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화를 10시간 이상 못 봐요. 하지만 책은 10시간도 넘게 볼 수 있어요.” - 영화평론가 이동진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이동진 독서법』에서 봤는데 이 문장을 두 번 읽었던 기억이 나요. 책과 영화를 거꾸로 읽었나 싶어서요. 이동진의 평론을 보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워낙 영화평론으로 유명한 사람이기에 영화‘광’은 영화가 1순위일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죠. 감성작가도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데 영화는 한 편 보고나면 피로감이 드니 사람들은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저는 영화를 하루에 한 편만 보는 규칙이 있어요. 이유로 피로감은 물론 먼저 본 영화 속 영상이 잔상으로 남아 있는데 바로 다른 이미지로 덮어버리기 싫은 마음도 작용해요.

내가 언제부터 책을 읽었다고

이동진 평론가는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말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은 사람 중에 한명 같습니다. 그와 비교하면 감성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대학시절 통틀어 책을 전혀! 좋아하지도 읽지도 않았었어요. 특히, 어린 시절 책을 단 한 번도 가까이 한 기억이 없어요. 심지어 만화책에도 큰 흥미가 없었습니다. 책에 빠져든 사람을 보면 지루하기 그지없는 책을 무슨 재미로 보나 그 마음과 머릿속을 궁금해져 관찰했던 기억도 나고요. 어린마음에도 내 평생 책 읽을 일이 있을까 했을 정도였답니다.

책과 멀었던 제가 책을 쓰고 책을 권하고 책을 많이도 읽습니다.

그런 제가 미술이론을 전공하면서부터 ‘책’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는데 발만 들여 놓았지 책을 금방 좋아하며 읽진 않았어요. 처음에는 시간을 내어 서점을 가고, 책을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 다였죠. 전공서적 및 참고서적을 사야하니까요. 그렇게 처음 공부를 한 것은 서양미술사였습니다. 미술의 세계가 흥미롭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도서관에서 서양미술사 책을 하나 둘 빌려봤는데 읽어도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를 뿐더러 다 읽지도 않았는데 반납기한이 신경 쓰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납기한까지 신경 썼다는 것은 읽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만큼 몰입을 못했다는 증거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내돈내산' 책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마음 편히 읽겠다는 핑계로 구매부터 한 것 같아요. 첫 책들 그리고 미술이론 석사과정을 위해 참고자료로 읽던 책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반에 반도 이해를 못했지만 책을 스스로 샀다는 것이 시동을 거는 역할을 했다고 봐요. 동기부여가 변화의 핵심이니까요.

일단은 책을 사는 것이 중요

당시를 돌이켜보면 석사과정 중에도 책을 많이 사진 않았어요. 졸업할 때까지 회고해보면 5단 좁은 책장 기준으로 3칸도 채우지 못할 분량이었으니까요. 졸업 후에는 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업무량은 많은 편이었지만 책 읽을 시간이 없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도 책과의 거리가 좁혀지진 않았어요. 아주 가끔 1~2권 스치듯 펼쳤다 덮었죠.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가 생겼습니다. 아카이빙한 그림들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오랫동안 일을 한 내 업무 노하우를 녹여보아 글을 써야겠다 막연히 생각했던 거죠. 그렇다고 바로 책을 사서 읽은 것은 아니고 교보문고를 들러 책을 만져보고 몇 장 읽어보고 디자인이 멋진 책만 만지작거리다 돌아오곤 했죠. 그렇게 여러 번 교보문고를 들르던 중 출판에 대해 무지한 저는 북 페어를 가보고, 독립 서점을 한 곳 두 곳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손에는 책이 한권 두 권 어떤 날은 다섯 권이 들려있었죠.

지금도 아름다운 책들에 관심이 많고요. :)

처음 책을 다섯 권 사던 날이 기억에 납니다. 책 제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주로 외국 책, 무려 독일, 네덜란드 책 중 표지와 인쇄상태가 개성 있는 책을 손에 쥐었습니다.) ‘어머, 나 책 좋아 하는 거야?’ 하며 스스로 놀랐었죠. 그 정도로 제가 책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었답니다. 일단 구매한 책은 내가 고심하고 고른 책이기에 재미가 있든 없든 끝까지 읽었습니다. 이 버릇은 아직 가지고 있어서 저는 구매한 책은 무조건 끝까지 읽습니다. 글이 안 읽히면 그림이라도 봅니다. 아주 가끔 기대 이하의 책을 만나게 되면 책을 덮어요. 미안하지만 그런 책은 분리수거를 하며 더 이상 집에 두지 않습니다.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만.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죠. 책을 사기 시작하면서 저는 여기 저기, 어디를 가든 책을 들고 나가고 틈만 나면 책을 읽는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약속시간이 10분 정도 남으면 고새를 못 참고 책을 읽다 나간답니다. 침대, 화장실, 부엌, 거실 제 책은 여기 저기 놓여있습니다. 아이들도 엄마가 책을 너무 좋아해서 큰일이라고까지 합니다. 여행지 카페에 먼지 쌓인 책장에도 눈이 먼저 가는데요. 먼지 책장에서 건져 올린 책을 읽다보면 제가 시켜놓은 와플은 함께 간 사람들이 다 먹어 치워버리는 사태도 발생합니다. 이제는 벽돌 책도 겁 없이 집어 들어 읽고, 책 내용을 잘 소화합니다. 책 내용을 바탕으로 제 의견을 개진하고 강의도 할 정도로 책을 활용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책 읽는 속도도 어찌나 빨라졌는지 모릅니다. 책 목차만 봐도 이 책은 속독해야겠다, 이 책은 묵독해야겠다, 이 책은 정독해야겠다, 이 책은 습독해야겠다 단번에 알 수 있죠.

베스트셀러 코너에 서면 나만의 감각도 발휘됩니다. 이 책은 내용 없이 제목 이슈로 팔려고 하는 것인지, 베스트셀러 저자였는데 이젠 글 기운이 다 빠졌구나 하는 책도 서슴없이 알아채죠. 가끔 발굴되는 유물 책을 만나면 사방팔방 이야기 해주고 다닙니다. 내 책은 사지 않아도 좋으니 이 책을 읽으라고 오지랖도 펼치죠. 또 주변에는 책 고수들이 워낙 많기에 책 추천도 받습니다. 고수가 보이면 찾아가서 책을 좀 추천해 주십사 하고 따라 읽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지 않던 시절 저를 책으로 입문시켜 준 시간 또한 도움이 되는데요. 아름다운 책만 살피던 저는 타이포그라피 세계에 나도 모르게 입문해 있었습니다. 책 디자인과 관련된 강의도 많이 들었던 터라 책을 실제 만드는 기술만 없지 ‘입 디자인’은 가능한 사람이 될 정도니까요. 최근에는 그림책까지 손을 뻗어 무한한 책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올 길이 없습니다. 사실 빠져 나오고 싶지 않은 늪이죠. 나를 논리적으로 만들어주었고, 나에게 다시 직업을 만들어 주었고, 새로운 직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며, 나의 노년기를 대비하는 강력한 취미를 만들어주었으니 그 속에서 살다 떠날 예정입니다. 책과 함께하는 잉여의 시간과 낭비의 시간은 나를 든든하게 해줍니다. 더군다나 책이라는 것은 저비용 고효율로 통하는 장르이니 버릴 것이 하나 없어요.

캠핑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으로 거듭나다

몇 년 전 LA에 2년 정도 거주한 경험이 있어요. 그때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몇 번 여행을 갔거든요.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대자연이 장관인 곳인데 트래킹을 열심히 한 배낭을 툭 던져놓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가끔 보였어요. 절경이 펼쳐지는 곳에서 우리 가족은 사진 찍기 바빴는데 저는 그 고요한 사색의 순간을 멀리서 지켜보곤 했죠. 일종의 동경 같은 것도 있었어요. 나는 두 아이들 챙기랴, 서툰 영어로 여행하랴 그저 그들의 서정적인 고요함이 부러웠을 수도 있고요.

책 읽는 감성작가, 설정된 촬영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책이었나 기억이 안납니다 :(

그런데 지금은 제가 캠핑만 가면 책부터 챙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툼한 양말 하나만 있으면 더 없이 좋고요. 가벼운 캠핑의자 손에 들고 캠핑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위치에 펼쳐두고 책을 읽기 시작한답니다. 자연 속에서 책을 읽으면 ‘마음부자’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 어떤 책을 읽어도 문장이 또렷하게 읽혀요.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캠핑을 가서 늘 상상하는 것이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커다란 유리창이 하나 있고, 시선이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서점 또는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해요. 동양 산수화를 볼 때 고원, 심원, 평원의 원근법을 사용하는데 고원은 올려다보는 시점, 평원은 앞에서 보는 시점, 심원은 산꼭대기에서 아래를 보는 시점이거든요. 저는 심원이 좋아요. 내가 꼭대기다 이런 마음은 전혀 아니고요. 이상하게 저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볼 때 마음이 편안하고, 호기심이 더 생기고, 시점도 아름답게 느껴지더라고요. 책을 반평생 멀리했던 제가 이제는 서점에서 바라보는 시점까지 체크하네요.

책을 미리부터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특성을 속속들이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애초에 책을 좋아하지 않았었기에 또 책을 읽어보지 않았었기에 어떤 부분에서 책 읽기를 포기하는지, 흥미가 없는지 공감할 수 있잖아요. 이동진님이 이해할 수 없는 책의 세계를 나는 알고 있거든요. 구독자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요? 이성작가가 알려준 베스트셀러 쪽의 도서를 선호하는가요? 이동진님처럼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나요? 아니면 감성작가처럼 뒤늦게 책을 좋아하나요? 여전히 책이랑은 담을 쌓고 지내는가요?

내가 고른 책은 베스트 책을 부른다

7~8년에 걸쳐 읽은 책이 제 인생을 통틀어 읽은 책보다 많지만 저는 책 쟁이가 되긴 되었어요. 그 사이 책 고르는 감각도 생기고 일 년 남짓 책방을 운영한 경험치는 중상급 책 쟁이 단계로 이끌어주었죠. 표지만 봐도 ‘엇, 저건 내 책이다. 사야겠다.’ 이런 판단도 서요. 그리고 사서 읽어보면 실패 확률이 아주 낮아요.

특히, 최근에 서점을 운영한 경험은 북 큐레이션에 눈을 뜨게 해주었어요. 현대 미술과 관련된 책은 물론 주제에 따라 함께 볼 만한 책을 연결 지어 워크숍 및 북 큐레이션을 함께 제공해줍니다. 원고 청탁을 받을 때도 항상 사용되든 사용되지 않던 북 큐레이션을 함께 보내줘요. 원고에서 그 내용은 빠지더라도 제가 소개한 책을 통해 담당자가 도움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제가 좀 번거롭더라도 북 큐레이션을 덤으로 적어 봅니다. 책 정보는 서로에게 부담 없는 덤(서비스)이 될 수 있어 참 좋은 것도 같아요.

북 큐레이션이 익숙해지면서 나를 스쳐간 책이 어떻게 책을 부르는지 스스로 느낄 때가 많아요. 정말 신기한 일인데요. 예를 들면 『공간이 만든 공간』(유현준)을 읽다가 구마 겐고 건축가에 흥미가 생기고, 구마 겐고의 책을 검색하다보니 『구마 겐고의 점,선,면』 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게 선생님 같은 책인 『칸딘스키의 점선면』이 떠올라 바로 구매하기를 누릅니다. ‘나무’라는 물성을 자주 사용하는 구마 겐고의 책을 읽다보면 대문호이자 가드너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이라는 에세이에 도착하게 되고요. 나무들을 다 읽을 때 즈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는 제목에 이끌려 사게 됩니다. 이 책은 과학적 지식을 품은 책이라 다소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공간이 만든 공간 – 구마 겐코 점 선 면 –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까지 엮어서 읽어본다면 왜 이 책들을 제가 엮어 이야기 했는지 알 수 있답니다. 이것이 제가 권해주는 방식의 책이 부르는 책의 연결 북 큐레이션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책 쟁이 들은 이미 공감할 내용일 것이며 나는 아직 책 쟁이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지갑 속의 2만원을 들고 동네 서점도 좋고 대형 서점도 좋으니 책을 한 권 사 봅시다. 심지어 2만원이란 돈을 현금으로 들고나간다면 웬만한 책을 사고 커피도 마실 수 있답니다. 내용이 마음에 드는 책도 좋고 디자인이 예쁜 책도 좋고, 제목이 이끌리는 책도 좋아요. 일단 책을 사면 그 책은 다른 책을 언젠가는 불러와요. 제가 서점 북 큐레이션 워크숍을 가면 자주 하는 말이 있답니다.

“책 한권을 1년에 걸쳐 읽어도 됩니다. 1년이 넘어도 다 읽지 못했다면 다시 2만원을 들고 책을 사러 가 보세요. 그렇게 자꾸 책을 몇 번 사다보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무료할 틈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43살에 샀던 책을 읽어볼까 하고 돋보기를 쓰는 거죠. 나의 우아하고 즐거운 노후를 위한 책 연금입니다.”
“책을 읽지 않고 머리맡에 꽂아 두기만 해도 좋습니다. 책 제목은요 저자와 출판사가 머리와 마음을 다해 뽑아 놓은 단어의 조합이니까요. 제목만 봐도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