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 살인이 줄어들 텐데”라는 문장을 읽고 한참을 생각한 기억이 있어요. 학교 선생님인 윤태규 작가의 책 <일기쓰기 어떻게 시작할까>에 나오는 문장인데요. 글을 쓴다는 것, 그것도 매일 쓴다는 것, 즉 쓰는 생활이 삶에 주는 변화에 대한 예시였죠. 과장되어있지만 유머스러하게 느껴지는 문장에서 윤태규 선생님이 평소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일까 상상되었어요.

책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 볼게요. 강도가 매일 일기를 쓴다고 가정합시다. ‘오늘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못했고 겨우 100만 원밖에 빼앗지 못했다. 아쉽다. 내일은 좀더 철저한 계획을 세워서 두 사람을 죽이겠다. 내가 누구냐. 이판에서 굴러먹은 베테랑 아니냐’라고 쓰지는 않는다는 거죠. 최소한의 자기변명, 핑계라도 늘어놓다보면 점점 더 흉악한 강도가 되어 갈까, 아니면 차츰 반성하고 새 삶을 살아가게 될까? 하는 내용이죠. 이는 글은 쓰면서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하고 매일 글을 쓰다보면 자신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는 그런 취지의 예시였습니다.

여러분은 매일 무엇인가를 쓰고 있나요?

어떤 날은 하루에 3줄, 어떤 날은 3장 분량, 좋은 일, 나쁜 일, 비밀스러운 일, 하고 싶은 욕 등 어떤 것도 소재가 될 수 있죠. <일기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는 쓰기의 시작이 멋진 글을 쓰는 지름길임을 알려주는 책이죠. 단, 매일. 매일. 매일. 쓰라는 것입니다.

저는 쓰기를 좋아하거나 자신이 있진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 형식의 글을 어딘가에 남겼던 것 같아요. 아주 소수의 지인들과 교감하는 SNS였는데 거의 비공개인 셈이었지만요. 소소한 댓글로 하루를 마감하는 걸 즐겼어요. 대략 13년 정도 매일 3~4줄은 꼭 쓴 셈이죠. 어떤 목적도 없는 '그냥 쓰기'였는데, 하루를 돌아보는 단편적인 생각을 매일 정리하다보니 요약하는 능력도 생기고, 날아가는 말들을 글로 붙잡아 놓는 훈련도 되어있더라고요.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의 포스터 색감, 시나리오, 연기력, 연출 등을 생각하게 되는 메모(2013. 9. 1. 비공개 SNS)

이후 글을 쓸 기회가 생기면서는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접했는데 처음에는 '작가가 되는 길'로 혼자 해석하고선 좋은 쓰기 지도를 받겠다 싶어 읽었죠. 그런데 읽으면서는 흥미가 좀 떨어지고 마치 쓰기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아 그만 볼까했었어요. 책을 사면 좀 끝까지 읽는 편이라 더 읽어 갔더니 세상에, 안 읽었으면 어떡할 뻔 했나 싶었어요. 쓰기를 유도하는 책이 아니라, 내 모든 기운이 바닥나고 쓰기를 방해하는 일들이 생길 때의 대처법이 적혀있었어요. '협잡꾼'들에 대응해서 쓰기를 멈추지 말라는 것이죠. 의지력을 상승시켜 주면서 책의 완결까지 걸리는 길고 긴 시간을 동행해주는 책이었죠.

제 책 <의자와 낙서>를 쓸 때 저는 참고서적을 일부러 읽지 않았어요. 돌이켜 보면 왜 그랬나 싶긴 해요. 그런데 그 당시는 아주 신선한 걸 써보겠다는 포부에 참고서적을 단 한 권도 읽지 않고 썼었죠. 책이 출판된 후 그간 리스트업 해둔 모든 참고서적을 둘러보았는데요.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 <브루노 무나리 아트와 놀자>와 같은 브루노 무나리 시리즈, 지금은 중고서적에서만 귀하게 구할 수 있는 로웬 벨트의 <인간을 위한 미술교육> 같은 책은 미리 읽었어야 했다는 후회도 생겼죠.

그로부터 저는 하루에 두 권 정도 다양한 책을 매일 읽기 시작했는데요. 물론 속독하는 책도 있고 속독 후 다시 손에 쥐고 여러 번 읽는 책도 생겼죠. 책을 지속적으로 읽다보면 이 책이 저 책을 소개하고, 저 책은 이 책을 끌어당기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전혀 관련 없는 분야 같아도 모든 책들은 책 속에서 연결되어 있어요. 제가 <발도르프 공부법 강의>를 읽다가 <미래학교>라는 책에 도착하고, 그 책은 <단단한 영어공부><유튜브는 책을 집어 삼킬 것인가>라는 책으로 이어졌죠. 대화를 바탕으로 하는 책들에 관심이 생긴 저는 <우치다 선생에게 배우는 법>, <어린이라는 세계>, <이동진 독서법>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었어요. 여러 개념들이 융합되면서 다시 무언가를 쓰고 싶은 시기 즈음 읽은 것이 조지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였죠. 이 외에도 다양한 책을 읽으며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서 차용했어요. 글이 훨씬 다채로워지더라고요. 이것은 단순히 따라 쓰는 것이 아닌 나의 방식으로 모든 정보가 융합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책을 쓸 때 영향을 주고 받는 책들

제가 위에서 언급한 책을 찾아보는 것도 물론 권해요. 아주 멋진 책들이니까요. 하지만 조금 깊게 읽어야 하는 책들 외에 최신 소설, 에세이, 제겐 영원한 고전인 박완서 소설집,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책 시리즈, 장선환 일러스트레이터만의 개성 가득한 그림책, 헤르만헤세의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같은 산문들,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의 <얼어붙은 여자> 델핀드 비강의 <충실한 마음> <고마운 마음>, 철학서 <너무 고민하지마> 등 배우는 책,  내 콘텐츠를 위한 책, 쉬기 위한 책, 그냥 읽는 책, 일부분만 보는 책 등 업무를 보듯이 매일 읽었습니다. 어딘가 가기 전 시간이 애매할 때는 5분, 10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읽기도 하고요.

저는 여러분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책이 무척 많긴 하지만, 이 정도로 하고 여러분 스스로 책 여행을 떠나셨으면 합니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으라는 불문율 같은 말 있잖아요. 그 방법밖엔 없는 것 같아요. 단순히 문장력이 좋다고 글을 잘 쓰는 것은 절대 아니랍니다. 내가 책을 낸다고 상상해보세요. SNS에 쓰는 140자 내외의 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입니다. 엄청나게 오랫동안 앉아서, 혼자 쓰면서 보내는 시간이죠. 내가 쓰다가 막힐 때 또는 쉬고 싶을 때면 그림책 또는 보기 좋은 잡지, 관심 가는 외서들을 뒤적거려보세요. 눈이 피로할 때엔 전 절대 활자를 읽진 않아요. 하지만 책 디자인을 보고, 목차 구성을 살피고, 사용된 그리드를 그저 즐긴답니다.

<이동진 독서법>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만약 아이들에게 책 읽는 방법을 가르친다면 손에 2만 원 정도를 쥐어주고, 문고에 가서 네가 읽고 싶은 책을 무엇이든 골라오라고 할 것 같다고요. 저는 이 내용에 웃음도 나고 너무 동의가 돼요. 만화책도 좋고, 어떤 장르든 자기가 직접 고른 책은 한번이라도 쳐다보게 됩니다. 사서 책장에 그냥 꽂아두어도 좋아요. 책을 읽지 않아도 눈앞에 늘 오브제처럼 놓여있는 책과 책 표지의 제목은 모든 저자가 영혼을 끌어 만든 문장이거나 단어랍니다. 그 문장만 자주 보더라도 책에 한층 가까운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는 거죠.

여러분도 많이 읽으세요. 잘 안 읽히더라도 죽죽 읽으세요. 그러다보면 어느새 한 권을 다 읽고 두 번째 책을 들게 돼요. 앞에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렇게 셋, 넷, 다섯 권을 넘어가면 문해력이라는 것이 작동합니다. 제 말을 믿고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매일 읽어보세요. SNS나 온라인으로 읽는 글 말고 행간에 멈춰설 수 있는, 혼자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손에 침을 묻혀가며 찜할 수 있는 살아있는 내 책을요.