누어서 써야하는 터라 주말까지 운영해야하는 것이 힘이 들 것 같아 서점 운영을 시작하기 전 이 부분을 강조하며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상의했습니다. 미리 내가 하지 못할 일들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했습니다. 시간적 특혜를 받는 대신 독립서점 워크숍과 회계업무, 업무일지 등을 관리하기로 정리합니다.

본격적인 서점 운영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출판물을 입고하고 관리하는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정한 규칙이 각자 카테고리를 나누어 입고 절차를 밟자는 것이었습니다. 회계처리 외에는 서로의 영역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책을 큐레이션 중인 감성작가, 뒷 모습엔 자신있어요. 

입고 절차는 순조롭게 이루어졌지만 처음 시도했던 공간 배치는 매일 매일 변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는 매일 이사를 하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문을 열고 두 달 동안 하루도 공간이 바뀌지 않은 날이 없었으니까요. 책과 가구를 새롭게 배치하고 방문자들의 동선을 관찰하며 취향을 살폈죠. 철학출판사 에디터님이 나무를 직접 구매해 와서 부스에 꼭 맞는 책장을 짜 넣기도 했고요. 그 덕분에 제법 서점다운 모습을 갖췄어요.

매출도 중요했지만 각자 하고자 하는 일에 마음을 다해 상의하고, 협업했습니다. 물론 각자 바쁜 상황에서 협업을 할 때면 지칠 때도 있었죠. 특히, 문서상의 절차 없이 구두로 업무를 하는 경우 여러 가지 오류도 발생 했고요. 그럴 때면 감정적 호소보다는 절차상의 문제에 대한 이의 및 의견을 제시하는 메일로 소통을 했습니다. 특히, 점점 가까워질수록 회의시간에 잡담이 늘어나곤 했어요. 서로 바빠 만날 시간이 줄어들자 주 2회 정도 대면 회의 날은 각자의 근황도 듣고 얕은 회의를 진행했고요. 좀 깊은 회의가 필요한 경우는 중요한 사항을 구글 공유문서 또는 메일을 통해 처리하였습니다.

독립서점 입출고 관리는 그동안 출판계에 오래 머물렀던 철학출판사 에디터님이 전담해주셨습니다. 독립서점 거래는 보통 위탁 혹은 매절 이렇게 거래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데(위탁은 책이 판매되면 정산해주는 방식이고, 매절은 책을 사전에 서점에서 선결제하는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서점들은 위탁 방식을 선호하고 저희는 주로 위탁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립서점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경우 일종의 도매상 개념인 ‘북센’을 통해 서점에 책을 주문하는 곳도 많습니다. 서점이 북센에 주문을 넣으면 북센이 출판사에 주문을 하고, 그러면 출판사가 북센으로 직접 책을 보내는 시스템인데요. 어떤 서점이 북센에 주문했는지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죠. 출판사 입장에서는 유통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독립서점에게 도매상의 역할을 대신하는 북센은 출판사 및 독립서점을 연결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독립서점에 관심이 많은 구독자분들께서는 네이버 카페 ‘꿈꾸는 책공장’에 서점 운영에 대한 다양한 정보 및 노하우가 공유되니 참고하시고요.

독립서점의 가장 큰 핵심 업무인 입출고가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으니 현재까지 무난한 운영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자잘한 일들은 많지만요. 특히, 입출고 문서와 서류가 파일로 정리되지 않아서 남은 기간 동안 힘을 합쳐 볼 생각입니다.

큐레이션하기


저는 책을 쓰고 연구할 때 참고 서적이 되어준 책들을 큐레이션 해서 진열해 보았는데 초반 매출에 기여를 할 만큼 잘 나갔답니다. 독립서점으로 살아나갈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큐레이션이라는 것을 그때 느꼈죠. 직접 읽은 책들로 진정성 있게 큐레이션 하는 것이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실험해 볼 좋은 기회였어요. 큐레이션 된 책을 전부 나열할 순 없지만 책 제목과 큐레이션 분류를 간단하게 예로 들면 현대미술 입문서로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현대 회화의 이해를 위한 <다시 그림이다>, <명화의 비밀>, 유머러스한 동시대 미술안내서인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안내서>, 창작자들을 위한 추천서로는 <파울클레 현대미술을 찾아서>, <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 곳의 물>, 미술교육서로 <발도르프의 미술교육>, <예술의 존재이유>, <영혼의 미술관>, 좋은 대화를 위한 추천서로는 <스웨덴 엄마의 말하기 수업>, <말센스>, 드로잉의 다양한 방법론으로 <연필의 힘>, <크리에이티브 드로잉>, <내 생에 한번은 그림 잘 그려보기>, <오늘은 마감입니다만> 등 이외에도 다양한 큐레이션을 했었고, 리스트에 있던 책이 거의 2~3달 만에 판매되었습니다.

재고를 파악 중인 감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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