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모두 합쳐서 얼마인가요?”

서점 강의가 끝나면 책을 사서 나오는 버릇이 있어요. 강의가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도와준 서점지기에 대한 고마움도 있고, 서점마다 서로 다른 큐레이션을 살펴보는 재미이자 열심히 일한 나에겐 선물이기도 하고요.

감성작가는 황당하게도 책 표지와 제목에 제일 먼저 반응합니다. 그런 다음 마음대로 페이지를 펼쳐 보면서 이 책을 살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합니다. 오늘은 같은 날 산 두 권의 책을 소개해 볼까 해요.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는 오래 전부터 사고 싶었던 책이었고 처음 마주한 표지도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든 앞에 글과 그림을 배운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인데 표지 그림이며 글 내용하며 사지 않을 이유가 하나 없는 책이었습니다.

순천 할머니들의 책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다음 집어든 책은 표지 때문에 펼쳐 볼까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글쓰기의 최전선』입니다. 사실 표지 때문만이 아니라 ‘최전선’이라는 비장한 제목이 거슬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은유 작가님의 책이기에 궁금함에 얼른 집어 들었는데 서서 꽤 오랫동안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결론은 ‘책! 같이 가자, 나와 함께!’였죠.

전혀 다른 느낌으로 집어든 책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글쓰기의 최전선』은 꼭 닮은 책입니다. 『글쓰기의 최전선』이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면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는 이를 실행한 책이었죠. 두 책을 전혀 다른 시간에 읽었고 『글쓰기의 최전선』 같은 경우 라이팅듀오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기에 도움이 될 만한 문장을 밑줄 그으며 두세 번 읽었답니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는 ‘남해의 봄날’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2019년 초판 발행 후 2021년 8쇄를 펴냈더군요. 2019년 초판 발행 시 꽤 이슈가 있었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본문이 훨씬 좋은 책이었습니다. 그림 경향이 비슷한 면이 있어 한명의 교사에게 동시에 배웠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교사의 영향도 있겠지만 한 마을에서 서로의 그림을 보며 배우다 보니 따라 그렸겠구나 상상이 되었답니다. 그러다 자신의 색을 찾기도 했을 테고요.

할머니들이 생애 처음 시도한 그림처럼 글도 신선했습니다. 내용은 꽤나 무거운 사건과 사고, 상황들이 이어졌으나 세월이 흐른 뒤 자신을 회고하는 기록이다 보니까 다소 담담하게 적혀 있었고, 사용된 단어나 문장은 간결했죠. 이후에 읽은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실천했으면 하는 부분을 상당 부분 담고 있었죠.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가난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한 할머니들이 한 풀듯 쓴 글이 아니라 더욱 좋았습니다. 지나온 시간만큼 단단해진 할머니들의 마음과 정신이 있는 그대로 녹아 있어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려 가면서 ‘진심’이라는 것은 쓰기의 기술로 전달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우치게 한 책이었죠.

안안심 할머니의 글

『글쓰기의 최전선』

『글쓰기의 최전선』을 처음 읽었을 때는 속독을 했습니다. 시간이 없었지만 내용은 궁금해서 재빠르게 읽으며 마음이 가는 페이지를 접어두었죠. 제가 그동안 글을 쓰면서 느꼈던 감정과 깨달음에 대해 나보다 훨씬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저렇게 표현하는구나 하면서 넋을 놓고 읽었죠. 몇 달이 지난 후 다시 꺼내어 읽어봤는데 접어놓은 모든 페이지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어요. 내용이 사라져버릴 만큼 빨리 읽는 것은 마치 영화를 4배속으로 보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하루는 짧고 독서를 좀 느긋하게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빨리 읽은 탓에 기억이라곤 나지 않는 책 귀퉁이들을 펼쳐 다시 읽기를 반복하니 『글쓰기의 최전선』은 무척 매력적인 책이었습니다. 은유라는 작가가 한 문장 한 문장 얼마나 공들여 썼는지 알게 되었죠. 세 번째 읽을 때는 이 작가가 다음 책은 힘을 좀 빼고 쓰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모든 문장에 힘이 들어가 있어서 빠르게 읽는 독자는 기억이 나지 않고, 느리게 읽는 독자는 모든 문장에 힘을 주어 읽다 보니 좀 지치기도 하더군요. 내용이 어렵게 쓰인 문장은 하나 없지만 아무튼 한 문장 건너 한 문장이 “ ”를 내보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목이 『글쓰기의 최전선』이니까 취지에 딱 맞는 문장들도 많았군요. 쓰기 시작하는 사람 또는 쓰기를 완주해보고 싶은 사람이 읽기에 아주 좋은 책이었어요. 또는 쓰기가 지겨워졌거나 자신의 쓰기에 맴도는 사람이 읽어도 좋겠고요. 저는 이 책을 통해 배운 점은 쓰기에 대한 다양한 자세였습니다. 사실을 전달해야 할 때 객관적인 거리 유지 방법, 절절한 글쓰기를 하고 싶을 때 그 마음 그대로를 표현해 버리는 용기, 선을 넘는 자기 비판적 글쓰기로부터 스스로를 방법 등 전업 작가로 살기 시작한 제가 찾을 수 없는 답을 속성으로 알려주는 느낌도 들었어요.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전문을 실을 수는 없으나 함께 느낄 수 있을 문장들을 몇 가지 공유하며 글을 마칠게요. 라이팅듀오 구독자 중 관심 있는 분은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1. 세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작가라는 뜻으로, 그래서 작가가 되기는 쉬워도 작가로 살기는 어렵다. 엄밀하게 말하면 작가라는 말은 명사의 골을 한 동사다. (22p)
  2.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23p)
  3. 12회차 수업으로 글쓰기를 정복할 수 없다. 불가능성을 안고 출발하는 일이다. (34p)
  4. 제부도 바닷가 횟집 벽면에 붙은 ‘조개의 효능’처럼 이 수업이 삶의 모든 질병의 해소와 글쓰기 완전 정복을 약속하지는 못한다고. (35p)
  5. 한국 사회에서 스무 살이 넘으면 낯선 사람들과 무작위로 섞이는 기회가 극히 적다. 비슷한 가방을 들고 비슷한 메뉴를 고르며 비슷한 드라마를 보는 사람끼리 어울린다. 그런데 동류 집단을 벗어나 낯선 배치에 놓이는 기회가 글쓰기 수업에서 주어진다. (47p)
  6.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다. 하나는 기분이 삼삼해지는 일이고 하나는 몸이 축나는 일이다. (55p)
  7.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수년간 영화를 한 편도 안 보는 사람은 없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주변에서 종존 본다.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즐기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56p)
  8. 하루는 책을 읽고 하루는 글을 쓰며 한달을 해보라고. 그러면서 자기가 정말 글쓰기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지켜보라고. (57p)
  9. “이 시집은 나에게 너무 어려워” “이 책은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고 제쳐두는 것은 자신을 고정된 사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절대 변하지 않고 화석처럼 살겠다는 이상한 다짐이다. (97p)
  10. 진정한 감동은 신체가 바뀌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이다. (119p)
  11. 사유가 촘촘해서 문자의 흐름을 타고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건드리며 인식의 틀을 흔들어놓는 글. 하나의 메시지나 가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라도 남으면 그건 좋은 글이다. (153p)

마지막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을 적어보겠습니다.

감동은 ‘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임’이란 뜻으로 움직임, 힘 그 자체를 뜻한다면 감응은 감동에 응합니다. 개방적인 의미로 태도나 윤리적인 것을 일컫는다. 감동이 가슴 안에서 솟구치는 느낌이라면 감응은 가슴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과 만나서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오는 ‘변신’의 과정까지 아우른다. 감동보다 훨씬 역동적인 개념이다. 또한 기억력처럼 감응은 ‘능력’이다. 반복 훈련을 통해 힘이 쑥쑥 길러진다. (1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